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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문장들 / 김이경

읽은 책 문장 채집 no.90

2021년. 카카오프로젝트 100. [문장채집] 100일 간 진행합니다.
1) 새로운 책이 아닌, 읽은 책 중에서 한 권을 뽑습니다.
2) 밑줄이나 모서리를 접은 부분을 중심을 읽고, 그 대목을 채집합니다.
3) 1일 / 읽은 책 1권 / 1개의 문장이 목표입니다(만 하다보면 조금은 바뀔 수 있겠죠).


시의 문장들 / 김이경


1.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뼛속까지 서늘하게 하는 말, 다행이다 (천양희, 다행이라는 말.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 차디찬 돌바닥에 엎드려 구걸하는 아기 엄마를 상대로 손가락질이나 하는 옹졸하고 몰인정한 심보라니 그런 심보를 키워 온 나야말로 참 불행이다. 당신은 어떤가? 다행인가? 불행인가? (p. 27)


2.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함민복, 꽃.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 그 경계가 나와 너의 사이, 안과 밖의 사이, 우리와 그들의 사이이기도 한 것은 몰랐다. 그 사이에서 꽃이 핀다는 걸 몰랐다.(p.31)


3.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전집) / 욕하는 청소년, 뽕 맞는 연예인, 더러운 음식점, 술 취한 노숙자, 쓰레기 무단 투기, 불법 주차, 새치기.. 분개할 거리가 너무 많아서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하고 탄신할 시간도 없다니까 (p. 33)


4.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이근화,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우리들의 진화) / 이렇게 소리차다 보면 아마 넌 웃게 될 거야. 눈물이 글썽해지도록.(p. 35)


5.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울라브 H 하우게,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마세요) / 누나, 왜 이렇게 늙었어? 왜 이렇게 늙었느냐고? 너만큼이나 정직한 시간 때문이지 뭣 때문이겠니!(p. 37)


6. 나는 비애로 가는 차 그러나 나아감을 믿는 바퀴(허수경, 꽃핀 나무 아래. 혼자 가는 먼 집) / 오래전 일기를 보며 그때를 그래워한다. 질문을 두려워 않던 나를, 나아감을 믿었던 나를, 아직 젊던 나를.(p. 41)


7.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윤재철,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능소화) / 내가 없으면 일이 안 될 줄 알았다. 김빠진 맥주처럼 싱거울 줄 알았다. 아니더라.(p. 51)


8. 한때 간곡하게 나이기를 바랐던 사랑은 인간의 일이지만 그 사랑이 죽어서도 나무인 것은 시간들의 일이었습니다.(안현미, 시간들. 이별의 재구성 / 이젠 다 끝났다고 슬퍼했는데, 아! 아직 나무가 될 날이 남았네요.(p. 73)


9. 나는 이 세상에 나서 어떤 나무를 심어왔고, 내 정원에는 어떤 목소리의 새가 날아왔던가.(이홍섭, 귀 조경. 터미널) / 나는 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나무를 키우고 나무에 새를 깃들인 건 내가 한 일이 아니다. 나는 모르는 누가 나 모르게 한 일이다. 그래서 다 고맙다.(p. 75)


10. 길가에 지은 집처럼 너무 많은 밑줄이 너를 지나갔다(여태천, 난독증. 스윙) / 누구는 재미있다고 하고, 누구는 피곤하다고 하고, 누구는 소심하다고 하고, 누구는 자신만만하다고 하고, 누구는 젊다고 하고, 누구는 삭았다고 하고, 누구는 부럽다고 하고, 누구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한다. 모두 다 나를 두고 한 말이다.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


11. 하지만 오늘은 너에게 나를 빌려주고 싶구나.(신해욱, 보고 싶은 친구에게. 생물성) / 내 삶의 많은 시간은 그 애들이 빌려준 것인데..(p. 93)


12. 네 아이를 잃고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시인은 말한다. 이 세상은 사랑하기 좋은 곳이라고. 삶이 이런데 어찌 엄살을 피우랴 (p. 97)


13.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김사인, 조용한 일. 가만히 좋아하는) /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말이 위로와 충고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로 하려니 번번이 허방을 짚고 만다. 가만히 곁에 있어 주는 위로, 조용히 몸으로 보여 주는 충고, 달리 무엇이 있는가?(p. 99)


14. 고통에 찬 달팽이를 보거든 충고하려 하지 마라. 스스로 고통에서 벗어날 것이다.(장 루슬로, 또 다른 충고) / 나중에 알았다. 어떤 사람이 충고를 듣고 잘됐다면 그건 내 덕이 아니라 남의 말을 잘 듣고 행한 그의 덕임을. 그가 충고를 구한게 나만이 아니란 것을. 더구나 내 말대로 해서 잘못된 경우는 내가 싹 잊어버린다는 것도. 그러니 너, 충고하지 마!(p. 109)


15. 내가 모르는 일이 흘러와서 내가 아는 일들로 흘러갈 때까지 잠시 떨고 있는 일(진은영, 물속에서. 우리는 매일매일) / 인생이 뭐야?라고 누가 물으면 딱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p. 115)


16.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최승자, 삼십 세. 이 시대의 사랑) / 삶은 그런 시간들로 이어진다는 것을.(p. 123)


17. 생판 모르는 타자의 행복을 응원하는.. 사십 년 묵은 노력한 타짜인 거지 (성미정, 김혜수의 행복을 비는 타자의 새벽.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 / 나이 먹어서 배운 게 딱 하나 있다. 너의 행복은 나의 행복이고, 당신의 불행은 돌고 돌아 내 불행이 된다는 것.(p 145)


18.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짣너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이면우, 거미.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 어떤 아홉수든 아무튼 아홉수는 외롭기 십상이다.(p. 151)


19. 사소한 비극에 연연하지마. 총으로 나비를 쏘지 마. 웃어 버려 (헨리 루더포드 엘리어트, 인생레시피) / 웃자. 그냥 웃자. 웃으면 복이 온다니까(p. 165)


20. 다음날 술자리에서 동료 직원은 말했다. 걸려온 전화기에 가득 찬 고함 소리의 틈새로 자신이 너무도 좋아한느 브람스 음악이 새오나오고 있었노라고(윤병무, 음악감상. 5분의 추억) / 아무리 더러운 말을 들어도 귀 씼을 시간도 없이 '고맙습니다, 고객님'을 뇌어야 하는 수많은 '을'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p.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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