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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갤럭시맘 Oct 26. 2020

인생을 향유하도록 만드는 경험

자녀에게 '잉여타임'을 허락해야 하는 이유

가끔 입시 컨설팅 할 때 진귀한 풍경이 펼쳐진다.


전국에 공부 잘하는 최상위 이과 학생은 의예과, 치의예과, 한의예과를 섞어 쓴다.

나도 학생들의 대학이 겹치지 않게 살피느라 머리 아플 때가 있다. 그리고 이후에는 생명공학과 컴퓨터공학으로 죄다 비슷하다. '묻지마 이과 피해자'도 속출한다. '묻지마 이과 피해자'는 진학과 취업에 대한 압력 때문에 사교육의 힘을 받아 이공계로 진학은 했는데 적성과 소질 부족으로 학업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포기하는 재수, 반수생을 뜻한다. 공부 잘하는 최상위권 문과학생은 SKY대나 못해도 서.성.한 경영학과를 죄다 쓰고  공부 잘하는 최상위 여학생은 전국 교대 골라서 서울부터 가까운 수도권으로 6개 조합해서 쓴다. 참 쓸만한 곳이 무척 한정되어 있고 적성 꿈 모두 획일적이다. 그래도 대학가서 잘 풀리면 다행인데 학부때도 안되면 이제 대학원을 로스쿨과 의학전문대학원  두 군데 다쓴다. 정말 색과 결이 너무 다른 두 전공이지만 어디든 붙으면 가는 것이고 거기에 맞춰 적응해 살면 된다. 물론 로스쿨과 의학전문대학원도 부모가 지원해줘야 쓸 수 있지만..

 그런데 이 모든 걸 절대 비난할 수 없다.      


요즘 같이 어려운 시대 

다 먹고 살려고 최선을 다해 선택하는 것이다.      




 참 사치스러운 말일 수도 있는데 우리 사회 속 부모들은 학생 개개인이 자신을 탐험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공부 말고는 다 쓸데없는 짓거리다. 공부를 하든지 아니면 차라리 잠이라도 자서 수업시간에 졸지라도 않길 바란다. 아이가 쓸데없는 짓 하는 걸 보면 정말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코칭하는 아이들의 엄마는 나에게 이런 부분으로 연락을 많이 한다. 본인이 잔소리하시면 집에 큰 전쟁이 일어나니 내게 하소연을 많이 하신다.


 그런데 온실속의 화초는 빨리 시든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기 전에 자신의 소망과 아이디어가 실현되는 과정의 경험을 반드시 꼭 해봐야 한다. 또 잉여라고 부르는 그런 삽집 뻘짓을 다 해봐야 한다. 그런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나중에 정말 다르다. 자기가 주도적으로 뭔가 시도하면서 실패와 실수를 경험하며 극복해 나가는 이 과정이 얼마나 큰 자산이 되는지 모른다. 그래서 범죄빼고는 이것저것 다 경험해 보는게 오히려 진로와 적성을 빨리 잘 찾는다.


 나도 중학교 때부터 그룹사운드 한다고 댄스 동아리 한다고 연습하고 여러 행사 다닌다고 난리 쳤다.또 신기하게 꼭 시험기간에는 잘 안 읽던 고전이나 소설 책 읽는다고 그랬었다. 만화방만화는 그냥 매일 봤고 ㅎㅎ

상을 타든 못 타든 백일장 대회나 여러 글짓기 대회도 나가고 고등학교 때 도서부 신문편집부등 참 별 걸 다했다.

방학은 내신 성적과 수능 성적을 올리는 최고의 골든타임인데도 불구하고 국어선생님을 너무 좋아해 그 분 눈에 스페셜한 문학소녀로 인식되고 싶어 박경리의 ‘토지’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같은 어려운 전집을 구해서 읽겠다고 그 난리를 쳤었다. 이해도 안 가는데 웬 허세인지 꾸역꾸역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한번은 이상의 시를 읽다가 엄청 울었다.  

