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외도는 유전입니까, 선택입니까?

톨스토이, 유발 하라리, 마이클 샌델이 벌이는 기묘한 유전학 토론

by 더 로사 The ROSA

거실 테이블 위에 세 명의 거인이 누워 있다.

인류의 기원을 추적하는 《사피엔스》, 도덕의 무게를 묻는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150년 전 러시아의 불륜사를 다룬 《안나 카레니나》.



원대한 계획은 '통섭적 독서'였으나, 내 손은 자꾸만 한 곳으로 미끄러졌다. 안나 카레니나. 이 고전은 지독하게 재미있다. 10분 남짓한 산책 중에도 내 머릿속은 온통 오블론스키 가문의 화려한 난장판으로 가득 찼다.


오빠가 하면 불륜, 여동생이 해도 불륜?

소설의 포문을 여는 것은 오빠 오블론스키의 외도다. 뒤이어 여동생 안나 역시 치명적인 사랑에 투신한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뒤통수를 쳤다. ‘이 집안은 왜 단체로 바람을 피울까?’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떠올랐다. 호모 사피엔스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유전적 본능들. 어쩌면 사랑과 배신조차 개인의 도덕적 결함이 아닌, 뼛속 깊이 새겨진 종의 생존 전략일지 모른다는 서늘한 가설이다. 안나의 심장이 뛴 것은 그녀의 의지였을까, 아니면 사피엔스 특유의 변덕스러운 유전적 명령이었을까.


낙인은 누구의 몫인가

생각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로 이어졌다. 샌델은 전쟁터에서 돌아와 보이지 않는 정신적 외상(PTSD)을 겪는 군인들이 훈장을 받지 못하는 부분을 이야기한다. 사회가 '눈에 보이는 상처'만을 고통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 논리를 안나의 아이에게 대입해 본다. 태어나기도 전에 '불륜의 산물'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아이. 아이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단지 그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뿐이다. 사회는 이 아이의 보이지 않는 상처를 '정의'의 이름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도덕을 '자유 의지에 따른 선택'이라 믿는다. 하지만 오늘 내가 만난 세 권의 책은 공모라도 한 듯 나를 비웃었다. 하라리는 우리가 유전자의 꼭두각시라 말하고, 샌델은 정의조차 사회적 합의라는 틀에 갇혀 있다 지적하며, 톨스토이는 그 거대한 굴레 안에서 파멸해 가는 인간의 욕망을 생생하게 중계한다.


어쩌면 우리가 휘두르는 도덕적 잣대는, 이미 정해진 본능 위에서 추는 위태로운 춤일지도 모른다.


[The ROSA의 임팩트]


당신이 오늘 내린 도덕적 결정은 정말 당신의 것인가? 수만 년 전부터 설계된 유전자의 속삭임은 아닐까?


내일도 나는 철학적 고뇌를 가장한 채, 유전적 본능에 충실하게 이 지독하고 재미있는 러시아 불륜극의 다음 페이지를 넘길 것이다.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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