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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리영 Jun 27. 2024

하나님 왜 하필 나예요?

당첨이 항상 좋은 건 아니더라고요.

사다리 타기를 해도 항상 가장 나쁜 건
내 몫이었다.  

승부사에 대해서 욕심이 없던 나는
자주 이렇게 말하곤 했다.

괜찮아 난 이기고 싶은 마음이 없어.
그리고 좋은 걸

꼭 내가 해야 된다는 마음도 없어.

아무렴 어때.



 그날도 그랬다. 배가 차오를 만큼 가득 찬 산모들이 뱃속 아이들의 태동을 느끼며 모여 앉았다.  산부인과에서 산모모임을 행사로 주최하였고 우리는 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기고 싶지도 잘하고 싶지도 않다는 마음으로 긴 막대기를 하나씩 꺼내 들었다.


누군가는 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조심조심 빼내는 막대기 하나를 나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빼냈고

수많은 원숭이가 우수수수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산모님 꼴등 당첨!


아~~ 하하하 모두들 웃자 나도 따라 웃으며

난 상관없다는 듯이 행사를 마치고

아래층 진료실 앞에 출산 전

막달 검사를 하러 앉았다.


- 산모님 들어오세요

- 네~


의사는 내 배에 차가운 젤을 뿌렸고

배 여기저기 문지르며

아이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묵직하게 내 배를 누르며

꾹 힘을 주기 시작했다.

힘을 준 손은 잠시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회색빛의 화면을 쳐다보더니..

나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 아이가 토순이네요?


-네?

토순이가 뭐예요?...


-아이가 입이 갈라졌어요.

그러니까 토끼처럼 입이 갈라졌어요.

한쪽만 갈라진 것보다 나을까?

으.. 음.. 양쪽이 다 갈라졌네.

이게 더 나으려나?..


 임신 초기 유산기가 있어 한 달을 넘게 병원에 누워있던 시간부터 나의 주치의였다.  젤리곰이었던  아이의 손과 발이 만들어질 때 의사는 나와 함께 아이의 손가락 발가락을 함께 세주었고 아이의 머리사이즈를 재주 었으며 

심장도 꼼꼼히 함께 봐주었다.

아이의 얼굴도 차근차근 봐주며 걱정할 거 없이 아이가 잘 자라고 있다며

나를 안심시키던 의사였다.


 그런 의사가 갑자기 쥐고 있던 초음파 기계를 내려놓고 간호사에게 정리시키라는 눈짓만 한 채 나를 버려두듯이 두고 나가버렸다...

이 일은 더 이상 나와 상관이 없다는 듯이

도망쳐 어디론가 피해버리는 분위기였다.


혼자 남겨진 나는 이 상황이 무슨 일인지 몰라

얼이 빠진 얼굴로 나왔다.

함께 왔던 산모 언니가 물었다.


-너 표정이 왜 그래?


-언니... 애가 토순이래요.. 그게 뭐예요?


갑자기 언니는 얼굴을 감싸고 울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 검색하기 시작했다.


토순이... 구순구개열... 입과 입천장이 갈라진 기형으로 안면기형의 일종이다.  
몇 번의 수술이 필요하며 수유 시에 어려움을 겪는다.


핸드폰 화면에 나온 사진은

푹 파인 입천장과 생전 보지도 못한

입술의 모양들이 나와있었다.


갑작스러운 주변의 분위기에

당황스러워진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 여보... 햇님이가 그러니까 입이 아프대..

뭔지 설명도 안 해주고..

아이 입이 토순이라고만 하고..

이게 무슨 일일까?...

나 지금 당황스럽고 마음이 정리가

안 되는 상황이야...


회사에서 급하게 나온 남편은

옆 동네 더 큰 병원에 가보자고 했다.

그렇게 남편과 함께 믿기지 않는 오늘의 일을 각자의 마음에 담아두고 아무 말도 없이

차를 타고 도로를 달렸다.


그러다 터널에 들어갔다.

유난히 컴컴했으며 암흑처럼 막힌 느낌이었다. 절망의 감정이 터널 속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참고 있던 눈물이 흘러나왔다.


도착한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은

내 뱃속 아이를 살피며 말했다.


- 딸이네요.. 그리고... 양쪽이 다 갈라졌네요...

이 근처에서는 치료가 어려워요..

서울에 있는 빅 3 병원은 가셔야 할 거예요.. 지금이라도 예약하셔서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진료 보시고..

바로 수술 날짜 잡는 걸 추천합니다.


의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기 시작했다. 우선 아무 병원이나 가면 안 된다고 일러주었고 전문 소아 성형외과가 있는 곳을 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초음파로는 입 안의 상태까지는 다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에게 기형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이야기하며 내 등을 다독거려 주었다.


 아이의 기형을 알고 처음으로 누군가가 나의 속상할 마음을 읽어주는 눈빛이었다.

나의 당황스럽고 정리가 안 되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내가 쳐다보는 시선에 같은 마음으로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사다리 타기에 8개월의 줄을 타고 나의 당첨자리에 도착하게 되었다.


 가장 난감하고 대처할 수 없는 상황에 당혹함이 가득 한 채 마주 서게 되었다.


늘 가장 좋은 게 내가 아니어도 된다고 했지만.. 누구나 피하고 싶은 게 내가 되고 싶다고 한 적은 없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는 뜻밖의 내 몫을 떠안게 되었다.


우수수 떨어져 내린 원숭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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