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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 Oct 24. 2022

구례에서 살고 싶어졌다

광주에서 구례로 넘어오는 버스를 졸다가 일어나다가 창밖을 봤는데, 깜깜했다. 가로등이 거의 없는 산길을 지나갔다. 산속 동화책 그림 같은데에서나 보던 가로등 3개 정도가 마을을 밝히고 있는 풍경을 지나쳤다. 섬진강으로 추측되는 강 뒤로 엷게 기차가 하얗고 얇고 긴 빛을 내면서 달려가는 모습을 봤다. 나무가 많았고, 밤빛에 어렴풋이 반짝이는 물로 추정되는 것들을 보고 구례 시내로 들어서면서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했다. 자연으로 가는 길 구례. 회전 교차로 가운데에 크게,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구례는 그런 단어였다. 사실 너무 뻔하지 않나, 너무 올드하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시니컬하게 지나치기도 했던 것 같다. 나는 아직 밖의 어둠만을 보고 구례로 진입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받은 느낌은 이 도시 꽤나 크다는 것이었다. 버스정류장이 한옥으로 위엄을 드러내고, 에어비앤비의 친절한 호스트는 택시를 타고 들어오면 잘 안 들어올 수도 있으니 픽업을 나오겠다고 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도시에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의 환대를 받으며 숙소가 있는 마을로 굽이굽이 들어갔다. 마을은 전원주택단지로, 별채를 사용하는데 우리 아빠가 짓고 싶어하는 그런 집 같았다. 나무와 친환경 소재로 곳곳을 신경써서 만든 집. 아이의 아토피를 위해 서울에서 내려왔다던 호스트. 6개월을 구례에서 지내자 아토피는 사라졌다고 한다.

별채 곳곳은 먼지가 하나도 없었다. 잘 닦인 집. 관리가 되는 집에서의 하룻밤은 깨끗하고 쾌적했다. 아침에는 다소 흐렸지만 볕이 은은하게 들어왔다.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양 옆에도 작고 큰 창문들이 있어서 볕이 들어오는 게 보였고, 밖에는 산 능선에 빛이 어떻게 비추는지, 해는 몇 시에 뜨는지를 단박에 눈치 챌 수 있었다. 고요했고 빛은 불꽃처럼 움직였다. 8시 쯤 되니 호스트 가족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고, 차를 한잔 내려마시기 위해 포트에 물을 끓였다. 컵에는 뜨끈하고 따뜻한 김이 올라왔고 차가 목으로 한 모금 넘어가는 것까지도 세세하게 느끼려고 했다. 작고 사소한 것들까지 눈에 담고, 감각하려고, 그렇게 이 여행에 깨어나기를 기대하게 되었다.

그렇게 구례여행은 시작됐다. 느긋하고 환하게. 해가 말갛게 보이지 않았지만 아무렴 어떠냐는 마음이었다. 은은한 낮이라 오히려 좋다고 생각하게 됐다.


아침을 일찍 시작했기 때문에, 느긋하게 차를 빌리고 시내를 한바퀴 돌았다. 여기에는 이런 게 있구나, 하나로마트는 여기 있구나. 이런 걸 슬쩍 파악하고, 목월빵집 웨이팅리스트에 이름을 올린다. 환해진 아침볕을 맞으면서 사진도 찍고 목월빵집의 귀염뽀짝한 프랑스 어딘가에서 따온 인테리어와 소품을 구경하다가 샛길로 빠졌다. 빵집 옆에는 천변이 있었고 우리는 시간이 남았다. 따라 올라가야지. 옛날 어느 할머니 집 가는 길 같다. 시골 마을이다. 동네에는 늙은 호박이 어어엄청 크게 지붕을 차지하고, 수세미가 내 팔뚝만하게 자라있었다. 무화과가 곳곳에 익어가고 있고 홍시는 다 익어간다. 풍요롭다라는 기준은 각기 다를텐데 나에게는 왜 이런 풍경이 풍성하고 느긋하게 보일까.


 나팔꽃은 아침 일찍부터 피어있었고, 식물잘알 조효는 나팔꽃이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낮에 피는 꽃이 있다며, 그건 나팔꽃과 비슷하긴 하지만 나팔꽃과는 엄연히 다르다고 얘기해줬다. 그래애? 답하고서는 각각 다른 집에서 각기 다른 귀여움을 발견하느라 눈을 재빨리 굴렸다. 그냥 동네라고 하실 수도 있을 시골마을에서 너그러운 마음을 귀여운 모먼트들을 반견하면서 동네 한바퀴를 걸었다. 이렇게 여유로울 수가. 이렇게 느긋해도 될 수가 있다니. 그 당시에는 느릿한 속도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서울에 도착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구례 속의 내가 부럽다. 나 충분히 즐기고 있었구나. 조급해하지 않았구나. 부럽고 자랑스럽네.

