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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내음 May 29. 2022

삶의 페달링

피아노의 페달을 밟다가  문득

 

‘피아니스트의 발은 발레리나처럼’


드뷔시의 피아노곡을 공부할 때 지도교수가 내게 말했다. 무슨 말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말없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두 발이 세 개의 페달을 왔다 갔다 빠르게 움직인다. 한 페달, 두 개의 페달, 때로는 세 개의 페달을 동시에 밟았다 떼기를 반복하며 빠르게 미끄러지는 선생님의 발끝은 마치 발레리나처럼 가볍고 섬세했다.      


발로 밟는 게 아니라 귀로 밟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페달링은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과 민첩성을 요구하는 일이다. 피아노를 쳐온 지 몇십 년이 지났지만, 페달을 밟는 일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음악가가 페달을 ‘피아노의 영혼’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페달링은 기본 테크닉 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피아니스트의 예술적인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피아니스트는 페달을 통하여 음을 부드럽게 잇고 섬세하고 풍부한 음색과 화려한 다이내믹의 표현을 하며 연주의 완성도를 높인다.


소리가 부드럽게 잘 이어지는지 딱딱하지는 않은 지, 너무 깔끔한지 지저분한 지 구별할 수 있는 음악적인 귀와 그것에 따라서 움직일 수 있는 발의 민첩성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완성되는 고도의 음악적이며 기술적인 작업이다.      


 연주자는 페달을 끝까지 깊게 누를지, 반만 누를지, 아주 조금만 누를지, 어디서 페달을 바꿔줘야 할지를 정해야 한다.   너무 깊게, 오랫동안 밟고 있어도 지저분해지고 화성의 불협화음이 생기지만 밟아야 할 부분에서 페달을 떼거나 너무 자주 바꾸면 음이 이어지지 않고 음 사이가 멀어진다.


   

   




“나를 친구로 생각하기는 하니?”


늘 연락을 해오던 친구가 어느 날, 생각지도 않은 말을 불쑥 꺼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모든 관계에서 늘 수동적이었다. 먼저 연락하기보다는 연락이 오면 받고, 만나자고 하면 약속을 정했다. 늘 곁에 있을 것 같던 그 친구가 차츰 내 곁에서 멀어지는 것을 보며 너무 오랫동안 그 친구에게서 페달을 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삶 속에서도 페달링을 배운다.  인생이라는 큰 음악을 조화롭고 아름답게 연주하기 위해 오늘도 삶의 페달을 열심히 밟는다. 나와 상대방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때로는 길고 부드럽게, 때로는 발레리나처럼 섬세하고 가볍게....


결국 삶이라는 일상도 무대 위의 연주다. 우리는 이 무대에서 내려올 때까지 여러 희로애락, 아름다움을 표현하며 살아가고 있다. 내일은 또 어떤 무대에서 어떤 음악이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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