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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Apr 12. 2024

62/100 나의 멜랑꼴리아

거절의 미학

 내가 속병을 끙끙 앓는 이유는 참 많았다. 그중 하나는 거절을 잘 못해서도 있다. 나는 수동적인 사람이었고 거절을 잘 못했다. 선택에 미숙했고 착한 아이 콤플렉스 덩어리였지. 행복은 선한 자의 몫이라는 신화를 맹신했지만 막상 착하지도 않았어. 착한 척하는 것은 능했으나 한편으론 욕망 덩어리였다. 그 모순은 나의 성장을 퇴보시켰다. 차라리 박애주의자였거나 이기주의자였다면 어떤 방향이든 멀리 뻗어나갔을 거야. 그게 아니었기 때문에 나의 벡터의 화살표는 늘 플라나리아처럼 갈라졌지. 하나만 똑 부러지게 해도 참 좋은데 욕심은 또 많아서 늘 욕망의 바구니는 넘쳐났어. 우선순위가 확실하고 똑 부러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래서 나는 픽션에 등장하는  악역을 좋아했다. 그 맹랑하고 당돌한 일관성이 좋았다. 미움받는 것을 알면서도 불나방처럼 불타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방향과 결과가 안 좋았을 뿐이지 그 에너지만은 강하고 빛났다. 악역의 말로는 픽션에서 항상 비참했던 것이 비통했다. 현실의 악당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은 싫었음에도 말이다. 한편 선한 역할의 인물들은 대게 후졌다. 거절을 할 줄 몰라도 주변에서 알아서 상황들을 만들어줬다. 출생의 비밀이라던가 타고난 미모라던가 등등의 요소들이. 그럼 그런 조건 없는 선한 이들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했다. 악역을 응원해서가 아니다. 선함을 너무 물렁하게 그려놨다. 하지만 선하고 현명한 진국들은 거절도 잘할 거야. 거절도 나를 지켜주는 보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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