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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 May 09. 2021

일-일상 사이의 흐흐-릿한 여행

우린 관광지 취향이 아니었던 거야 그치?

조효에게

별 다를 것 없는 일상이었어.

그게 여행이었다는 게 새로웠지.


부제 : 조효과 태안과 파도리와 안면도와 집과 환대에 대하여(2)


여행을 가기 전 바지런히 집을 청소하느라 바빴고 그렇게 태안으로 출발. 하늘이 미쳤지. 어색하고 황홀한 하루였다.


조효에게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었어. 그게 여행이었다는 게 새로웠지.

태안으로 여행지를 정한 것도, 그 날짜인 것도 그냥 네가 있는 곳이라서. 단지 그 이유였던 덕분이야. 그냥 믿고 그냥 같이 가면 되는 내 친구네 집이 있는 곳이라서 무작정 아무런 걱정 없이 간 거였거든.

게으른 여행자였다고도 볼 수 있겠다. 사실 나는 겁쟁이라서 여행을 자주 다니지 않았어. 지금 살고 있는 이 일상이 너무 바쁜 것만 같았거든. 내 손안에 쥐고 있는 걸 놓칠까봐 전전긍긍했어. 일상에서는 일정한 비용이면 하루를 살 걸 여행은 한순간, 며칠 만에 꽤 많은 걸 지불해야 하잖아. 그래서 나는 재고 따지면서 여행을 했어. 나 스스로 여행을 처음 가게 되었을 때는 계획 세우길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인데도, 차 시간까지 착착, 오늘은 여기여기를 가야 하고. 여기를 가야만 해. 라고 정리를 해뒀다니까?

요즘은 계획대로 되는 게 없다는 걸 조금은 알게 되어서 그렇게까지 계획을 짜지는 않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여행을 갔으니까, 더 이만한 시간과 비용을 들였으니 잘, 많은 걸 보고 가고 싶은 마음은 여전해. 그래서 여행을 가는 길에서라도 다음엔 어디를 갈지를 생각하고, 여행길에 오른 뒤에 창밖을 보기보다 미래를 위해 스마트폰의 작은 액정을 보고서 다음 여정을 그릴 때도 있었어.

그렇게 여행은 내 일상을 떠나서 낯선 곳에 가닿는 그래서 뭔가를 얻어왔으면, 또는 해소하고 왔으면 하는 목적이 강렬했던 거야. 느긋하기로 했지만 혼자 가는 여행에서는 초행길이고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긴장을 하기는 했으니까. 어깨에 힘주고, 해가 뉘엿뉘엿 지면, 발걸음을 경보 수준으로 찹찹찹 걸어 다니던 내가 그렇지 않았다고 할까. 그래서 이번 태안 여행이 조금 특별하지 않았나. 생각해.


나는 이런 여행을 좋아하는구나. 낯선 곳에서도 기어코 살다가 가고 싶어하는 그런. 일상의 일부분을 꼭 지키고 싶어하는 그런. 몸이 긴장된 상태로 고조되는 무엇도 좋겠으나 그냥 조금 더 느긋해져도 좋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날들.

내가 오전에 출발한다고 했지만, 영화를 한편 보고 가고 싶고, 청소를 하고 가고 싶은 마음에 친구한테 오후에 간다고 얘기했고. 그게 수용되는 것 자체도 크나 큰 행운이었다. 그렇게 5시 55분에 도착한 태안, 연휴라서 차가 꽉 막혔고 2시간 10분 예상시간은 2시간 30분, 36분, 44분 이렇게 길어져만 갔다. 기사님은 고속도로로 달리는 것보다 일반국도로 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셨는지 구불구불한 2차선 국도를 마구 달리셨어.

 그렇게 5시 55분에, 허겁지겁 도착했다. 일몰은 6시 25분이었어. 그래서 너무 시간이 부족했지. 첫 번째 날 날이 무척 좋았는데, 내가 일몰만 보는 시간에 와서 너는 아쉬웠을 수도 있겠다. 근데 그런 내색 없이 만나자마자 신나게 인사하고 뛰어서 차에 올라탔고 해변을 향해서 신나게 도로를 가로질렀다.

 뭘 이야기했는지 보다 그냥 무슨 얘기를 하든지 껄껄 웃으면서 근황을 막 서로 던졌던 것 같아. 어떻게 사는지 이야기하다가 뭔가에 분노하고 또 기뻐했지. 근데 과속 신호 감지기를 못 보고 속도를 더 내버린 거야. 과태료를 물게 된 것도 서로 어이없어하면서도 어색해지지 않도록, 정적이 앉지 않도록 껄껄 웃어넘기는 너를 본다. 놀랐을 만한데, 기분 나빠지지 않는 이걸 이렇게 껄껄 웃으면서 넘어간다고? 싶은 너에게 나는 고마움과 편안함을 느꼈어. 큰 배려지. 나라면 그렇게 넘길 수 있었을까 싶어. 나는 놀라기도 놀라고, 예상치 못한 비용이 드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했을 테니까. 또 너 역시 너 스스로 혼자 있었다면 다른 반응이기도 했을 테니까. 그래서 더 고마운 마음이 든다. 조효. 나는 너 덕분에 태안에 온 지 15분 즈음. 긴장하지 않는 시간이 이렇게도 좋구나 하면서. 마음을 놓을 수 있었어.

