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과 평가, 서열과 위계의 논리로 가득한 세상에서 미약한 공백을 만들어내는데, 그 빈 공간은 협력과 의존, 값으로 매겨지지 않는 기쁨으로 채워질 수 있다. 지금 찾아야 하는 건 값으로 매겨지지 않는 기쁨이다”
-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아침부터 밴드부 1, 2학년 학생들이 교무실에 찾아왔다. 졸업을 앞둔 3학년 선배들을 위해 깜짝 파티를 열어 주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아이들을 고민 끝에 레터링 케이크를 준비하기로 마음을 모았고, 밤늦은 시간까지 케이크 도안을 완성했다. 정성스럽게 담아낸 그림과 문구를 보니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이들은 완성한 케이크 도안을 제작 업체에 보내 견적을 문의했다. 도안대로 케이크를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은 무려 95,000원이었다. 예상보다 비싼 가격에 아이들은 당황했고, 그래도 선배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기에 그들은 레터링 케이크를 주문하기로 했다. 주문하기 직전에 아이들은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이 케이크는 누가 가져가지?’ 케이크는 하나인데 졸업하는 선배는 3명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고민 끝에 케이크 세 개를 주문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케이크가 세 개로 늘어나고, 비용은 더 늘어났다.
케이크를 가장 작은 사이즈로 바꾸고, 도안에서 그림도 삭제하고, 문구 역시 짧게 수정하였지만, 케이크를 제작하는데 드는 비용은 총 144,000원이 나왔다. 아이들은 케이크를 구매하기로 하고, 업체에 비용을 지불한 뒤 나를 다시 찾아왔다.
"선생님, 아침에 케이크 사주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레터링 케이크가 너무 비싸서 저희도 함께 돈을 모으려고요. 혹시 얼마 정도 보태주실 수 있으세요?" 그 순간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144,000원짜리 케이크? 정말 14만 4천 원? 1만 4천4백 원이 아니고? 그랬다. 아침에 내가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해 케이크를 사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는 케이크 가격이 144,000원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나와 학생의 대화를 지켜보던 교무실 선생님들은 한 마디씩 거들어 주셨다. "이야, 케이크가 144,000원이라고? 말도 안 돼. 그런 케이크를 본 적도 없어", "받는 사람도 그 정도 금액인 줄 알면 너무 부담스럽지 않을까?", "하여간, 그놈의 SNS 가 문제야", "얘들아, 케이크보다 마음이 중요해. 파리바게트 가면 제일 큰 사이즈도 4만 원이면 사", "너네는 후배한테 못 받을 수도 있어" 등의 현실적이고 재미있는(?) 조언을 해주셨다. 이 말들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학생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144,000원짜리 케이크를 사는 건 좀 아닌 거 같아. 케이크보다 중요한 건 너희들이 선배들을 생각하는 마음이지. 아마도 선배들은 너희들이 깜짝 파티를 준비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 감동할 거야. 화려하게 꾸민 레터링 케이크보다 더욱 감동인 건, 너희가 정성껏 쓴 편지 한 장, 함께 연주해 주는 노래 한 곡이 어쩌면 평생 잊지 못할 기쁨이 될 수도 있어.
케이크는 모두가 나눠 먹을 수 있도록 중간 사이즈로 하나만 준비하고, 그림도 몇 개 빼고, 색상, 문구도 간단히 줄여서 다시 견적을 받아보자. 그리고 케이크 준비 외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을 찾아서 파티 준비를 해보는 거 어때?
결국 아이들은 간소화된 도안으로 80,000원짜리 케이크를 주문하였다. 여전히 케이크 비용으로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지만, 더 이상 아이들을 설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학생 7명이 각자 1만 원씩 부담하고, 나머지 금액은 내가 보태기로 했다. 그리고 케이크와 함께 다이소에서 파티용품을 구매해 음악실을 꾸미기로 했다.
케이크가 5만 원만 했어도 내가 통 크게 살 수도 있었는데 그렇지 못한 게 아쉽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아쉬웠던 건.
세상이 점점 '값'으로 매겨지고,
눈에 보이는 기쁨들로만
채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가난한 사람은 점점 행복을
누릴 기회가 줄어들고,
부자들만이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행복할 자격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지는 것일까?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로 행복을 채우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돈이 없는 상황에서 더 이상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순간이 갑작스럽게 찾아오고,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일도 실제로 일어나곤 한다. 그런 경험 앞에서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동안 물질로 채워온 행복들 얼마나 덧없고, 부질없는 것이었는지를.
나는 '값으로 매겨지지 않는 기쁨'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기쁨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일 수도 있고, 친구들의 진심 어린 따뜻한 말
한마디, 누군가에게 들은 사소하지만 평생
기억에 남는 칭찬일 수도 있다.
햇살 좋은 날 걷다가 마주치는 아름다운 풍경, 비 오는 날 창 밖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 잔 일 수도 있고,
동기들과 함께 정성껏 준비한 졸업 축하 파티를 준비하는 시간들, 그리고 선배들이 준비한 케이크와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마주하는 그 찰나의 기쁨일 수도 있다.
이처럼 누군가는 쉽게 지나쳐 버릴 수도 있는 평범한 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오랜 순간 마음에 남는, '값으로 매겨지지 않는 기쁨'일 수 있다. 그 기쁨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둘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어쩌면 그것은 부요한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행복이 아니며, 가난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소중한 행복일지도 모른다.
길,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윤동주의 시 '길'의 마지막 구절,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처럼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잃으며 살아간다.
어린 시절,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에도 쉽게 웃었고, 친구들과 매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참 좋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더 크고, 더 화려하고, 더 비싼 기쁨들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성장해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소중했던 것들은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어쩌면,
잃어버린 것을 찾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
그들과 나누는 진심 어린 말 한마디,
산책하며 문득 마주치는 아름다운 풍경,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마주침의 순간들.
이런 것들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오직 '마음'으로 느끼고 나눌 수 있는
기쁨이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다만
잃어버린 ‘값으로 매겨지지 않는 기쁨'을
찾는 까닭이었으면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가장 값비싼 행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