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어떤 일이 있었나?
“로리, 얼굴이 어둡네요. 왠지 행복해 보이지 않아요”
팀장이 회의 중에 갑자기 던진 말이다. “에이 아니에요”라고 탁구공치듯 말을 받아넘겼다. 잠시 어수선했던 분위긴 다른 안건으로 바로 넘어가며 정리가 되었다. 다행히 다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만 빼고. 사실 아닌 게 아니었다.
그때가 그랬다. 회사에 출근하는 게 그야말로 곤혹스러웠다. 점심식사 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무거웠다.
일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일이 안 맞았다. 함께 일하는 동료는 모두 친절했지만 하고 싶은 얘기가 마땅히 없었다. 안 맞는 일에서도 배우는 게 있다지만 마흔이 넘어 그런데서 의미를 찾는 게 또 뭔 의미인가 싶었다. 그런 날이 이어지니 표정은 어두울 수밖에.
회사 떠날 궁리만 했던 거 같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쉽나. 이직을 위해 헤드헌터나 이력서 관리를 한 것도 아니고, 창업은 그야말로 능력 빵빵한 극소수 얘기였다. 바보 같은 시간이 하염없이 이어졌다. 그러다 회사 게시판에서 스토리펀딩 2주년 행사 안내를 보게 됐다. 삼성역 더부스에서 스토리펀딩을 빛낸 파트너 몇 분을 초대해 조촐하게 진행하는데, 직원 10명을 초대한다는 내용이 꼬리에 붙어 있었다. 그 당시 회사를 향한 정이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애정 했던 서비스가 있었으니 바로 스토리펀딩이었고, 사는데 의욕이 크게 없었지만 뒤늦게 발견한 대동강 페일 에일을 마실 때만큼은 쌩쌩했다. 망설일 것 없이 참가 신청을 했다. 이렇게라도 사는 낙을 찾아야 했다. 신청 후 한 시간 정도가 지났다. 스토리펀딩 담당자가 톡을 보내왔다.
“로리, 참가 신청한 거 봤어요. 혹시 이 행사 사회를 볼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엥??” 뜬금없고 급작스러웠지만 공짜 술 마시니 도움이 되면 좋겠다 싶어, “알겠다”라고 답했다.
드디어 행사날. 목에 넣어도 안 아픈 ‘피맥’ 덕분에 분위기는 술렁술렁 달아올랐다. 행사는 큰 박수를 받고 잘 끝났고 뒤풀이가 이어졌다. 잘 끝냈다는 안도감과 맛있는 술, 즐거운 분위기, 멋진 이들과 함께 있으니 오랜만에 연신 웃고 있었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옛말이다 싶었는데, 웬일. 펀딩 리더가 뜻밖의 얘길 던졌다.
“혹시 팀 옮길 생각 있나요? 우리 팀으로~ ”
으아아아아아. 아니 이건 내가 그토록 바라던 최상의 상황 아닌가.
팀 이동은 (나의 바람대로) 빠르게 추진되었다. 그렇게 스토리펀딩팀에 합류했다. 스토리펀딩은 카카오가 운영하는 크라우드펀딩 서비스인데, ‘뉴스 펀딩’으로 시작해 판을 키워왔다. 크게 보자면 저널리즘 관련 프로젝트가 강세였고, 와디즈나 텀블벅처럼 제품 펀딩이 또 한 축이었다. 난 펀딩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일을 맡았다. 스토리펀딩 프로젝트는 2가지 경로를 통해 기획한다. 제안 페이지를 통해 접수된 것을 ‘스토리펀딩’에 적합한 것을 골라낸다. 또 하나는 펀딩 기획자들이 펀딩 파트너를 물색하고 섭외하고 (기나긴) 협의와 합의를 통해 시작한다. 나는 후자의 일을 맡았다. 이렇게 프로젝트 띄우는 교육을 받고 두달 정도 지나 펀딩 프로젝트 기획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료들의 패턴과 도움을 따랐다. 그렇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촛불집회 사진집’이었다. 시작이 어려웠지 하나를 올리니 두 번째부터 수월해졌다. 한두 달이 지나며 일이 손에 잡히면서 새로운 스타일의 프로젝트를 해 보고 싶었다. 내가 잘할 수 있고, 성과를 낼 수 있는 프로젝트는 무엇일지 두루 살폈다. ‘경험 프로젝트’와 ‘먹거리 프로젝트’가 그 결과로 등장했다.
