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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Aug 25. 2023

한독혼혈 9살 아들이 한국어를 잘하는 이유

치매와 제2외국어

안녕하세요, 여러분! 독일 사는 싱글맘, 뿌리와 날개입니다. 휴가를 마치고 찍는 첫 영상의 주제를 뭘로 하면 좋을까 하다가 가볍게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아이들의 한국어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해 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사실 미디어에서 비치는 한국인 엄마 특유의 교육열이나 세심한 케어와는 좀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그런 것도 엄마 본인이 관심이나 의욕이 넘치고, 재력도 되고, 무엇보다 부지런해야 가능한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여러모로 그런 게 좀 어려운 사람이라 그래서 우리 채널에도 아이 교육, 육아용품, 식단 뭐 이런 거에 관한 콘텐츠가 없는 거거든요.


그런데 빈이의 한국어는 채널 초기부터 여러분께서 관심을 가져주셨던 부분이기도 하고, 또 이번에 빈이가 커피 심부름을 하는 영상이 올라오면서 여러분의 더 많은 관심을 끌게 되어서 답변을 해볼까 합니다.


한국어 교육에 관한 기술적인 내용은 저보다 더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저는 여기서 제가 왜 빈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어떻게 가르치는지에 관한 원론적인 이야기들을 주로 하겠습니다.








먼저 “왜 빈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느냐!” 하는 겁니다. 저는 크게 네 가지 이유를 들고 싶어요. 부모자식 간의 의사소통, 한국적 정서 유지, 삶의 즐거움 그리고 다양한 기회입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현재까지 변함없이 저에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소통이에요. 제가 아무리 독일어를 오래 공부하고 잘하게 된다고 한들 그게 제 모국어인 한국어만큼 저의 모든 감정과 기분을 다 표현해 줄 수는 없거든요.


제가 독일어권 국가에서 10년 넘게 독일어만 하며 살고 있고, 의사소통에도 거의 문제가 없지만 아직도 제가 표현하고 싶은 말의 20프로도 못하고 삽니다. 정보를 주고받는 수준이지 이 감정이 잘 안 실려요.


내 안에 있는 이 다양하고 다채로운 감정들로 아이에 대한 사랑을 아낌없이 표현하고 싶은데 한국어가 아니고서는 그 허기가 채워지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빈이가 한국어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기쁘고 감사해요. 특히 아이와 사이가 안 좋을 때 한국어로 부드럽게 깊은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곧 사춘기가 오면 더더욱 소통이 적어지고 단절되는 시간도 많아질 텐데 그럴 때 빈이에게 말 대신 조금 거리를 두고 편지를 써도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이 엄마로서 큰 힘이 되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아이가 한국인의 정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인데요. 언어는 그 언어를 쓰는 집단의 모든 것이 결집해 만들어진 그 집단의 정수라고 생각합니다. 일제 강점기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죠.


말과 글은 우리의 얼이다.


한국어를 모르고서는 절대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정서를 이해할 수 없다면, 아무리 엄마라고 할지라도 독일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한국인인 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겠죠. 너무 당연한 겁니다.


그런데 저는 제 아이와 친밀하고 싶거든요. 제가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났을 때 느끼는 그런 친밀감을 내 자식과도 느끼고 싶어요. 아무리 살 맞대고 사는 내 남편이래도, 아무리 친한 친구들이라 해도 결국 깊이 들어가 보면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그들과 나 사이의 그 단단한 정서적 벽, 그런 걸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덕분에 빈이는 저를 비롯해 한국에서도 한국 가족들과 큰 정서적 이질감 없이 잘 지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점이 무척 만족스러워요.


세 번째는 아이가 한국어를 잘하는 만큼 더 많은 한국 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는 점이죠.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문화가 널리 뻗어나가고 있는 요즘 그 위력을 더욱더 실감합니다.


빈이가 벌써 4학년이잖아요? 청소년기로 접어들면서 특히 또래 여자아이들이 한국 문화에 관심이 엄청 많아서 한국어도 잘하고, 한국도 왔다 갔다 하는 빈이를 많이 부러워합니다.


그리고 빈이랑 얼마 전에 별에서 온 그대를 같이 봤었는데, 아들이랑 그렇게 한국 드라마를 같이 즐길 수 있다는 게 저는 참 좋더라고요. 이제 좀 더 크면 자기 혼자서도 재밌는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좋은 한국 노래들을 찾아 듣고 즐기기 시작하겠죠? 삶이 훨씬 더 풍요롭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은 이중언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기회들이 있겠네요. 두 가지 언어를 하니까 아무래도 뇌발달에도 더 좋을 거고, 또 두 언어 간 통번역을 업으로 삼고 싶을 때도 남보다 좀 편할 거고, 대학을 가거나, 직장을 구하거나, 심지어 연애를 할 때에도 좋지 않겠습니까?


저도 외국어 전공자이고, 외국에서 다시 제3의 언어를 배워 이렇게 고생하며 사는 입장에서 이중언어는 나의 노력으로만은 얻을 수 없는, 오직 부모만이 줄 수 있는 값진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장점들이 물론 있지만 초반에 말씀드렸다시피 저한테 제일 중요한 목표는 첫 번째, 저와 아이의 의사소통이에요. 서로 교감하고, 대화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그래서 항상 그 본질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뿌리와 날개는 아이에게 한국어를 어떻게 가르칠까요? 별 거 없습니다. 저는 그냥 딱 한 가지만 머릿속에 딱 갖고 있어요. 한국어는 엄마 나라의 말이기 때문에 엄마와 소통하고, 엄마의 사랑을 느끼려면 반드시 할 줄 알아야 하는 말이라는 걸 저 스스로도 기억하고 있고, 아이에게도 그대로 얘기해 주는 거예요.


