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엄마에게.
나 글이 쓰고 싶어 엄마.
그래서 엄마를 이용하려고 해.
글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작가 되기가 힘들다네.
이 기회를 나는 반드시 이용해야겠어.
나는 쓰고 싶은 사람이었어 언제나.
글로, 그림으로 날아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멋지고
부러웠어.
그 사람들은 스스로를 아는 것 같았어.
나는 나를 모르겠어서 그냥 내가 느껴지지 않아서
계속 그런 사람을 동경하고 따라다니고 내 곁에 두고 싶었어.
취향이라는 게 엄마, 나는 몰랐지, 다들 숨통을 틔울
취향을 모으며 어른이 된다는 걸.
숨을 쉬는 방법을 몰라서 그냥 묵묵히 눈만 뜨고
말이야.
이상한 냄새를 맡게 할까 봐 내 코에 무엇이든
다가오면 숨을 참았어.
나는 그렇게 숨을 경계했어.
엄마는 숨을 쉬었어?
내가 없어서 숨을 좀 쉴 수 있었어?
나는 엄마가 없어서 숨을 참았나?
이제는 엄마가 없어서 숨을 쉴 수 있나?
아니 엄마, 엄마는 그냥.. 엄마가 아닌 당신 그 자체지? 내가 그냥 나인 것처럼.
나한테 엄마라는 말 한번 듣지 못하고 그렇게 그
자체로 스스로를 잘 찾아갔어?
'마' 라든가 '맘마' 라든가 그 정도는 할 때
떠났으려나?
'엄마'라는 말을 듣긴 들었겠다.
나도 이제 영아 발달에 대해 좀 알거든.
나는 엄마가 떠나기 전에도 엄마를 기다렸을 거야.
그땐 어느 아기나 그렇거든.
기억은 안 나지만 나를 언제나 안아준 건 아니었나 봐.
그 시절은 기억이 아니라 신념에 남아 있는 거라
안 봐도 비디오.. 그런 거라데.
안 봐도 알 수 있으면 이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을 텐데.
그러면 그때 말야. 내가 어른이 되고 우리 만났을 때, 그때 엄마라는 말을 듣는 게 좀 힘들었나?
그렇게 많이 말하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왜 두 번이나 영원을 믿게 하고 나를
끊어 낸 거야?
내가 이 시간에 숨을 쪼개어 오는 동안 말야.
뭘 배운 거야?
몰라 엄마를 탓하려는 건지. 화를 내고 싶은 건지.
심리상담비용이나 좀 청구하고 싶어. 1회당 십만 원. 백만 원은 넘은 거 같아. 아직 끝나진 않았고.
아 물론 엄마가 어떤 마음인지, 어떤 상황인지
중요하지. 당연히 이해했지.
나는 화를 내지 않으려고 딸이니까, 사랑하여, 다
이해했는데,
나 참, 그 이해는 나를 배제하고서만 이뤄질 수
있는 거라잖아.
그니까, 애가 어른을 이해하는 게 맞는 거야?
뻔뻔하기 짝이 없어.
아주 오냐오냐해 주니까 어른들이 맡겨 놓은 듯
이해를 달래.
매 순간 이해를 받고 거기에 순수한 사랑까지
바랐으면 그냥 개를 키우지.
(아빠는 새엄마랑 개도 키우긴 했더라. 젠장할 그냥
그렇게 개나 키우지들. 아무리 애써도 먼저 죽어버리고 마는 그 개를.)
지금 엄마한테 뭐 하는 거냐고? 아니.
엄마에게 뭘 하는 건 없어.
나는 나를 애도해. 그 시절의 나를, 엄마가 없던 나를.
우리 엄마는 새엄마야.
그렇게 친구들한테 떠들고 다니던 나를 애도해.
이혼했지. 그건 어른들의 문제야. 나는 나지.
나는 상관없어 괜찮아.
그렇게 덧붙이던 나를 애도해.
내가 태어난 건 내 문제야? 엄마 아빠 문제야?
그래, 아빠는 잠깐 비켜있어. 일단 엄마한테 먼저 할게.아빠는 하늘에서 시간이 많잖아.
엄마가 전화하기를 기다렸어.
나는 참 뭘 그렇게 맨날 기다렸어.
내가 너무 보고 싶어 죽을 것 같아서 참지 못하고
전화 한 통하길 기다렸어.
드라마를 많이 봤어.
드라마처럼 세상이 흘렀으면 했어.
