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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Oct 05. 2023

죽이고 싶던 분노가 용서와 축복에 이르기까지

뿌날의 국제커플 연대기 / 국제싱글맘 번외편

12부작 뿌날의 <국제커플 연대기> 어느덧 마지막 편이네요. 대장정의 끝, 고지가 바로 코앞입니다!! 아자아자!!!


2015년부터 8년 간 싱글맘으로 성장해 온 과정을 짧은 영상 안에 담기가 힘들어서, 그건 브런치북 <움켜쥔 결혼, 그 끈을 놓았을 때>를 통해 보시기를 권해드렸습니다. 그걸 읽고 오셨다는 전제 하에 <국제커플 연대기> 마지막 편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2010년에 만나 2012년에 결혼을 하고 2015년에 별거를 시작한 우리 두 사람은, 2017년에 남편이 공동 양육권을 포기하고 2019년 이혼소송이 마무리됨으로써 3년 간의 혼인기간을 청산하게 됩니다.


혼인기간이 짧아 재산분할은 받지 못했지만, 저의 대학진학에 따른 생활비 지급 청구소송에 승소해서 저는 저와 아이에 대한 3년 간의 생활비를 모두 받아냈고요. 코로나로 인해 생활비 지급 기한 내에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저는 현재 다양한 일들로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고, 전남편은 뒤셀도르퍼 타벨레(비양육자의 소득대비 양육비 책정기준표)에 따라서 매달 아이 양육비만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첫 4년 동안 변호사를 통해서 꾸준히 아이와 아빠의 면접교섭을 신청했지만 전남편은 모두 거절했고요. 2019년 이혼소송 당시 법정에서 빈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아빠가 입학식에 와주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내용을 전달했지만, 남편은 그것마저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그날을 기점으로 저도 더 이상 남편에게 면접교섭을 요청하지 않고, 아이에게도 그 상황을 다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9살인 빈이는 엄마아빠가 이혼을 했다는 것, 엄마가 단독양육권을 갖고 있으며, 아빠는 만남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아빠가 양육비를 꼬박꼬박 보내주기 때문에 생계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과, 자신에게는 언제든 아버지를 만나러 갈 권리가 있다는 점 등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2020년도에는 아빠에 대한 빈이의 그리움이 가장 컸을 때라 눈만 뜨면 편지며, 선물이며 보내겠다고 해서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실제로 편지를 보내게 도와줬는데요, 아이가 반년 넘게 기다리도록 당연히 답장은 안 왔죠.


빈이는 생후 15개월 이후로 자기 아빠를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기억도 당연히 없습니다. 그래도 아빠를 무척 그리워하고요. 우리 집에서는 아빠가 타부가 아니기 때문에 아빠와 관련된 이야기나 아빠 닮은 부분들을 말해주면 좋아해요.


얼마 전에는 학교에서 가족사진 붙이기를 했는데 처음에는 말을 안 하더라고요. 가족사진 가져가야 된다는 걸 제가 아는데. 그래서 왜 사진 달라는 말을 안 하냐고 하니까 안 가져가도 된대요.


그래서 아빠가 없어서 그러냐고 했더니, 잠깐 생각하다가 그럼 아빠랑 셋이 찍은 사진 한 장, 엄마랑 둘이 찍은 사진 한 장을 가져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아빠랑 있는 건 아기 때 사진밖에 없는데 괜찮냐니까 괜찮대요.


맘이 짠 하면서도 그런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이 제 자식이지만 참 대견스러웠습니다.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라면 반드시 감당해야 하는 몫이겠죠!








제 영상을 시청하시는 많은 분들이 제 전남편을 누고 미친놈이네, 나르시시스트네, 소시오패스네 하는 평가를 내립니다. 뭐, 모르는 거죠. 그 사람이 직접 병원에 찾아가 진단을 받는다면 뭐라고 나올지.


그런데 여러분께서 그 사람과 저에 관해서 결국 어떤 해석을 내리고, 어떤 평가하시든 사실 그 사람이나 저와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 각자의 의견 또한 그 사람을 향한 저의 입장과도 별 관계가 없고요.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은 여러분 각자가 처한 상황과 과거의 경험들, 또 그로 인해 생겨난 가치관과 믿음 같은 여러분의 개인차를 바탕으로 형성된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상일뿐이지 실제 저나 제 전남편의 실체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는 제가 경험한 것들을 통해 저라는 사람이 한 인간으로서 그런 모든 일들을 겪고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를 한 명의 화자로서 여러분께 흥미롭게 들려드릴 뿐인 거죠.


제가 이런 관점을 가지고 영상을 만들다 보니 전남편이 나쁜 놈이냐, 아니냐! 하는 이런 이분법적인 구도, 흑백논리를 가지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일차원적 논쟁 속에서 저는 매번 사람들의 같은 불평을 듣습니다.


