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와 날개의 국제커플 연대기/ 국제결혼 하편
이쯤 되면, 궁금해지실 겁니다. 결혼생활이 그렇게 평탄했으면 왜 이혼했겠냐고 말이죠. 이건 어디까지나 남편과 결혼생활을 대하던 저의 주관적인 감정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같은 상황을 보더라도 누군가는 문제 삼고 길길이 날뛸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그냥 참고 넘어가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별 일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습니까? 모든 일을 다 겪고 보니 아, 그때 그게 예삿일이 아니었구나! 하는 것들이 보이는 거지, 그 당시에는 그런 일들이 사는데 당장 큰 지장을 주지 않았습니다.
지금 결혼해서 사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남의 집 사는 얘기 들어보면, ‘아이고, 저런 일이 있고도 어떻게 같이 사나!’ 싶은데 자기들끼리는 또 좋다고 잘 살잖아요. 그러니까 삶에는 정답이 없는 겁니다.
뭐 5년 생활을 말로 풀자면 에피소드가 끝도 없지만, 그중에 핵심이 되는 문제로 이야기를 풀어가자면 뭐니 뭐니 해도 바로 그 Money, 돈입니다. 저는 성인이 될 때까지 해도 잘 안 들고 환기도 잘 안 되는 다세대주택에서 자랐을지언정, 돈 걱정은 없이 컸습니다.
부모님께서 항상 갖고 싶은 거 다 사주셨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둘 중에 뭘 살지 몰라서 고민을 하면 엄마아빠는 항상 둘 다 사라고 하셨고, 비싸고 좋은 것과 싸고 품질이 떨어지는 것 중에는 항상 돈을 더 주더라도 기왕이면 더 좋은 것을 사서 오래 쓰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특히 먹는 거에 있어서는 항상 부모님께서 최고로 좋은 것만 해주셨어요. 음식은 먹으면 우리 몸의 일부가 되고 그건 다시 건강과 직결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늘 먹는 데에는 돈을 아끼지 말고 먹고 싶은 건 꼭 먹고 요리할 때도 좋은 식재료를 쓰라고 하셨습니다.
일식집을 하실 때도 수족관에 랍스터가 있잖아요? 그거 팔면 그 당시 시가로 20만 원 돈인데 저랑 동생이 먹고 싶어 하면 저희 부모님께서는 주저하지 않고 꺼내서 각자 한 마리씩 요리를 해주셨습니다.
저는 항상 그렇게 자랐기 때문에 뭐 부모님께서는 뒤에서 어떠셨는지 몰라도 저희 남매는 그때까지 돈이 없어서 전전긍긍한다거나 쪼달린다거나 돈 때문에 비참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결혼해서 남편이랑 마트를 갔는데, 제가 유기농 제품을 고르니까 그거 브랜드만 유기농이지 내용물은 다 똑같은 거라면서 브랜드가 없는 제품을 고르자는 거예요. 우리 엄마는 다른 건 몰라도 먹는 건 꼭 좋은 거 먹으라고 했는데 왜 그러냐고 하니까, 자기는 부모님한테 항상 둘 중에 더 싼 거를 고르라고 배웠답니다.
시부모님이 그렇게 돈을 벌면서도 아끼고 사시느라 여름에 휴가도 제대로 안 가고, 마트 가면 항상 브랜드 없고 떨이 같은 저렴한 식재료를 고르라 하셨고, 옷도, 장난감도 사달라 그러면 항상 안된다 그랬대요.
그러니까 우리 부모님은 주 6일을 일을 하면서도 어린이날에는 꼭 놀러 가서 헬륨풍선 손에 쥐어주셨고, 저 피아노 학원 연주회할 때도 꽃다발 사서 들고 오셨고, 운동회 때도 김밥에 치킨 싸들고 오셨고요, 여름휴가 일 년에 꼴난 3일뿐이어도 꼭 식구들끼리 바닷가로 피서를 갔는데 말이죠.
그때 처음으로 이 사람의 결핍을 알게 됩니다. 나는 한여름에 폭우가 쏟아지면 물이 들이치는 반지하방에서 컸어도 자라면서 우리 집이, 내가 가난하다거나 물질적으로 부족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는데 이 남자는 태어나서부터 마당 딸린 3층 집에 자기 방 갖고 자랐으면서도 항상 돈이 궁하게 자라서 내면이 가난한 겁니다. 그래서 이게 한이 된 거예요.
