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것 같긴 해?
"OO이는 이런 거 안 좋아해요."
'누구? 내가? 나? 나 말하는 거야?'
한참 전의 일이지만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은 예상을 깨는 새로운 자극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날은 스킨스쿠버 체험을 하는 날이었다. 뭐가 보일까 싶었던 바닷속은 꽤 많은 생물들이 있었다. 흔들흔들 춤을 추는 그 생명들 가운데 무언가 특별한 것이 보였다. 돌에 붙어있는 주황빛의 무엇을 본 스킨스쿠버 강사가 칼을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능숙한 솜씨로 슥슥 거리더니 돌에 붙어있던 그것을 떼어냈다. 그것은 돌에 붙어사는 돌멍게로 일반멍게와는 다르게 껍질이 두껍고 단단했다. 작은 수확을 모두에게 알리며 올라가서 맛을 보자며 흔들었다.
그렇게 짧은 바닷속 구경을 마치고 나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찰나였다.
"OO이는 이런 거 안 좋아해요."
"아, 그래요? 이 좋은 걸? 그럼 우리끼리 먹읍시다."
'누구? 내가? 나? 나 말하는 거야?'
머릿속으로 혼잣말을 하며 들어서는데, 눈앞에 아까 바닷속에서 수확한 돌멍게의 껍질이 보였다.
'뭐야? 다 먹은 거야?'
라는 눈빛을 보내자, 강사님이 멋쩍어하며 말했다.
"OO씨는 이런 거 안 좋아한다고 해서..."
"누가? 제가요? 저 멍게 좋아하는데..."
그렇다. 나는 멍게를 좋아한다. 그 향긋한 바다내음과 짭조름하면서도 시원하며, 말캉하면서도 설컹한 멍게를 좋아한다. 그런데 그런 내가 순식간에 '이런 거' 안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누가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는가.
나를 꽤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나의 친구는 자신이 아는 내가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누군가 친구를 통해서 나에 대해 물어보는 것을, 나를 통하지 않고 대답한 적이 종종 있었음을 나는 건너 들어 알고 있다. 그런 일이 몇 번 있고 나니 괜히 뿔이 나기도 했다. 나도 좋아하는데, 나도 가고 싶은데, 나도 먹고 싶은데. 나에게 오기도 전에 커트해 버리는 친구의 진짜 의향이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뭐야, 나를 알기는 아는 거야? 그때 다짐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안다고 쉽게 말하지 말아야지.', '직접 듣지 않은 말은, 아니 직접 들은 말도 확정 지어 말하지 말아야지.' 사람 마음은 언제든 변할 수 있으니 말이다. 스무 살의 내가 여름을 좋아한다고 말했다고, 마흔 살의 나도 계속 여름만 좋아하란 법은 없지 않은가. 물론 책임을 져야 하는 말도 분명 있다. 하지만 이런 가벼운 호불호를 목숨 걸고 지키진 않는다.
그러고 보면 안다는 착각은 위험한 일이다. 지레짐작은 결코 정답이 아니다. 함부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돌멍게를 보면 그날의 에피소드가 늘 떠오른다. 어쩌면 고마운 일일 수도 있겠다. 나의 신념 중 하나를 만들어 준 일이기도 하니 말이다. 무엇이든 함부로 단정 짓지 말 것. 흠, 아니다. 함부로 단정 짓지 말아야지를 떠올리면 돌멍게가 생각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것 또한 단정 지을 수 없는 일이다. 순서가 어찌 되었던, 안다는 착각이 정말 착각임을 우리는 종종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내가 아는 것, 기억하는 것은 진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