그 시절 드라마는 참 간단했어.
가족은 부모자식끼리 서로 사랑하고 싸우고 원망하고 또다시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었어.
나는 그중 사랑부터 의심했어.
사실,
솔직히 말이야.
그때 나는 엄마가 필요 없었어.
그냥 기억하는 순간부터 이미 나한테는 엄마가
없었어.
엄마를 지우고 나서야, 그제서야 내 기억이
시작되었거든.
사실은 조금 기다린 것도 같은데, 그건 이제야 하는
어림짐작이야.
그때의 나는 엄마가 필요 없었어. 엄마가 없어도
할머니가 챙겨주는 밥을 먹고 할머니가 사준 책가방에
숙제와 필기구를 넣고 아파트 단지를 쭉 걸어 학교를 갔어.
할머니가 준 돈이 새엄마가 마음을 구기며 준
생활비였는지 나는 몰랐지.
아주 금방 그 눈치를 채게 되긴 했지만 말야.
나는 모든 걸, 언제나, 곧 깨닫게 돼.
새엄마는 나를 싫어했어. 웃기지.
내가 싫은데 어떻게 아빠를 좋아할 수 있어?
아빠한테 나를 빼면 뭐가 얼마나 남는다고.
아, 새엄마는 내가 빠져 텅 빈 아빠를 여동생으로
채워 넣었어.
아니, 자신으로 가득 채워 넣었어.
범람하는 그 사람은 지나쳤어 언제나, 나를.
흐르다 아주 가끔 나에게 닿는 차가운 느낌에 나는 또다시 기대했어.
그 온도가 그렇게 차갑지 않았어. 뜨겁지 않았지만 몸이 풀릴 정도로 따뜻하지도 않았지만.
마음이 조금 녹을 정도의 의미는 있지 않았을까? 내가 더 얼어붙지 못한 탓이었을까.
나를 갈아버리는 칼날도 결국은 날 녹여주는 거라
기대했는데.
봐, 엄마가 없어도 나는 잘 살았어.
나는 아주 영리하고 똑똑해서 선생님들의 칭찬을
먹으며 컸어.
받지 않아도 될 칭찬까지 받고 싶어서 나는 선생님의 심부름을 기다렸어.
옆반에 뭐 하나 전달하고 오는 일이 뭐 그리 좋다고.
제가 할래요! 그랬어 내가.
생각해 보니까 말이야. 할머니가 공부를 강제로
시키긴 했어.
근데 또 내가 잘하기도 했어. 노력에 비해서 말야.
인정받고 싶었나 봐. 그 인정도 사랑이잖아.
학교에서 받은 사랑은 친구들끼리 모여 추억할 때나 조금 승산이 있는 사랑이긴 한데 말야.
엄마의 사랑은 나한테 승산이 있나?
엄마의 사랑은... 있나?
새엄마는 공부를 잘하면 용돈을 줬어 아주 잠깐동안.
내가 그냥 용돈을 타면 안 된다며 집안일을 도와주면 얼마, 과목에서 몇 점을 받으면 얼마,
얼마얼마얼마얼마얼마얼마얼마
얼마얼마얼마,
얼마
엄마
얼마얼마
얼마.
뭐가 많았어.
나? 나는 그 많은 것 중에 시험 점수 항목을 좀 더 오래 노려봤지. 나도 약았거든.
그리고 모든 과목에서 당연히 그 점수를 넘겼지.
거 봐, 약았다니까.
중간고사, 기말고사 한 번씩 보니까 그 제도는
없어졌어.
아!
진짜 돈 주기 싫었나 봐.
사는 데는 돈이 필요해.
엄마 나는 얼마가 필요했어.
엄마가 있었으면 나았을까?
아빠는 영 돈을 못 벌더라.
엄마는 내가 없어서 돈 벌기 좀 수월했을 거야.
그때 말한 가족사업은 잘 되어가?
뭐, 나도 엄마가 나를 등에 업고 드라마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꾸역꾸역 살아가는 엄마였길 바라진 않아 엄마.
내 과거를 스스로 애도하는 거야.
나의 어른을 찾고 또 찾고 찾아만 다니던 그!
시간을 애도하는 거야.
어떤 것도 엄마한테 해달라고 하지 않는 거야.
기대하지 않는 거야
이건 그 애도의 일환이야.
엄마도 엄마를 스스로 애도하고 불쌍히 여겨.
스스로만 그렇게 해.
우리는 그렇게 헤어지자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