그런데 이 사람이 돈을 벌기 시작하니까 이 결핍이 낭비벽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한 번은 신혼 초에 남편이 유럽에서 그때 막 뜨고 있던 신생 수트 브랜드에서 수트 4벌을 산 거예요. 대폭세일이라 샀다는데 아무리 그래도 수트 한 벌에 몇 백 유로씩 하는데 한 번에 4벌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건 좀 너무 한 거 아니냐고 했더니 기가 죽어서는 미안하다고, 그런데 너무 갖고 싶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알잖아요, 이 사람이 그런 결핍이 있다는 걸. 저렇게 옷 좋아하고 신발 좋아하는 남자가 자라면서 얼마나 갖고 싶은 걸 못 가져 봤으면 어른이 돼서도 옷 샀다고 저렇게 좋아할까! 그깟 천 쪼가리가 뭐라고.
그래서 저는 짠했습니다. 이제 막 취직해서 지가 번 돈 지가 좀 쓰는데 안될 게 뭐 있나 싶었어요. 아직 애도 없고 우리는. 그래서 애 태어날 때까지는 실컷 쓰라고 했죠.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이 무개념으로 카드빚을 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습니다. 항상 현금카드만 썼고, 저 만나기 전에 4년 동안 직장생활을 해서 모든 돈이 꽤 컸습니다. 그런 걸 봤기 때문에 믿고 내버려 둔 거예요.
또 남편이 보통 남자들보다 쇼핑을 좋아하는 대신 저는 보통 여자들보다 쇼핑에 관심이 없습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지금도 저는 옷도 떨어지면 사러 가고, 명품도 하나도 없어요.
제가 유일하게 욕심을 부리는 게 맛있는 음식이랑 책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독일 올 때 책만 실컷 싸들고 올 수 있으면 다른 건 다 남편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별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게 우리가 밸런스가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둘 다 사치스러운 것보다 낫죠. 그리고 무엇보다 지가 번 돈 이잖아요.
남편은 성격이 섬세하고 꼼꼼했습니다. 여행을 가도 짐가방은 남편이 쌌고요. 저는 원래도 저를 잘 챙겨주는 남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연애할 때도 남편의 그런 면이 좋았어요. 유럽으로 넘어오고 나니까 집세며, 세금이며, 공과금에 보험료까지 제가 손댈 수 없는 것들이 가득했죠.
남편은 11년 전인 그때도 주식으로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학 수업에서 D+을 받아 재수강을 해야 했던 저로서는 영수증 잘 챙기고, 연말에 세금 정산한다고 가계부 꼬박꼬박 적고, 돈 개념 있는 남편이 든든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돈을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저한테 들어오는 돈을 다 남편에게 줬습니다.
결혼할 때도 엄마가 3백만 원인가 해주시면서 남편한테 말하지 말고 네 통장에 넣어놓고 쓰라고 했는데 저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남편하고 나하고는 비밀 없다고 하고 그거 다 남편 줬어요. 그 뒤로도 한국 갈 때마다 엄마아빠가 용돈 주는 것도 다 남편 주고, 시부모님이 제 생일 때 주시는 용돈도 남편한테 다 줬습니다. 어차피 남편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남편 돈이잖아요?
그리고 보세요. 결혼해서 7개월을 이사 다니느라 바빴고, 그 뒤로는 어학원 다니면서 공부하느라 바빴습니다. 그러고 바로 임신해서는 잘 먹고, 잘 자고, 행복하게 태교 하면서 또 그중에 두 달은 한국 가서 엄마아빠 밑에서 잘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출산까지도 사실 남편한테 “돈 벌어서 다 어디다 썼어?” 하고 도끼눈을 뜰 일이 없었던 겁니다.
아기가 태어나고 우리는 다시 독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나니까 슬슬 저도 돈이 쓰고 싶어 지더라고요.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야 대충 먹어도 아기는 유기농 해주고 싶고, 나는 난방을 못해서 발이 시려도 양말, 털신 신고 있으면 되지만, 아기는 빵빵하게 난방되는 집에서 뽀로로 매트를 깔아주고 싶은 게 엄마 심정이죠.
그런데 남편은 자꾸 제 지출에 제약을 거니까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겁니다.