산책을 하게 된 건 목월빵집에 빵을 업어오기 위해서였다. 나는 할머니 입맛이라서 슴슴한 맛을 좋아한다. 하얗게 제분된 밀, 언제 어디서 얼마나 배를 타고 왔을지 모르는 하얀가루, 치즈 역시 만드는 과정을 알게 되면 더이상 부드럽고 달콤하게만 느낄 수는 없으니까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는 토종밀로 만든 빵. 누군가가 정성으로 만든 식재료들을 알고 먹는 이 곳을 꼭 들르고 싶었다. 깜빠뉴, 바게트 같이 와작! 베어물면 입천장 까지는 맛을 생각하면 지금도 침이 나온다. 참새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오픈런으로 한번, 오후에 다른 빵들이 나온대서 하루에 2번 방문한 사람이 있다? 여기. 빵이 오전 오후 달리 나오고 그렇다면 한번 더 와야지.

구석구석 로컬빵집의 느낌이 물씬 나는 공간이었다. 빵을 만드는 사람들도, 빵을 소개하는 손그림도 '목월빵집' 간판도 다 딱딱 어딘가에 맞춰져 있기보다는 누군가의 솜씨로 태어났더라. 나도 매일매일 매순간이 다른데, 빵도 틀 안에 가둘 수 없겠지. 밀도 어떤 온도와 습도 사이에서 조금씩 다를테니까. 그 원료에 최대한 집중해서 정성으로 굽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럻게 빵을 구우니 사람들은 그 맛을 알테고. 갓 나온 빵을 입에 물고 조용히 감탄하면서 나는 구례에 산다면 빵순이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갓 나온 빵의 위엄을 입 안 가득 물고 보송보송한 기분으로 도착한 곳은 '천개의 향나무숲'.




구례라는 도시로 가야겠다고 마음 먹게 된 게 바로 천개의 향나무 숲이었다. 탁트인 연두빛 들판과 흐드러지게 곁을 지키고 있는 향나무들. 누군가가 큰 붓으로 칠해놓은 것처럼 연두색 한 층, 향나무의 진한 녹색 한 층이 울창하게 덮여있었다. 작은 휴대폰 화면 속에서도 느껴지는 평안함. 그걸 나는 가지고 싶었다. 쨍하게 내리쬐는 햇빛, 수평으로 마음이 놓이는 구도 안에서 나는 저곳이야말로 내가 마음을 뉘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구례에 뭐가 있는지, 어떤 게 유명한지 찾아보지도 않고 일단, 구례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오게 된 곳이었다. 천개의 향나무숲. 고백하자면 향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잘 몰랐다. ‘향’나무 라고 하니 소나무나 편백나무에서 나는 나무 심지 냄새가 나는 줄로만 알았다. 침엽수일 것이라 상상했고 꽤 곧게 자랄 것이라는 걸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가서 본 향나무는 곧기보다는 누군가 슥슥 붓질한 것처럼, 또는 고양이가 그루밍을 하다만 것처럼 곡선의 형태를 띄었다. 바람부는 화면을 그대로 일시정지했을 때 한쪽으로 휘거나 움직이는 모습처럼 자라있었다.


향기는 또 어떤가. 편백처럼 직관적으로 향이 느껴지진 않았다. 울창했음에도 숲 안의 습기가 조금 담겼을 뿐이지 향수에 응축해놓은 것 같은 나무냄새가 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상상하던 그림과 조금 달라서 더 자세히 보려고 애쓰고, 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서 향을 맡아보려고 했다. 처음에는 그래서 조금 실망했다. 은목서 나무에는 아직 꽃이 피지 않았고, 하늘은 조금 흐렸다. 탁 트인 뷰는 아직 보이지 않았고, 누군가가 열심히 길을 내고, 테마를 잡았을 정원을 걷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괜찮았으나 나의 욕구가 충족이 되지 않았다.