그냥 이 사람이 얼마나 외로웠을지.. 그 외로움과 고뇌등이 온 감각으로 순간 느껴져서..

그런데 이 눈물의 양이 측정되서 시험 점수에 반영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 .


시험은 감히 나의 감수성과 눈물의 양을 측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나는 시험이라는 평가를 떠나서 예술과 문학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고, 

인간의 삶을 숭고하게 만드는지 그 카타르시스를 어리지만 조금이라고 맛 본 거 같다.


 청소년기 내내 음악에 빠져서 라디오와 음악을 듣다보면 새벽 2까지 않자는 건 기본이었다. 그러니 다음 날 수업시간에 졸지. 다른 친구들이 한국대중가요 들으면 한국 가수 좋아할 때 난 음악적 감성이 뛰어나다면서 괜히 외국 팝과 일본음악 찾아 듣는다고 새벽까지 않자고.  완전 허세였던거 같다 ㅎㅎ

또 고3때는 영화감독 되고 시나리오 작가 되겠다고 영화보고 드라마 보는 게 나는 공부하는 거라고 하면서 합리화하면서 공부는 잘 않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야말로 정말 ‘쓸데없는 짓’을 많이 했다.

유치한 모습에 정말 이불을 발로 차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도 우리 엄마는 단 한 번도 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신 적이 없다. 지금의 나는 교육일을 하기에 오히려 우리 엄마처럼 내 아이에게 못 그럴 것 같다. 아는게 병이라고.

 가끔 어린 시절에 착실히 공부나 더 했으면 하는 후회가 들 때도 있다. 지금의 나는 교육컨설팅 입시 자기주도학습 이런 일을 하니까 SKY 대학 나오면 더 신뢰감을 줘서 인기 많은 강사나 컨설턴트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그런데 다르게 보면 나야말로 이런 것을 겪었기에 아이들을 그 어느 누구보다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컨설팅과 코칭을 잘 하는 거 같기도 하다. 나를 봐도 그렇고 돌이켜보면 하고 싶은 것을 꼭 해야 하는 그런 시기가 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자라니까.


어른들이 쓸데 없는 뻘짓, 삽질이라고 부르는 그 속에서,

내 안에 팍팍 스파크가 터지며

내 안의 우주는 확장되었다.




좋은 학벌과 행복한 인생은 별개의 문제다.

우리는 이미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입시는 ‘선’이 아니라 우리 사회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다. 입시의 본질은 성적순으로 줄 세우기다. 우리 나라 공부나 입시의 핵심은 정해진 시간에 주어진 문제를 정확하고 빠르게 푸는 것이다. 즉, 시간 내에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성실한 엉덩이 힘이 중요하다. 그래서  아이의 성적이 높지 않아  좋은 학교에 못 들어간다 하더라도 아이의 강점과 가능성은 결코 하락 된 게 아니다. 성적과 학벌에만 눈이 팔린 채 자신의 인생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갖지 못한다며 교육은 모두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다. 나름 입시전문가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참 모순적이게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싶은것인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에서 입시제도 인정은 하지만 이게 거대하게 압도해서 나와 내 아이의 미래와 인생과 행복을 송두리째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이런 ‘배짱’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자녀가 진로를 제대로 찾고 실속 있는 인생을 살 수 있고 이런 아이가 서른 이후 잘 풀린다. 또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대한민국에서 공부하고 입시를 치르게 해야 자녀를 그저 ‘학벌만 높은’ 헛 똑똑이로 만들지 않는다.



무엇이 되어야만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무엇이 되지 않아도,

그 자체로 가치 있어.

그러니

무엇이 되든 상관없어.  


이 마인드가 근본으로 깔려있는 부모와 그렇지 않은 부모는 별 차이 없어보이지만

어마어마한 격차를 가지고 온다.

나 또한 이런 마인드로 내 아이를 바라보고자 노력한다.  

인생은 아득바득 살아가는 경쟁이 아니라 향유하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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