아니, 내가 지처럼
사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집 살림살이 좀 사고,
아기 좀 잘 먹이고 입히겠다는데
왜 나한테 눈치를 줘?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돈 때문에 누구 눈치를 보고 비굴하게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보통 애들이 말 안 들으면 부모님들이 제일 먼저 용돈부터 끊지 않습니까? 저희 부모님은 단 한 번도 돈 가지고 치사하게 저한테 그러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돈 때문에 남편의 눈치를 보게 되는 이 상황이 정말 황당하더라고요.
우리는 가족이니까 우리 돈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따졌습니다. ‘언제는 니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니 돈이니까 돈 안 벌어도 기죽지 말고 편하게 쓰라더니 왜 나 눈치주냐’ 그랬어요. 그니까 대답을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참 묘하대요. 눈치 보이는 일이 자꾸 반복이 되는데 제가 돈을 안 버니까 당당하게 돈 필요하다고 말을 못 하겠는 겁니다. 사람이 점점 쪼그라드는 거예요.
게다가 제가 갖고 싶은 것들은 다 인터넷에서 다른 한국 여자들이 좋다고 하는 아기용품들이잖아요? 여기 독일여자들은 아나바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데. 그러니까 제가 더더욱 개념 없는 여자같이 느껴지는 겁니다.
우리 부모님 집에서는 뭐가 망가지면 그냥 버리고 새로 샀는데, 남편은 드라이기가 망가져도 노란 테이프로 감아서 쓰고, 양말도 구멍 나면 스스로 기워 신고하는 검소한 사람이라서 저는 그런 게 참 존경스러웠거든요.
그니까 이 남자는 수트, 넥타이, 신발 이런 거에만 낭비벽이 있지, 다른 모든 일상생활에서는 스크루지 그 자체였습니다. 차 없이 사는 독일사람 보셨습니까? 집에 식구가 넷이면 차가 네 대인 나라가 독일입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비싸다고 차 대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 먼 길을 걸어서 대중교통 갈아타며 회사를 다녔고요. 옷도 사서 잘 입다가 관리 잘해서 이베이 중고 사이트에 제 값으로 팔고 그 돈으로 또 검색해서 최저가로 새로 사고 뭐 그랬어요. 그러니까 제가 잔소리를 할 일이 없는 거죠.
독일로 이사 와서 얻은 집은 주방이 딸려있는 집이었어요. 그런데 냉장고에 냉동실이 없었고, 식기세척기도 없는 겁니다. 여름이 되면서 아기가 이유식을 시작하는데 냉동실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거의 매일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1킬로 되는 마트까지 왕복 1시간을 걸어서 고기를 사다가 이유식을 해 먹입니다. 냉동이 안되니까 매일같이 신선한 재료를 사다가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 남편은 삼시세끼 한식을 먹는다고 했죠. 그런데 밥솥 보온이 돈 든다고 우리는 항상 새 밥을 지어서 먹었습니다. 그래서 아기 키우면서 아기 이유식이며, 어른 먹을 밥까지 매일같이 음식을 새로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때까지는 그래도 불평불만 없이 낙천적이었던 제가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건 겨울이 되면서 난방문제였습니다. 남편은 신혼 때부터 항상 방마다 문을 다 닫고 거실에만 난방을 틀었어요. 그래서 거실만 나가면 주방이고, 침실이고, 화장실이고 냉골인 겁입니다. 난방비 많이 나온다고 못 틀게 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서 검색을 해봐도 독일 사는 한국 사람들 하는 말이 전부 한국처럼 난방하다가는 난방비 폭탄 맞는다고, 독일 난방비 너무 비싸다고 그러고, 주변에 한국이나 독일 사람들 집에 가봐도 다들 썰렁하게 살더라고요. 뭐 시댁 어른들 댁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서 저는 원래 독일 사람들은 다 이렇게 사는 줄 알았습니다. 또 라디에이터가 많이 튼다고 따뜻한 게 아니에요. 공기만 건조해지지. 한국같이 뜨끈뜨끈한 온돌바닥 온기는 세상 어디를 가도 없습니다. 한국만 그래요.
그리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한겨울에 창문을 Kippen이라 그러죠. 반쯤 열고 자요. 찬 공기가 숙면에 좋다고. 그래서 신혼 때도 침실에 들어가면 닭살이 쫙 돋으면서 막 이가 딱딱 부딪히는 겁니다. 그러면 남편이 항상 핫팩 만들어서 침대 제 자리 데워주고, 저보다 먼저 이불 속에 들어가서 제가 들어가면 따뜻하게 안아주고 그랬어요. 그래서 그냥 그렇게 산 겁니다.