내가 봤던 탁 트인 초록 잔디와 향나무숲은, ‘잔디광장’이라는 데였다. 실망이 앞섰다. 천개의 향나무가, 그 잔디광장에 모두 늘어서 있어서 ‘탁 트인’ 뷰를 머릿속으로 그려왔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에는 수평으로 딱 잘 담길 수 있는, 아담한 정원이었다. 화면으로 봤을 때는 모른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약간 속았다는 느낌으로 잔디광장을 배회했다. 가장자리를 돌다가 조효가 벤치를 발견하곤 앉았다. 그리고 누웠다. 누워서 하늘을 본다. 바람이 분다고 한다. 너도 누워보라고 한다.

그 때부터였을까. 이전까지만 해도 이 어쩌면 인위적인 정원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탁 트이지도, 내 예상만큼 나무가 엄청 울창하지도 않았거든.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나도 내가 화면에서 봤던 대로 수평으로 쭉 늘어선 향나무와 잔디를 찍고, 저쪽에서도 찍어봤다. 기록을 남겨야 할 텐데, 실망했지만 실망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 풍경을 잘 누려야 하지 않을까. 하면서 마음을 다독였던 것 같아. 그러기를 5분, 10분. 조효진은 여전히 누워있다. 자는 것도 같다. 그 모습이 평화롭다. 잠깐 잠에서 깨서 나에게도 누워보라고 한다. 참 좋다고.


나는 샐죽한 마음으로 반대쪽 벤치에 앉았다. 처음에는 앉기만 했다. 근데 내 맞은편에 조효가 너무 편안해보이는거야. 누워보라는 이야기를 세번째 듣자, 나는 못 이기는 척 자켓을 깔고 벤치에 살짝 기대 누웠다. 처음에는 파리가 있는 거 아닌가, 벌레가 똥을 싸고 가면 어쩌지. 거미가 내 얼굴에 거미줄 치면 어떡하지. 이런 작은 것들이 신경쓰였다. 걘 그냥 아직 거기에, 그대로 누워있다. 손을 뻗는다. 손을 배 위에 얹는다. 잠깐 아빠다리를 하고 앉았다. 싱긋 웃어보이고는 졸린 표정으로 다시 눕는다.


나는 바람이 잘 불지 않는 그래서 거의 모든 사물이 그대로 있는 이 무해한 광경에 마음을 놓고 만다. 마음에 안 들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거랑 다른데. 별로야. 속았어. 하는 마음이 살살 녹는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누웠다. 처음에 향나무숲으로 들어왔을 때 오늘 구름이 많아서, 해가 비치치 않아서 아쉽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누워보니 구름이 없었으면 눈을 못 떴을 것 같더라. 구름이 있어서 저기 앉고 눕는 조효가 오랫동안 누워있을 수 있었고, 눕고보니 은은하게 비치는 볕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눕고 주변을 살펴볼 수 있었다. 눈 앞에 있는 향나무에 손을 뻗었다. 손에 잡히지 않지만 이 숨쉬는 나무 옆에서 뭔가 약간 눅눅하기도 하고 습하기도 한 나무그늘의 뭔가를 감각하기에는 충분했다.


향나무 숲을 기점으로 누군가의 속도가 아닌, 내 속도를 들여다보고 나의 속도로 걷고 숨쉬며 지냈던 것 같다. 천천히 일어나서 숲을 거닐고, 구석구석 향나무를 옮기고 컨셉을 정했을 누군가를 상상하면서 돌아나왔다.


오전을 일찍 시작해서인지, 빵으로 속을 든든히 채워서인지 빡빡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코스를 편안한 마음으로 이동했다. 화엄사 가는 길에는 가로수, 주택마다 주인의 성격대로 키우고 기른 정원들이 길가에 있었다. 구경도 하고 부러워도 하면서 이야기하다보니 어느새 울창한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화엄사가 등장했다.


종교는 없지만 절으로 향하는 길과 고요하고 소곤소곤한 목소리, 자박자박 걷는 발소리들을 좋아한다. 화엄사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큰 건물과 조형물도 규모 면에서 일반 절과 달랐지만, 그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간들의 귀여움이 한껏 드러나는, 시간 속에 묵묵히 묻어있는 지점들이었다. 내게는 작고 반짝이는 것들, 사람 손이 닿아서 완성되는 것들이 눈에 오래도록 들어왔다. 