댓글들 보세요. 똑같은 영상 하나를 보고도 누구는 ‘전남편이 몹쓸 놈이라기에 편들어줬는데 왜 정작 당신은 전남편을 옹호하느냐, 어이가 없다!’ 그러고 누구는 또 ‘내가 보기에 무책임한 건 전남편이 아니라 당신인데 왜 전남편을 매도하느냐, 뻔뻔하다!’ 그러고 누구는 또 ‘아직도 미련이 남았냐, 이제 집착을 버리고 새 인생을 살라!’고 충고해요.


이 사람들이 진짜 제가 하는 말이 어려워서 영상을 보고도 이해를 못 하는 걸까요? 아니면 본인들 귀가 꽉 막혀 있어서 제가 하는 말이 아예 안 들리는 걸까요? 아니면 실제로는 제가 하는 말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본인들 마음속에 있는 상처와 응어리들을 제 영상에 투사하고 자신의 이 솟구치는 감정을 배설하는데 급급하기 때문에 그런 걸까요?


제 전남편이 어떤 인간이냐고 묻는 말에 제가 특정한 대답을 할 수 있다면 그건 코끼리가 어떻게 생긴 동물이냐고 묻는데 앞을 못 보는 사람 셋이서 하나는 코만 만져보고, 하나는 다리만 만져보고, 하나는 등 위에 올라타 그 등짝만 어루만져 본 뒤에 각자 코끼리라는 동물이 어떻더라고 우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자기 안에 수만 가지 다양한 모습들을 갖고 있는 법이고, 그때그때 처한 상황에 따라서 필요한 부분을 꺼내 쓰게 되어있습니다. 아무리 숫기가 없는 사람이라도 먹고살기 위해 나서기도 하고, 아무리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도 살기 위해 결단을 내리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또 우리 안의 어떤 부분들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고 살다 죽기도 해요. 그런 걸 꺼내 쓸 상황이 안 오면 그런 거죠. 그 사람이라고 뭐 저한테 첫눈에 반했을 때 자기가 나중에 처자식을 버리게 될 거라고 상상이나 해봤겠습니까?


그러는 저는 뭐 지난 영상에서처럼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만큼 큰 분노를 품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상상이나 해봤을까요? 아니에요. 국제이혼이라는 극한의 상황을 통해서 저도 제가 그전에는 미처 몰랐던 저의 밑바닥을 봤듯이, 그 사람도 우리랑 헤어지면서 자기 안의 밑바닥을 처음 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3년 동안 제 곁에서 저의 정신적, 재정적 보호자 노릇을 했던 그 사람의 헌신을 깡그리 지워버리고 마지막 밑바닥 모습만으로 그 사람 전체를 쓰레기로 치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경험한 결혼생활 3년 동안의 무기력하고 의존적이었던 제가 저의 전부가 아니듯이 말이죠.








그 사람이 연애하기 전에 자기가 독신주의고 딩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결혼도 하고 싶고, 아기도 둘, 셋 낳고 싶은데 그럼 우리는 안 되겠다 그랬더니 그건 널 만나기 전 얘기라면서 자기가 찾던 Right one(바로 그 사람)을 찾았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도 결혼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 뒤로 그 사람은 저랑 사는 내내 단 한 번도 독신이네, 딩크네 하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실제로 빈이도 둘 다 원해서 피임을 중단하고 가진 거고, 둘째도 계획했으니까요. 그랬기 때문에 나중에 이혼법정에서 원하지 않는 결혼, 원하지 않던 아이였다고 했을 때 저한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큰 상처가 됐어요.


그래서 더 이상 그 사람과 있었던 과거의 좋은 기억들이 사랑이었다고 믿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모든 게 다 거짓말 같았어요. 그래서 오랫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 사람은 날 사랑한 게 아니었다고.


그런데 작년에 이 모든 일을 뒤로하고, 용서라는 하나의 매듭을 지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마지막을 그렇게밖에 끝낼 줄 모르는 게
그 사람의 그릇이었던 것을,

겨우 그거밖에 안 되는 사람이
3년 동안 든든한
남편 노릇, 아버지 노릇 하느라
정말 많이 힘들었겠구나!



제가 지난 8년 동안 제 그릇에 넘치는 싱글맘 노릇을 하느라 힘들었던 것처럼 그 사람도 자기 분수에 넘치는 책임을 지고 어른 노릇을 했어야 됐으니 얼마나 그게 고됐겠습니까?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결혼, 정말 아무나 하는 거 아니거든요. 저나 그 사람이나 어린 나이에 참 애썼죠.


