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보다 존재로, 사랑하는 이들과 더 깊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음악 수업이 끝난 어느 날, 한 아이가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여기요!" 그리고는 예쁜 꽃송이를 내 손에 쥐어주는 게 아닌가. 그 순간, 아이의 마음이 너무 사랑스럽고, 꽃도 예뻐서 행복한 기분이 밀려왔다. 기쁜 마음을 간직하고자 나는 그 장면을 사진으로 남겼다. '나도 꽃 한 송이 꺾어서 화병에 꽂아 놓을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던 찰나에 문득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서 나온 문장들이 떠올랐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서는 꽃과 관련된 시를 예로 들어 소유적 실존 양식과 존재적 실존 양식의
차이를 이해 쉽게 설명하고 있다.
테니슨의 시는 소유하려는 마음을 잘 보여준다. 그는 꽃을 “뿌리째로” 뽑아 들어 손에 쥐었다. 꽃을 이해하기 위해,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그는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꽃은 그의 소유가 된 동시에 꽃으로써의 생명력이 파괴되고 말았다.
그러나 바쇼는 달랐다. 그는 단지 “눈여겨 살펴볼” 뿐이었다. 꽃을 알아보기 위해서 꺾어서 소유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꽃을 손에 넣지 않아도 꽃을 이해하고,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테니슨은 '소유적 실존 양식'을 보여주고, 바쇼는 '존재적 실존 양식'을 보여준다. 소유하는 삶은 아름다움을 내 손 안으로 가져오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그렇게 소유한 아름다움은 꽃처럼 결국 시들어 생명력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사랑도 마찬가지 아닐까?
소유보다 존재로, 사랑하는 이들과
더 깊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그 출발점이 되어 줄,
사소하지만 깊은 실천 방법
세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주변의 소중한 사람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다. 내 기준에 맞추려 하거나, 더 나은 무언가로 바꾸려 하기보다, 그 사람의 지금 그 모습 자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보자.
말없이 조용히 바라보는 시선에는 생각보다 큰 사랑이 담겨 있다. 그저 “지금 그 모습도 괜찮아”라고 마음속으로 말해보는 것. 그 순간, 우리는 소유가 아니라 진짜 관계 속에 들어가게 된다.
작은 고마움을 자주 느끼는 사람은 쉽게 만족한다. 오늘 하루 중 감사했던 순간들을 하루에 한두 줄이라도 적어보자. 기록은 마음을 머무르게 하고, 순간의 감동을 다시 살아나게 한다. 감사는 존재를 더 깊이 느끼게 해주는 감정이다.
사람을 볼 때 겉모습이나 성과보다 더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가진 외적인 요소보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내면의 성실함, 다정함, 배려하는 마음 등을 놓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키워보자.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사랑은 조용히 피어난다. 내면의 빛을 볼 줄 아는 사람만이, 진짜 사랑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소한 노력들이 언젠가 우리를
'존재하는 삶'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따뜻한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그 변화 속에는 분명,
'행복'이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