목탁을 두드리고 두드려서 맨질맨질해졌을 빛깔과 나무문 틈 하나까지도 어떤 문양으로 만들지 고민해서 짜 넣었을 손가락, 화려하지 않아도 위엄이 느껴지는 석탑 같은 것들에서 시간을 읽는다. 화려하고 성대한 것들 사이에서 감탄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종종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 자리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서 경탄한다. 오늘의 이 자리에 와서도 나는 조효와 이 산을 처음 발견하고 여기에 절을 만들기로 결심한 사람은 도대체 누굴까. 그 굽이굽이 산을 들어와서 절을 만들기 시작하고 결국 만들어서 지금까지 유지된 그 오랜 세월은 과연 뭘까 하는 이야기를 나눴다. 

많은 사람과 생각들이 머물다가 또 흘렀겠지. 생각이 고일수도, 또 흐를 수도 있는 공간이겠구나 싶었다. 나는 큰 생각을 하지 않고 발걸음이 가는대로 다녔다. 고민거리를 들고가지 않아서 가벼운 몸으로 산과 산 아래의 나무와 나무로 만든 절, 돌과 돌로 만든 석탑, 계단 같은 것을 보고 누렸다.

소원도, 이뤄져야 할 것도 없이 그냥 왔다가도 좋은 거라고 빈 여백 사이를 공백으로 두고 화엄사를 내려왔다.

이번 여행은 계절을 감각하는데에 온 신경을 다 쓴 것 같기도 하다.

하루가 갈 수록 벼가 노랗게 익었다. 서울에 있을 때는 전혀 모르고 지나쳤던 날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유난히 올해는 계절감을 잘 느끼게 된다. 가을 안에 있구나, 가을이 지나가고 있구나. 다음 계절을 또 느끼려고 나는 서울도 벗어나보고 매번 가던 길 대신 다른 길로도 돌아가보기도 해야겠다.

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지역의 독립서점을 찾는 일. 서울의 독립서점 역시 애정하고, 주변 약속이 있다면 들리는 편인데, 구례까지 와서 이 서점을 놓칠 수 없었다.'섬진강책사랑'은 서울에서 중고서적거리에서 오랫동안 책을 수집해오신 사장님이 구례에 터를 잡은 곳이라고 들었다. 수해가 있기도 하고, 많은 책이 유실되기도 상하기도 하는 과정이 있었지만 그 과정까지도 기록해서 역사로 만들어온 사람의 흔적이 곳곳에 느껴졌다.

일단 1층부터 3층까지, 정말 책이 많았고.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책이 많아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봐야할지 막막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2층에서 문학 카테고리 즈음 와서야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아는 책도, 읽어볼 책들도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옛날에는 어떻게 이런 제목을 짓고 책이 나올 수 있었을까 싶은 이상한 책들도 많았다. 그래서 낄낄대면서 웃었다. 현재는 절판되서 볼 수 없는 책들도, 75년도 누군가가 열심히 공부한 책도 있었는데 내가 찾고 싶었던 절판되어서 구매할 수 없는 책은 이 책의 무덤이자 책이 주인인 공간에서도 찾기 어려웠다. ㅎㅎ

책에도 시대가 있고 흐름이 있어서 예전에는 백과사전처럼 50권씩 장서로 놓고 들였던 데에서부터 지금 좀 가벼워진 책, 자기계발서의 흐름 같은 것들을 훑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섬진강대로를 타고 피아골로 간다. 구례는 처음이라, 토지가 쓰였던 곳이라는 토지면을 지나고 굽이굽이 정말 '산 길'을 올라가서 도착한 오늘의 에어비앤비.

이 길이 맞아? 여기 집이 있는 게 맞아? 하는 중앙선도 잘 안보이는 길을 따라서 올라가다 보면 유럽 숲속 같은 집이 나오는데, 비도 조금씩 오고 날도 어두워지는 차에 결정적으로 만난 집이라서 아늑함이 배가 됐다. 낯선 것들의 집합체가 여행이기도 할 텐데 왜 인간은 여행을 하고 싶어할까.

오늘처럼 예상치 못한 변수와 그걸 만나고 난 후에 회복하는 과정의 짜릿함, 돌아오고 나서 안온함에 대한 감각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어서 그럴까.

분명한 것은 여행 덕분에 속도를 감각하고, 내 일상에 숨구멍을 하나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진 속도와 많은 말들이 가지는 장점도 있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의 삶도 가능하다는 것을 한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구례는 구례의 속도로, 여백과 온기, 다정으로 남았다.


머물렀던 에어비앤비와 호호의 숲, 그리고 다시 떠나오는 버스 사진으로 이 여행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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