‘100일 글쓰기’가 경험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먹거리 프로젝트는 ‘곶감’으로 시작했다. 두 프로젝트는 ‘기대’ 이상 반응이 컸다. 그동안 스토리펀딩에서 보지 못했던 프로젝트라 유저들의 관심이 높았던 거 같다. 반응이 좋으니, 확장과 지속은 당연한 수순. 다양한 파트너들을 만나 30일 100일 경험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그러던 중 경험의 중요한 축인 ‘여행’을 스토리펀딩에 론칭해 보고 싶었다. ‘알쓸신잡’에서 힌트를 얻었다. 우연히 [퇴사 준비생의 도쿄] 2박 3일 여행 광고를 봤다. “어머! 이건 꼭 가야 해!” (이걸 놓치면 후회할 거 같아) 마음이 요동쳤다. 갈 방법을 궁리하다, 출장으로 풀었다. 믿고 지원해주는 스타일의 팀장에게 구두 승인을 받고, 기안을 올렸다. 야호~
곧이어 출장 기안이 반려되었단 알람이 떴다. 팀장은 승인했지만, 최종 승인을 하는 관련 부서에서 이건 출장이 아닌 거 같단 피드백을 줬다. 조금 억울했다. 왜 가려하는지 설명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어떤 결론이 날지 짐작이 갔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진 않았다. 이름하여 착한 직원 컴플렉스.
포기할까, 어떻게 할까 며칠을 고민했다. 결국 사비를 털었다. 너무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출장이 아니라 여행으로 다녀왔다. 2박 3일 동안 책에 있는 곳들을 훑었다. 그 이야길 페북에 중계하듯 올렸다. 나만 보기 아까운 것들이 많았다. 책이 워낙 인기가 있어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퇴사’란 키워드가 여행에서 다녀와, 페북에 이번 도쿄 여행 리뷰를 하면 오실 분이 있는지 물었다.
오. 반응이 격렬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할 만했다. 그렇게 장소를 섭외하고 발표자료를 가다듬었다. 100페이지가 조금 넘었다.
90분 정도 쉼 없이 여행 리뷰를 풀었다. 반응이 좋으니 나도 덩달아 좋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느낌은 언제나 좋다. 이걸 한 번으로 끝내기 아까웠다. 그렇게 8번을 진행하니 많은 게 변했다. 먼저 준비했던 자료의 두께가 더 두터워졌다. 매번 새로운 피드백을 받았고 그걸 추가했다. 준비하면서 공부를 더 하게 되니 내용이 더 실해졌다. 반면 그걸 풀어내는 스토리 라인은 더 정갈하고 심플해졌다. 처음보다 내용은 많아졌지만 진행시간은 90분이 유지가 되었다. 이렇게 여러 번 진행하다가 어쩌면 책을 만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산보를 시작했다가 어느새 하프 마라톤을 달리는 기분이랄까. 큰 목표를 품기보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다 보면 어느새 그 목표에 가깝게 다다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다 보니 누군가의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는 리뷰 프로젝트를 만들면 어떨까? 란 생각이 들었다. 지인들 중에 흥미로운 경험을 가진 분들이 누가 있나 찾아봤다. 이때 페이스북 도움이 컸다. 그동안 페친들의 일상과 특별한 순간들을 많이 봤고, 기억에 남는 장면을 올린 지인들이 쉽게 그려졌다. 페친들 중에는 지인이라고 하지만, 만난 적 없는 분들도 많다. 취향이 통하는 분들과 이어진 경우가 그렇다. 세계 최대 뮤직 페스티벌인 ‘벨기에 투마로우 랜드’를 다녀온 이시우 님 리뷰도 그렇게 나온 거다. 비슷한 방법으로 세 번째 네 번째가 리뷰빙자리뷰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어딘가를 다녀온 이들의 경험만 리뷰하다 무언가를 경험한 리뷰 어떤 것을 만들어 본 리뷰 혹은 연구한 분들의 리뷰까지 확장되었다. 그렇게 2018년 12월까지 19개의 리빙리가 진행이 됐다.
이 프로젝트 이름이 리뷰빙자리뷰인 이유는 강연 방식이 아닌 ‘살롱 방식’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냥 이야길 전달하고 공감하는데 그치지 않고, 느슨한 연결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작은 공간에서 20명 안팎의 참가자를 모아 진행했다. 시작할 때 참가자들은 자기소개를 한다. 누구고 무얼 하고 왜 왔는지를 얘기한다. 참가자들이 리뷰어뿐 아니라 참가자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건, 그렇게 하면 훨씬 만족도가 높다란 걸 많은 행사를 통해 경험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