 

 우리가 회사를 다닌지 1년이 벌써 지났다. 네가 힘든 일이 있을 때 달려갔다던 그 바다를 같이 보다니. 그 사이에 너는 파도리를 3번 갔다고 했지. 바다에서 살아본 적은 너도 이번이 처음인데, 힘든 마음이 바다를 보고 있으면 좀 낫다고. 어른스럽게 평온한 목소리로 얘기하던 네 옆모습을 떠올려.

 우리는 힘들 때 당장 전화를 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잘 그러지 않으니까. 서로 떨어져 있고 각자의 일상도 존중하는 마음인가. 아마도 그런가? 각자 스스로 한번 소화하고 나중에서야 공유하는 습관이 있으니까. 네가 어려운 마음으로 달려서 왔을 길과 1차선으로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 달려서 만났던 바다를. 나는 이제 너랑 같이 보고 있어.

 이제 우리는 파도가 치고 다시 바다로 가면서 '자갈자갈자갈'하는 소리를 같이 듣는다. 파도에 작은 돌멩이들이 부서지고 계속 밀려오는 바다에 동그렇게 마모된, 동그래진 돌멩이들을 만지작거려. 저기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무슨 스팟이래. 그래? 가볼까? 이야기하기도 하고. 저기서 캠핑을 종종 하기도 하더라? 가볼까? 하고 발 가는 대로 눈 가는 대로 움직여본다. 좋다. 네가 왔다던 바다를 같이 볼 수 있어서, 이렇게 또 시간을 쌓을 수 있어서 말이야. 수평선이랑 눈 앞의 파도를 보면서 생각을 정리했을 혼자 곱씹기도 하고 던지기도 했을 조효의 어떤 순간을 내가 좀 더 잘 그릴 수 있게 돼서 좋았어.


서울에서는 해가 이렇게 늦게까지 수평선 너머로 남아있는지 몰랐는데 말이야. 여명은 꽤 오랫동안 남아있더라고. 하늘이 까만색으로 바로 변하는 게 아니고. 붉은색으로, 또 진한 보라색으로, 남색으로 그렇게 해가 진다는 걸 나는 바닷가가 있는 마을에 와서 다시 실감해. 오랜만이다. 보통은 회사에서 퇴근을 하고 나면, 내 머리 위에 있는 해는 져서 없고, 창밖을 보면 어둑어둑한 느낌만 크니까, 해가 이렇게도 긴 호흡으로 지는지 잘 못 느꼈거든. 서울이 아닌 곳에서 지내고 있다는 걸 비로소 실감해. 이 바다를 잔뜩 보면서. 우리가 통화로도 얘기했던 그 사람들과 일과 사소하고 하찮은 무언가에 대해서도 다시 말 위에 올려두고서 말이야.



첫날은 아마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었나. 맛있는 샤부샤부를 먹고서 배 터질 만큼 배불러서 돌아왔다. 어린애들 같았어. 적당히, 적절히 그런 단어 보고 싶은 걸 마음껏 보고 좋은 걸 좋다고 마음껏 외치고, 행복하다고 황홀한 것 같다고, 이 느낌이 너무 좋다고. 당장 뱉어버리고 마는 그 순간들이 말이야. 조효 네가 내심 걱정하면서 열심히 치웠다던 집은 역시 내 친구의 집 답더라. 너무 오밀조밀 예쁘던데. 깔끔하고. 너는 내가 와서 열심히 치웠다고 했지만, 나도 네가 온다고 했을 때 더 열심히 청소했던 게 기억나서 다들 그렇지 뭐 하고 넘겼어. 근데 우리 서로의 집에 갈 때, 어쨌든 최대한 정돈하려고 하는 게 마음이기도 하고 집이기도 하다면 그것 자체도 꽤 괜찮은 효과가 아닐까. 두서없지만, 그냥 나는 내 마음 상태랑 집 상태가 비슷한 것 같아서. 내가 놀러감으로 인해서 네 집이 조금 더 정돈될 수 있는 효과가 있다면 부수적이지만 그것도 꽤 좋은 거 아닌가 생각했어. 나 역시 그렇거든. 그렇게 치워두면 사람은 항상성이 있어서 그런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 지기도 하니까. (절대적으로 그렇지 않아지고 싶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틀째 안면도의 끝이 그렇게 좋대, 라는 지인 추천으로 안면도로 떠났지. 나는 뚜벅이니까 네가 차가 있는 게 그렇게 좋더라. 드라이브하는 게 가슴 시원해지고 뻥 뚫리는 느낌이었어. 어떤 바다에 우연히 내려서 물이 빠져나간 바다에서 생전 처음 보는 연보라색 조개부터, 자기 모양이 각각 다른 조개까지, 엄청 큰 조개도 봤지. 흐렸는데 우리가 바다에서 잠깐 노는 시간은 햇빛이 들어서 반짝반짝, 모래와 조개를 비췄다.

