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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 Oct 24. 2022

나를 상하지 않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나는 이 여행에서 무엇을 얻고 싶었나?

휴식을 얻고 싶었다. 자유로움을 일하지 않음을 얻고 싶었다.

떠나옴 그 자체. 하늘이 보이는 곳. 지평선을 세어볼 수 있는 곳. 그런 곳에 닿기를 바랐다.

하루는 지평선과 강의 면면을 이틀은 굽이굽이 산의 울창함 속에서 능선을 보고 사이로 들어가 포근함을 느끼면서 그렇게 왔다갔다.


이 여행을 뭐라할 수 있을까. 나는 살아오던대로, 습관대로 살다가 서울의 속도로 살다가 나주, 구례의 속도를 알게 되고, 누웠고, 누리다가 다시 서울에 도착했다. 최근에 동료가 ‘나에게 쉼이란?’, 휴식과 관련된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을 듣자마자 떠올린 건, 구례의 향나무 앞이었어. 숨 쉴 자리를 하나 더 만들게 된 셈이다. 어디서든 구례 향나무숲을 떠올릴 수 있는 여행이 하나 생겼다. 지리산 피아골 아래의 다정하고 따뜻한 숙소에서 먹는 아침, 밤나무 아래서 하루를 성실히 시작하는 할머니들을 만났던 날을 꼭꼭 눈에 담았으니까.

일상이 여행같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맨날 설렘으로 세상의 면면을 관찰하듯, 감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차근차근, 나의 속도와 템포를 맞추어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세상은 다 나같지 않고 내가 맞춰가야 하는 때가 훨씬 많다.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느라 스쳐지나가는 것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해내야하는 일에 초점을 맞춰서 주변 이야는 아웃포커싱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언제나, 늘이라는 단어보다 때때로, 순간을 더 믿기로 했다. 중간중간 살아있음을 알아채기 위해 나는 숨 쉴 자리들을 많이 만들어 놓을테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더 분명해졌다.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되는 나. 그런 상태로 있을 수 있는 곳. 느긋하고 다정한 사람들. 그 사이에서 나는 쉴 수 있다. 숨을. 쉼을. 그런 살아있음을 감각할 수 있는 것들을.

서울에서 나주로 출발했다. 차를 미리 예매하지 않은덕에 새벽의 파스텔 하늘 핑크하늘색의 어딘가를보고 햇살이 동쪽에서서쪽으로 내리쬐는 빛을 누리면서 갔다. 여행자의 마음으로 전환했다고 생각했다. 빠르게 스위치를 온/오프!

사실 잘 안됐던 것 같다. 뭔가를 많이 받아들이겠다고 온 세상을 기쁜 마음으로 보고 있기는 했지만, 맛있는 밥을 와앙 먹었지만, 뭔가 급한 마음이었다는 걸 여행 후에야 알아차린다.

마음이 급했다. 해야할 것과 이동해야 하는 시간 사이에서 나는 조급한 상태였다는 걸 인정한다. 여행 속에 나를 슥- 놓기보다, 여행을 잘 완수해야겠다는 바쁜 마음이 앞섰다. 업무 일정 소화하듯 여행을 해먹었다. 카페를 들려서 내가 제시간에 예약을 했는지 쪽염색 예약 시간을 확인하고, 늦지 않도록 카페에서 나와야할 시간을 계산했다. 나를 관리했다. 호다닥. 시간체크똑딱똑딱.


그렇게 시간을 맞추어 카페에서 출발.


 

탁 트인 도로를 만났다. 노란색으로 변해가는 나주평야를 마주하게 된다. 가을의 시작이 펼쳐져 있었다. 신이 나서 음악을 선곡했고, 둠칫둠칫 몸을 조금씩 오른쪽 왼쪽 씰룩거리면서 이동했다. 창문을 열었다. 뚱땅뚱땅 음악은 바운스를 만들었다. 앞으로 달려나갔다. 뻥 뚤린 도로를 시원하게 가르다보니 쪽염색관에 거의 다 도착했다. 쭉 뻗은 도로에서 살짝 벗어나, 오른쪽 작은 도로로 내려간다. 작은 시골길이 이어지고, 멀리서 노랑색 네모로 보이던 벼가 사라락 사라락 움직이는 게 보인다. 풍경이 휙휙 지나가지 않고 스르륵 찬찬히 지나간다. 초점을 가까이에 옮겼다.

사무실에서 일을하면 해가 언제 어떻게 떠 있는지, 그림자는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차릴 새가없다. 모니터를 많이 보니까 눈의 심도를달리할 일도 잘 없다. 그래서점심시간에 기어코 산책을 사수하려고 애썼는데. 그 30분은 한참 모자랐던 것으로 판명났다. 이렇게 다른데. 멀리서 한번, 가까이서 한번, 지나가면서 또 한번. 내려서 멈춰서서 한번. 흘려보내기를 또다시 한번. 그렇게 여러번 봐도 부족한 아무것도 아닌 일상. 나무. 햇빛. 땅. 강. 이 세상에 살아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주는건 모니터 속, 자극적인 것들이 아니라 그냥 평범해서 너무 흔해서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이런 것들이 아닐까. 나는 서울에서 2시간 휙-순식간에 달려내려온 나주에서, 밥 먹고 카페를 가고 그렇게 또 시간을 5시간이나 보낸 뒤에야 드디어 여행에 겨우 도착했다.