또 얼마나 저를 갖고 싶었으면 그 꼼꼼하고 주관 뚜렷한 남자가 자기 자신까지 속여가면서 저랑 그렇게 이른 결혼을 했겠습니까! 저는 그 당시에 이 부분이 참 이해가 안 됐거든요. ‘지가 결혼하자고 쫓아다녔으면서 왜 원하지 않았던 결혼이래?’


왜냐하면 내가 보는 나는 너무 하찮으니까 그 사람의 행동이 논리적으로 이게 앞뒤가 안 맞는 거예요. 그런데 나 스스로는 그렇게 무시했던 나라는 여자가, 그 남자에게는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얻고 싶었던 가치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으면서 나의 가치를 다시금 알아보게 된 거죠.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원망이 고마움으로 바뀌더라고요. 나를 위해서 본인이 내키지 않는 삶을 5년씩이나 함께 해줬고, 또 그 덕에 저는 제 과거의 상처를 치유받고, 빈이까지 얻었으니까요.








그 사람과 살 때 그 사람을 더 이해하고 싶으니까 너의 어린 시절은 어땠냐, 너는 마음 안에 어떤 상처가 없느냐하고 묻기도 하고, 또 시부모님과 남편 사이에 갈등이 있거나 하면 제 나름대로 자세히 살폈어요.


그런데 항상 남편은 항상 평범하게 자랐다면서 괜찮다고 지나갔습니다. 5년 내내 그런 식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정말로 그냥 평범하게 자란 줄 알았습니다. 우리 부모님처럼 막 사네, 못 사네 막 찌그락빠그락하는 것도 아니었고 화목해 보였으니까.


그러다가 이혼하고 난 뒤에야 그 사람 외가 쪽 가족들과 왕래를 하면서 독어로 원활한 소통이 되기 시작하니까 그 사람의 원가족에 대해서도 더 많은 걸 알게 됩니다. 남편에게서는 전혀 듣지 못했던 시댁에 대한 다양한 정황들을 여러 친척들의 시선을 통해서 듣고 나니까 이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는 거죠.


같이 살 때는 몰랐던, 또 헤어질 때조차도 이해되지 않았던 여러 모습들에 대해서 그가 왜 그랬었는가에 대한. 자식이 자기 새끼를 안 보는 선택을 하는데도 바른말은커녕 거기에 동조하는 부모를 둔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이 과연 어땠을지!


그러고 나니까 뚜렷하게 보이는 거예요. 그 사람도 그냥 나처럼 어리석고 부족한, 앞으로 성장해야 될 시간이 많이 남은 한 사람이었을 뿐인데 결혼을 원하던 나와 사랑에 빠져서 덜컥 결혼을 결정해 놓고, 나중에서야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짐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얼마나 그 시간이 자신에게 힘들고 고되었으면, 자기 자식을 보지 않는 선택에까지 이를 수 있었을까? 한집에 사는 남편의 마음이 그렇게까지 한쪽으로 치우칠 동안, 나는 아내로서 과연 그 사람에게 어떤 존재였던 걸까?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 있느냐고 그 사람을 무수히 원망해 오는 동안, 나는 한 번도 그 사람에게 내가 어떤 아내였는지 되짚어보지 못한 거죠.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그를 정말 사랑했던 걸까?

내가 진짜 그를 사랑했었다면,
나는 왜 떠나는 그 사람을 축복해주지 못하고,
억지로 잡아보려다가

뜻대로 안 되자 망가지기를 바랐을까?



이게 차인 뒤에 분이 안 풀려서 전 연인에게 잔인하게 해코지를 하는 사람들이랑 다를게 뭐가 있습니까? 내가 배신을 당했다고 해서 이걸 과연 합리화할 수 있을까요? 아니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속내, 본질은 똑같았던 겁니다. 내가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되니까 배가 아팠던 거예요. 그게 생활비든, 애정이든, 그 사람의 울타리든.


말만 사랑하는 남편이었지, 등 돌렸다는 걸 알게 되자마자 결국 가장 먼저 머릿속으로 돌아가는 건 손익보고서였던 겁니다. 실질적 외도는 그 사람이 했지만, 사랑이 떠난 자리에 영수증만 남겨뒀던 건 결국 그 사람이나 저나 똑같았던 거죠. 그니까 잠시나마 부부의 연을 맺고 살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과 헤어지고 지난 8년 간 사랑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아직도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면서 뒤늦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그 당시에는 몰라서 전남편에게 미처 마음 써주지 못했던 것들을 새로 만나는 사람에게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음에 감사하고요. 상처받지 않으려고 애쓰기보다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도록 허락된 시간 동안 더 많이 사랑해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나를 사랑하냐고 묻고 싶어 질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지금 이 사람을 진정
사랑하고 있는가!



그렇게 살다 보니까 저는 이혼 뒤에 오히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훨씬 편안하고, 또 복합니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함께 있어도 귀찮지 않아요. 그냥 지금 이대로 좋은 거죠.