 유명하다는 바다를 둘러보고 안면도의 끝, 태안에서 들어가지만 서산에 속하는 어떤 섬에도 들어갔지. 세상의 끝을 다들 왜 그렇게 보고 싶어 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끝을 보자고, 갔던 길은 동료가 벚꽃이 폈을 때 드라이브 하기 참 좋다'는 말을 빼놓고 추천해줬음을 인지했고, 벚꽃이 피지 않은 벚나무길을 상쾌하게 달려 나가서 아무것도 없는 낚시꾼들의 성지와 80년대에 머물러있는 듯한 어촌을 보고서 다시 돌아갔지.

 그리곤 안면암에 기대를 걸어봤어. 가는 길, 너무 평온해 보이는 목장 같은 뷰가 있어서 흙바닥 길, 비포장도로를 뚫고 가보기도 하고 말이야. ㅋㅋㅋ 정말 막무가내였고, 무계획이었던 날인데 우리는 뭐가 좋은지 계속 웃어댔다. 그냥 너랑 가는 게 재밌었어. 안면암은 자본주의 관광지의 성지였고, 엄청 금색인 탑인가? 그런 게 있어서 조효 너는 어이없음을 금치 못했어. 그걸 보는 나는 너무 웃겼고, 우리는 관광지랑 안 맞다. 이렇게 또 취향을 알아간다며 낄낄댔다. 그 와중에 태안 소나무?는 키가 엄청 큰데 지붕? 나뭇잎은 위쪽에 넓게 펼쳐져 있어서 신기했고, 그 나무들이 만든 터널을 지나는 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어. 그래 그런 날들이었어. 아무것도 아닌 것에 신기해하면서 계속 웃고, 사실 그것에 전부인 일상이었다. 멋지다고 좋다고 사람들이 말하던 곳에는 사실상 아무것도 없었고 우리는 그 여정을 가는 내내, 그냥 같이 아무 말을 주고받으면서 각자가 좋아하는 풍경을 서로 공유하는 시간들을 쌓았네. 우린 통화를 길게 하곤 하니까. 각자 어떤 시선을 두고 있는지 어떤 걸 보고 있는지 매번 나누지는 못했으니까 말이야.


조효, 나는 태안을 떠나와 다시 일주일을 살고 이대로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어. 일주일 전인데도 생생했거든. 그래서 최대한 내 기억을 뭐라도 써놓으려고.

맞아. 이 여행은 3월 1일까지 2박 3일간 다녀왔는데, 지금이 5월 9일인 걸 보면 2달간 초안을 놓고서 발행하지 못했던 것이 맞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읽는데 또 태안 바다를 소환할 수 있었지 뭐야? 아무 글이더라도, 그냥 남겨두려고. 이런 나의 순간이 있었다. 이런 조효와의 시간이 있었다. 그렇게 꼭 말해두려고.


조효 너에게는 어떤 시간으로 기억될까. 나는 너의 배려에, 우리의 어른스러움에 좀 더 잘 살 수 있게 되었달까? 그리고 이제는 같은 교복을 입고 급식 먹으러 뛰어가는 중학생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버티고 성장하고 치열하게 일하고 있는 각각의 몫을 봐. 힘드네. 숨이 막히기도 하지만, 너는 정말 최고다. 나는 숨이 막히면 그냥 막히는구나 하고 동굴로 들어가기도 하고, 싫어해버리기도 하는데 너란 사람의 마인드는 참 대단해. 여행기의 마지막은 조효 찬양인데. 그냥 연구소-집-대학원-본가를 다니는 너의 일상에 잠시 끼어들 수 있어서 참 좋았어. 나에겐 여행이었지만 너에겐 일상이었을까 여행이었을까.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그냥 통화하듯이 내놓는다. 또 놀러 갈게. 또 놀러 와. 늘 함께한다고 말하는 건 그렇지 못할 거라는 걸 아니까, 솔직하게. 조효 네가 힘들 때, 신나 할 때 같이 춤추고 울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남미 가서 같이 춤추기로 했던 거 기억나니? 곧 가자. 금방 갈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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