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함'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용기'

# Keith Jarrett - My Song

by 로랑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1922년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펄롱은 미혼모에게서 태어났지만 주인집 미시즈월슨 부인과 주변인의 도움으로 평범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다섯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안정된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중, 40세가 되던 크리스마스 시즌에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던 중, 미혼모 소녀 ‘세라’를 만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세라’는 어린 나이에 출산을 한 미혼모로, 수녀원에서 고된 노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펄롱은 처음에 그녀의 상황을 외면했다. 하지만 다시 만났을 때 그녀의 이름이, 그리고 처한 상황이 어머니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 시간을 지나며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세라를 수녀원에서 구해내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그러면서 그는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펄롱이 ‘순진한 마음’ 하나로 아이를 구하고
나서야 ‘기쁨’의 감정이 생겼다면,
나는 끝내 구하지 못한,
어쩌면 구하지 않았던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교직 생활 중 내가 만났던, '세라'처럼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던 아이들.
그 아이들 중 내가 외면했던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혹시 범죄에 노출되진 않았을까?
그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며,
어느새 머릿속은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찼다.


신규 교사 시절, 누군가의 보살핌이 절실히 필요했던 아이 A를 만난 적이 있다. 열네 살 소녀 A에게는 한 살 터울인 오빠가 하나 있었다. A의 부모는 이미 이혼한 상태였고, 정확히는 A가 네 살이 되던 해 어머니가 집을 떠난 뒤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로 어머니의 소식은 끊겼다.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지방에서 일하며 1~2주에 한 번 정도만 집에 들렀고, 가까이에 사는 고모가 보호자 역할을 어느 정도 해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A는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술과 담배는 물론, 또래 남학생들과 밤새 어울리며 자정 넘는 시간까지 거리를 떠돌았고. 학교는 그저 마음 내킬 때만 찾는 곳이었다. 어쩌다 학교에 오는 날이면 도둑질을 하거나 친구들을 괴롭혔다. 이 아이가 ‘왜 이렇게 살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단순히 비행으로만 단정 지을 순 없었다. 오랜 시간 어른들에게 방치되고, 외면당함으로써 만들어진 희생의 결과인 것이다.

처음 아이의 상황을 알게 되었을 때, 너무도 안타까웠다. 매일 퇴근길마다 A가 떠올랐고,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린 날도 많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끊임없이 고민했고, 여러 시도도 해보았다. 나는 그 아이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선의가 역효과를 불러온 경우도 있었고, 그런 상황이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 교사로서 자존감이 떨어지고, 무력감을 느낀 적도 많았다. 그렇게 몇 해 동안 교직 생활을 하며 나는 여러 명의 ‘세라’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지 몰라"
한 동안 그렇게 생각하며 자책을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었다.
펄롱처럼 '순진한 마음'을 지닌
학생 B를 만나고 나서부터이다.


B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으로, 교직 생활 중 만났던 아이들 가운데 가장 헌신적으로 봉사를 했던 학생이었다. 그는 단순히 봉사점수를 받거나 생활기록부에 기록되기 위해 임하는 형식적인 봉사가 아니었다. 쓰레기 분리수거, 교실 뒷정리, 장애 학생 보조 등 대부분의 학생들이 꺼리는 일들을 자발적으로 했으며, 단 한 번도 귀찮아하거나 싫은 내색을 한 적이 없었다. 늘 해맑은 미소로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아이였기에, 나는 그의 가정환경이 특별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새 학기가 지나면서 나는 B의 사정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B는 중국인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어릴 때 한국에 왔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한국어가 서툴렀다. 아버지는 함께 하지 않았다.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왜 지금 곁에 안 계시는 지 애써 묻지는 않았다. B는 어린 시절부터 가난과 외로움에 살았다고 했다. 삶이 힘겨울 때도 많았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많은 힘이 되었다고 하며, 그는 사회복지사가 되어, 자신이 살아오며 받은 도움을 누군가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자신보다는 덜 힘들었으면 한다고.

아마도 그는 살아오면서 여러 차례 '펄롱'같은 사람들을 만났을 것이다. 그들의 사소하고,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B의 인생을 좋은 방향으로 가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도 '펄롱'같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닐까. B를 통해 나는, 학생들에게서 받은 상처로 인해 자책하며 점점 냉소적으로 변해버렸던 과거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펄롱'과 학생 B가 지닌 '순진한 마음'의 근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나는 그들의 선하고, 따뜻한 마음의 근원을 '용기'라고 부르고 싶다.


어린아이처럼,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 것을 내어줄 수 있는 마음,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자신이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돌려주고 싶어 하는 마음.
이 마음을 ‘용기’라 부르고 싶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거대한 무언가가 아닌
누군가의 사소한 따뜻함에서 비롯된
'용기'가 아닐까?
<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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