그런데 아기를 키우니까 이게 말이 달라지는 거예요. 지는 하루 종일 따뜻한 회사에 있으니까 모르겠지만, 저랑 아기는 하루 종일 집에 있는데 어떻게 훈훈한 거실에만 가만히 앉아 있습니까? 아기가 오만 떼만 다 따라다니는데, 너무 춥잖아요.
그리고 아시죠? 독일 집들은 타일 바닥도 많아요. 주방에 그 추운데 타일 바닥 위에서 아기가 선반을 잡고 서다가 넘어지면 머리통 바로 깨지는 거죠. 그래서 그런가 우리 아들은 7개월 때부터 걷기 시작했는데도 한 번을 넘어져서 얼굴이 깨져본 적이 없습니다. 지 죽을지 아는 거죠.
그래서 나중에는 제가 뽀로로 매트까지는 아니더라도 뭐라도 깔아야겠어서 1유로짜리 그 숫자, 알파벳 있는 퍼즐모양 매트 있잖아요? 그거 인터넷에서 주문해 달라고 해서 깔아줬어요. 저는 그때까지도 독일에서 은행계좌가 없어서 남편이 인터넷 구매를 다 대신해 줬습니다.
왜? 독일은 계좌를 트면 계좌유지비를 내야 돼요. 그걸 남편이 돈 아까우니까 좀 부풀려서 말을 했어요. 세 달에 10유로 정도 되는데 매달 10유로라고. 그래서 제 입장에서는 돈도 못 버는데 1년에 120유로씩 생돈을 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냥 안 만들고 산 거죠. 어차피 저는 돈 들어올 데도 없으니까. 그래서 그냥 이런 식으로 하나, 둘씩 맡겨놓고 살다 몇 달 뒤에 이혼하자 그래서 돌아보니까 그 사이에 제가 완전히 바보가 되어있더라 이겁니다.
아무튼, 그래서 거실만 온도를 조금 올려놓잖아요? 이 놈의 남편이란 작자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집안 공기부터 싹 느껴보고 덥다고 인상 팍 쓰면서 라디에이터 온도를 확 내리는 겁니다. 그러니 아무리 눈치 없는 저라도 얼마나 눈치가 보이겠습니까? 이때가 결혼하고 2년 10개월 정도 됐을 땝니다.
딱 2년 전 그 맘때 비엔나에서 신혼생활 하던 무렵에 다퉜던 일이 생각나네요. 무슨 일이었는지는 기억도 안 나요. 하여간 제가 뭣 때문에 화가 나서 막 뭐라 뭐라 했더니, 세상 슬프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는 저를 올려다보면서 그러는 거예요.
‘네가 그렇게 젊고 예쁘니까 지금까지는 그렇게 못되게 굴어도 다 용서받고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월이 가면 너도 늙고, 그때는 외모보다 마음이 더 중요해질 거라고.’ 오 와우! 그 말을 듣는데 제가 정말 그 순간 화가 싹 풀리는 거예요.
한국에서 안 예쁜 여자로 살아오신 분들은 잘 아실 거예요. 그 당시 제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면서도 제 외모에 대해서 그렇게 극찬을 받은 건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그래서 제 전남편이 제 외모에 대해서 그렇게 높게 평가하고 있는 줄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랬던 그 사람이 2년이 지나고 나니까 이제 아기랑 라디에이터 좀 켰다고 인상을 팍팍 쓰기 시작한 거죠. 남편과 나 사이의 힘의 균형이 어느새 상당히 많이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점점 깨닫기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자, 이렇게 해서 국제결혼 상, 하 편도 모두 마쳐봤습니다. 할 말이 참 많은데 상, 하로 압축하려니 좀 힘드네요. 남은 이야기들은 뭐 채널을 운영하면서 또 하나씩 풀어놓을 날이 있겠죠. 이번 영상도 즐거우셨기를 바라고, 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세상 모든 한부모 가정을 향한 자유입니다! 그럼 다음 영상에서 만나요, 안녕!
https://youtube.com/watch?v=ZdnZmETz8G0&si=JvoW_xSbKnGjcv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