외국에서 자라는 아이에게 그 나라에서 쓰지 않는 말을 지속적으로 쓰게 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거든요. 특히 아이가 자랄수록 반발심도 같이 커지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이걸 항상 상기시켜 줍니다.


너의 엄마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엄마 나라 말을 하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엄마는 너랑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하다.

너랑 한국어로 대화할 때
엄마는 기분이 참 좋다.


아이가 왜 한국어를 배워야 하냐고 투덜거릴 때마다 저는 매번 그렇게 얘기를 해줬어요. 그럼 아이도 매번 다시 납득을 했고,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는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더라고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나이를 먹을수록 다른 주변의 아이들도 빈이가 한국어를 한다는 것을 부러워한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자기 스스로도 좀 자부심을 갖고 으쓱해하는 그런 면도 있고, 그게 다시 동기부여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아이랑 한국어로 즐거운 것들을 좀 많이 하려고 합니다. 재미있는 책을 읽어주거나, 영화나 드라마, 만화 같은 것을 같이 보고, 또 내가 너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와 같은 말들, 애정이 듬뿍 담긴 말들을 도란도란 한국어로 해줍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는 말들은 웬만하면 독일어로 합니다. 그냥 저만의 방법이에요. 저는 빈이가 한국어를 듣거나 떠올렸을 때 본능적으로 좋은 기분이 들었으면 좋겠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하는 거고.


그 밖에는 읽고 쓰기보다 듣고 말하기에 집중한다는 거고요. 또 아이의 틀린 한국어를 교정해 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항상 그보다 상위 원칙이 서로 소통하고 사랑하는 데 있다는 것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제가 중국에 있을 때 인도네시아나 태국에서 온 화교들이 중국어 공부하는 걸 보니까 어렸을 때부터 듣고 말하기만 잘해놔도 읽고 쓰고 고급단계로 가는 건 나중에 나이 먹고 본인이 정말 흥미가 생겼을 때 스스로 해도 충분하겠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이 독일어를 딱딱하다고 알고 있는데, 그건 여러분이 대부분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나치독일의 군인들 언어로 독일어를 접하기 때문입니다. 막 Jawohl! Eins, zwei, drei! Eins, zwei, drei! 이러잖아요.


그런데 저는 독일어를 가장 먼저 전남편과 연애할 때 사랑의 언어로 습득했고, 또 독일로 넘어와서는 아기모임 같은데 나가면서 다른 엄마들이 자기 아기에게 사랑을 담아 하는 독일어, 엄마의 언어로 배웠어요. 그래서 저는 독일어가 굉장히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엄마들이 독일어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정말 부드럽죠?


그래서 저는 먼 훗날 빈이가 한국어를 듣거나 생각했을 때 빈이도 이렇게 바로 엄마의 따뜻한 품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때가 와도, 제가 곁에 없어도 한국어를 듣고, 한국어를 떠올렸을 때 이렇게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자기를 사랑해 주던 엄마를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빈이가 한국어를 배우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참고로 빈이는 독일어를 굉장히 잘합니다. 항상 집에서 한국어만 썼었고, 만 두 살 반부터 유치원에 가기 시작하면서 독일어를 처음 배웠는데도 3살 때 혼자서 자동차 번호판으로 알파벳을 떼고 5살 때부터 독일어를 읽기 시작했고요.


이게 한국에서는 별게 아닐지 몰라도 독일에서는 6살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해서 글을 처음 배우기 때문에 사람들은 빈이가 언어영재인 줄 알았습니다. 지금도 또래 독일 아이들보다 어휘력이 월등히 높고요.


Lesewurm이라고 하죠? 한국어로는 책벌레 같은 개념인데, 책을 엄청 좋아합니다. 공부를 딱히 잘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항상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읽습니다. 주변의 모든 게 다 독일어이다 보니까 아이가 자랄수록 그 한국어와 독일어 간 압도적인 인풋의 격차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보셨다시피 아직까지는 잘 따라와 주고 있고요. 작년에 한글 쓰는 걸 배우기 시작한 뒤로는 저를 특별히 기쁘게 해주고 싶거나 진심으로 미안할 때, 이럴 때는 항상 한국어로 편지를 써요.


그러면 신기한 게 같은 말이라도 독일어 편지는 (훨씬 잘 쓴 것인데도 불구하고) 별로 느낌이 없는데 한국어로 쓴 걸 보면 눈물이 납니다. 그럴 때 정말 아이가 한국어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기쁘고 감사해요.


끝으로 제가 여러분께 조금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치매에 걸리면 제2외국어는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유튜브에서 검색해 봐도 안 나오더라고요. 치매라도 자전거 타기나 운전같이 몸으로 배운 것들은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외국어는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부터 저는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거든요. ‘혹시 내가 치매로 독일어를 못하게 되어도 우리 아들이 한국어를 할 줄 아니까 대화할 수 있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 참 쓸데없지만 쓸데없는 생각하는 게 제 주특기입니다.


아무튼 혹시 아시는 분이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라요. 치매에 걸렸을 때 외국어는 기억을 하는지, 아니면 잊어버리는지! 오늘은 빈이의 한국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봤고요. 외국에서 아이를 키우시는 여러분들께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그럼 오늘도 영상을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다음 영상에서 다시 만나요. 안녕!





https://youtube.com/watch?v=OBGsF2GId0g&si=ogCkZO-7Rc5lbut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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