영산강 둔치의 갈대숲을 만났고, 나는 잠시 평화로워졌고 느긋해졌다. 쪽염색을 마치고 원래 일정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반짝이는 강을 그대로 두고가기는 너무 아쉬워서 강변으로 가보기로 했다.

4대강 사업을 하다가 정비를 완료하지 못했는지, 적당한 입구를 찾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10분은 그 주변 도로를 돌아다녔던 것 같다. 그런데 길을 찾기 위해 헤맨 것이 오해려 좋은 드라이브가 됐다. 넘실거리는 갈대, 뒤로는 푸르고 검고 하얀 강, 잔잔하지만 계속 움직이는 것들. 살아있다고 말하는 것들 앞에서 우리 역시도 살아서 이곳인지, 저곳인지를 기웃거리고 있었으니까. 헤매기 전문인 나는  그 순간, 그 물결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결국 5분 거리에 있는 쪽염색관 주차장에 차를 다시 대놓고 영산강으로 향했다. 여름을 지나서 가을로 가고있구나! 가을의 시작을 이렇게, 이 도시에서 하는구나. 느끼고 있었다. 다음 일정 생각보다는 반짝이는 윤슬을, 흔들리는 억새를 보고 거기서 춤을 추는 조효를 보고 깔깔 웃고, 억새밭으로 들어가서 진짜 막 셔터를 눌러대는 조효를 보면서 낄낄 대면서 웃고.

여유를 부리다가 오늘 구례로 넘어가려면, 에어비앤비는 잘되어있나.택시를 타고가야하나 밤이 너무 늦나.이런 걱정이 슬며시 고개를들었다. 호스트에게 연락이 왔다. 데릴러올 수 있대. 와아- 앗. 그럼 빨리 움직여야겠는데? 서둘려야겠다. 가자!


그렇게 잰 걸음으로 영산강을 나와서 영산포의 사직동그가게 나주에서를 찾았다. 


토요일마다 그랑께마켓이 열린다고 해서 일부러 시간을 맞춰서 찾아갔다. 서촌에 있는사직동 그가게를 처음만난 날도 참 좋았으니까. 목적지를 정하지않고 혼자 우연히 들어갔다가 혼자 감동을 받아서 카메라를연신눌러댔으니까. 아늑하고, 포근하고 정겨운. 곳곳에 직접 가지고오고 만든 듯한 이음새가 내가 편히 들어갈 수 있도록 틈새를 만들어줬으니까. 그래서 나는 나주에서도 사직동그가게를찾았다. 그랑께마켓은 공동체실험을 하고 있는팀이 같이 꾸려가는 공간이라고 한다. 이곳 역시도 운영하는 사람들의 취향, 제안, 그들의 시선과 손길이 총총 담겨있다. 시멘트로 된 힙한 건물, 깔끔한 신사옥이 아니라도 각자의 색으로 반짝일수 있다는 걸 새삼스레 다시느낀다. 이 자줏빛 벽돌, 천과 나무, 티벳에 대한 설명, 기부한 사람의 이야기, 셀러의 순간들이 곳곳에 담겨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네. 환대의 차, 포도는 얼마나 고소하고 달큰한지. 화려한 것들 사이에서 힙하고 큰것들 사이에서 빠져나와서 나는 이런순간을 찾고있었던 것 같다. 소중하게 다룬 어떤 것.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는 분위기.

그러다가 다시 스릴러.(ㅎ) 버스를 타기위해서 여유롭게 나온다고 나왔는데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20년 경력의 베테랑은 아니니, 조심히 가고 싶다. 근데 안 끼워준다. 악. 저 외제차는 왜 이렇게 막가시는건데요? 이 벤츠는 왜 또 여기서만나는 건데요? 네비게이션은 왜 자꾸 애매하게 길을 안내하시는건데요? 불안함을 고조시키는 상황들. 애써진정하려고 밝아지는 목소리. 올라가는 톤. 스릴러와 긍정대마왕 사이를 오고가면서 난리법썩시끌시끌하게 광주유스퀘어에 도착했다.


나주에서 광주까지 가는데 차는 왜 막히는지. 우리는 마지막에 왜 10분 더 일찍 나오지 않았는지. 그런 후회를 해가면서 광주에 도착했다. 차를 빠르게 주차하고, 경보하다시피 트렁크를 끌고 광주유스퀘어에 도착했다. 15분 남짓 남은 상황. 물을 큰 거 하나 사고, 저녁까지 빠르게 포장을 하고 질서정연하게 00번 승강장 앞으로 갔다. 탑승완료. 정말 긴박감 넘치는 날이었어, 그렇지.


속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어서. 내가 원하는대로 자율주행하는 차가 아니라서 나는 어느 순간에는 시속 5km로 달리다가 어느순간에는 시속 80km까지내달리기를 반복했다. 언제나 비슷한 속도를유지할 수는 없는걸까 채소야. 롤러코스터 같은 마음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나의 에너지를 감당해가면서 나는 구례에 도착했다. 이제 여행의 길목은 지나가는 건가. 내일이면 좀 괜찮을까. 응. 왜냐면 에어비앤비가 호스트가 내어준 별채가 마음에 들었거든. 픽업해주시고 먹을거까지 안내해주시는 친절한 호스트. 그녀 덕분에 나는 구례 여행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했다.

롤러코스터 맛 1편 이후 2편은 코끼리열차다. 코끼리열차는 시속 80km까지 달리지 않아. 

걱정하지말자. 구례에서살고싶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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