여러분들은 살면서 언제, 어떤 일로 누구에게 그렇게까지 극심한 분노를 느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그렇게 뼈에 사무칠 만큼 원한이 맺히는 게, 뭐 흔한 경험은 아니잖아요? 이제야 드는 생각이지만, 그때 제가 그 분노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더라면 아마 뇌혈관이 터져서 어느 날 갑자기 죽었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저는 그때 그 화로 젊은 나이에 머리가 하얗게 세었고요, 심각한 알레르기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친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굉장히 많은 국제이혼 하신 분들이 이 화를 잘 못 다스려서 이혼 뒤에 건강을 잃는 경우가 부지기수거든요.


또 살아보니까 그렇게 엄청난 분노를 누구도 손상시키지 않고 다스려 본 경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공으로 다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왜 나만! “ 이랄 게 없어요. 원래 인생사라는 게 그렇게 맥락이 없어요. 그냥 누구에게나, 언제나,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는 게 인생이에요.


그래서 어제와 같은 오늘 하루가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이라는 말을 감히 내뱉을 수 있다는 게 사실은 가장 복된 삶이라는 걸 저는 나이 서른에 깨쳤습니다.


놀라운 건, 이 분노로 가득 찼던 그 구덩이 깊이가 깊었던 만큼 그 안의 분노를 비워내고 나니까 이 빈자리에 담기는 사랑도 똑같이 깊어지더라고요. 제가 지지난 영상에서 그 어마어마했던 분노를 여과 없이 내보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 분노했던 시간을, 미움과 증오가 가득했던 시간을 잘라내고서는 그 사람을 향한 지금의 사랑과 축복을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말씀드렸다시피 한 여자로서 전남편을 더 이상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의 아빠로서 그 사람의 존재를 존중하고, 양육비를 보내주는 것에 감사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 큰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그 사람이에요.


이런 사람마저도 감싸 안아주시는 것이 바로 주님의 사랑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감동적이었고,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더군다나 제 소중한 자식의 아버지를 사람 대 사람으로서 제가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7년 간의 원망과 미움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그래서 고마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제 그 사람의 인생을 축복하고, 저와 제 아이가 편안하듯이 그 사람도 편안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요.


그래서 오늘은 제가 헤어지고 7년째 되던 해, 결혼한 해로부터는 딱 10년째 되던 해에 그 사람을 용서하며 썼던 글, 그래서 그 사람으로부터 제가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게 된 그 글을 읽어드리며 <국제커플 연대기>의 마지막 영상을 마치겠습니다.


그동안 국제커플 연대기를 시청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저는 가을 방학을 마치고 2주 뒤에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안녕!








나는 이제 당신을 용서하려고 합니다.


당신이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고,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던 것을 용서합니다.

당신은 또한 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 나를 한없이 빛나게 사랑해 준 사람이었음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수많은 밤, 나를 고통 속에 잠 못 들게 하고 두려움에 울부짖게 만들었던 것을 용서합니다.

함께 하는 내내 당신은 언제나 차가운 침대에 나보다 먼저 들어가 따뜻하게 데워주고, 그 누구보다 내 눈물을 많이 닦아준 사람이었음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영원히 나만을 사랑한다던 맹세를 저버리고 다른 여자를 사랑한 것을 용서합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했던 그 시간들만큼은 늘 나에게 진실되었으며, 나를 위해 헌신한 사람이었음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행복한 가정을 갖는 것 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다던 나에게 이혼을 안겨 준 것을 용서합니다.

당신은 내가 가장 아프고 외로웠던 시간 속에서 안정된 가정을 갈급했을 때 나와 가정을 이뤄주고, 잠시나마 가정의 안정과 행복을 느끼게 해 준 사람이었음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내 소중한 자식이 아버지 없이 자라는 것을 평생 지켜봐야 하는 고통을 안겨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용서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내가 그렇게도 사랑하는 나의 어여쁜 자식을 나와 만나게 해 준 고마운 은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당신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내 아이의 절반의 뿌리가 당신인 이상, 당신이 티끌만 한 주저함 조차도 없이 가슴속 깊이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날이 결국 내 아이 가슴에 맺힌 멍울 역시 풀어지는 날이 될 것임을 알기에….


어리고 부족했던 나를 많이 이해하고 사랑해 준 것에 고맙고, 힘든 시기에 든든하게 내 곁에 있어주었던 것에 감사합니다.

나에게 소중한 아이를 선물해 줘서 고맙고, 나를 비로소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에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제 당신 없이도 행복합니다.

그러니 부디 당신도... 편안하십시오.


당신 앞에 펼쳐진 날들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https://youtu.be/h2EYYiDPjTo?si=Q5elb3BmQ94lm6d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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