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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 Oct 25. 2021

다시 하고 싶어하는 마음

지쳤나요? 네니요. (숨을 깊게 들이 마신다.)

다음 주 행사를 앞두고 있다.

두통이라는 걸 잘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머리가 종종 뜨거워진다.

주문이 필요해.


일주일 정도를, 퇴근해서도 컴퓨터를 켜고 디자인을 시작했던 것 같다. 저녁 10시에 퇴근해서 돌아오면 11시, 씻거나 뭘 좀 먹고 새벽 2시 30분, 3시까지 일러스트와 씨름을 했다. 디자인을 하던 사람이 아니니 레이아웃은 이게 맞을지, 표현은 이게 적당할지 고민하다가 예술을 시작해버렸고. 그렇게 며칠을 3시간 자고 일어나서 출근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어제보다 나은 게 생각났다며 뭔가를 수정했던 한 주. 6시에 알람을 맞춰서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 못해서 알람을 껐다가 이게 무슨 짓인지 하면서 다시 6시 30분쯤 일어나는 며칠. 그렇게 4일을 사니까 그 뒤로는 몸이 안 따라와줬다. 힘을 꽉 주고 있었는데 힘들어서 놓게 되던걸. 수명을 좀 당겨 쓴 느낌이 확실히 있다.


그럼에도 해내야 한다.

잘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공존해.


그냥 이 상태에서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힘에 대해서 써본다.

올해 초에 읽었던 정혜윤의 책의 일부로 좀 더 잘 살고 있는 것만 같은데.

‘다시’를 시도하는 정혜윤의 문장을 써본다.


“저는 ‘다시’라는 단어가 그렇게 부드러워요. 다시 하고 싶어하는 마음, 다시 잘해보고 싶은 마음, (…) 어쨌든 ‘다시’라고 말하는 사람의 마음 안에 이미 있는, 새로 출발하는 능력요.”

“그건 바로 ‘사랑을 알아보는 힘’이야.(…) 사랑을 ‘다시 알아봄’이라고 표현할 것 같아. 우리가 미래를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뭔가를 특히 사랑할 만한 것을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말과도 같아. 물론 자기 자신도 포함해서. 무릇 다시 시작하려는 자는 자기 자신도 다시 알아볼 수 있어야만 해.”




다시, 다시를 기어코 외치는 건

아마도 계속 실패하고 계속 그만두기 때문이겠지.

나는 다시 하려고 숨을 쉰다. 깊게 들이 마신다.

아, 괜찮을 것이다.


금요일까지 끝낼 줄 알았던 일은 남아 있었고, 대강 정리해 보내 두곤 머리를 자르러 왔다. 금요일이면 내가 일을 다 끝냈을 거라고 과거의 나는 생각했기 때문이지. 뭔가를 쳐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작은 성취. 외부 자극으로 잠시나마 변화를 느껴보고 싶었나봐. 한 번에 가는 버스를 타겠다는 핑계로 오랜만에 좀 걸었어. 짧아져서 강아지 귀 흔드는 것 같은 것 마냥 촐랑거리는 머리를 만끽하면서 조금은 리듬을 만들어 걸었다. 신호등 앞에 멈춰 있는 버스를 보곤 저 버스를 놓치면 10분을 기다려야 하는데, 기다리긴 싫으니 뛰어서 타기도 하고. 작은 스펙터클을 만들면서 나는 잠시 일이랑 딱 붙어있던 나를 잠시 떼어놨다.


한결 가뿐해진 머리와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온다. 오늘은 일을 더 하고 싶지 않아. 잠시 멈출래. 고구마를 굽고, 두유를 마시고, 스우파를 그제야 봤다. (본방사수하듯 봐왔는데 무려 3일을 참은 것이지.) 가벼운 외부 자극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눈 가리고 아웅한 것이라고 하다면 그것도 맞다. 숨 쉴 구멍이 필요했다. 잠시.


오랜만에 일이 눈에 걸려서 새벽까지 마우스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걸 버리고, 그냥 잤다. 그나마 일찍. 일 말고 다른 거 보고 들을 준비를 한다. 어쩜 이렇게 날이 좋은지. 한강으로 달려갔다. 동네 빵집의 유명한 구황작물 빵을 들고 친구들을 만났다. 장발장이 훔친 빵맛은 나를 당장 행복하게 하니까. 사실 온라인으로 만나던 친구들이라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다. 서울함공원에서 만나서 망원유수지 쪽으로. 한강이 잘 보이는 곳에 돗자리를 편다. 각기 다른 돗자리 세 개가 귀엽다. 자기 성격 같다. 앉아서 배고픈 마음을 얘기하면서 허겁지겁 가져온 음식들을 꺼낸다. 각자 챙겨 온 밥이 맛있다. 사과 아삭, 비건 김밥 짭조름 새콤, 샤인머스켓 달콤, 브라우니 달달콤. 볕을 쬔다. 


나른한 오후다. 쉬는 것 같다. 어떻게 살았는지 근황을 나누다가 해가 기울어서 내 눈으로 자꾸 볕이 들어온다. 파도의 모자를 빌린다. 파도 머리가 나보다 작아서 위에 대강 걸쳤다. 깔끔하게 잘 눌러쓰지 않고 대강 얹어둔 모자가 마음에 든다. 빡빡하지 않아서 좋다. 사는 것 같다. 난지공원으로 넘어가서 풀도 강도 본다. 그걸 보는 우리도 찍는다. 재밌다. 생각 없이 지금 하는 행동이 전부가 된다. 난간 줄에 잠깐 올라가 본다. 한 칸 건너서는 파도가 줄에 다리를 걸쳐놓았다. 출렁거리처럼 울렁거리는 게 느껴진다. 감각할 수 있다. 지금 여기만 있다. 깔깔 거리면서 웃는 우리를 우리가 찍는다. 우주와 콩순이는 느긋하다. 김포공항 가는 비행기를 본다. 울렁거리는 윤슬을 본다. 노을이 진다. 세상이 주황색이 되는 시간을 찍는다. 그 시간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우주의 카메라를 따라간다. 노을을 보고 집에 가자고 얘기하는 목소리가 좋다. 다시 망원유수지 쪽으로 돌아온다. 따릉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부담감을 좀 내려놨다.

나는 다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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