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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잘린송 Feb 25. 2022

루퍼트에게 있어 반려종은 인간이다

인간 중심적 시선에서 바라보면 개는 인간보다 못한 존재로, 인간의 소유물이자 장난감 또는 물건 같은 존재이다. 혹은, 인간이 사랑하는 대상(애견)이긴 하지만 인간과 같은 존재까지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감히 질문을 던지는 것이며, 인간을 동물과 동급으로 여기는 생각은 인간 중심주의 사고방식에 있어서 결코 허용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이지만 사실 동물과 식물 사이에서 나의 위치를 말하자면 나는 그저 그들과 같은 존재일 뿐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적어도 이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우열과 우위를 따질 수가 없이 모두가 평등하다는 생각에서다.


루퍼트에게 있어 나는 반려 종이다. 인간이며, 자신을 책임져 주며, 자신을 돌봐주며 사랑해 주는 대상이다. 루퍼트도 나에게 같은 역할을  것이다. 우리는  공간에서 함께하며, 하루하루 달라지는 일상과 서로를 위해 변화한다. 나는 이것을 정신적 진화라고 본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진화를 통해 미래를   있는 힘을 키워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신체적인 변화가 생길 것이며, 그것이  신체적 진화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서로를 '나눈다' 개념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시선에서 볼 때, 루퍼트는 무능한 동물에 불과하다. 루퍼트는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인간이 몇 푼의 돈을 지불하면 살 수 있는 상품이며, 상품의 질이 떨어지면 반품이 가능하고, 상품을 쓰다가 질리면 버려져도 괜찮은 존재이다. 따라서 보통의 사람들에겐 루퍼트가 아프면 당연히 치료를 해서 낫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면 그냥 보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개는 인간이 아니므로, 아파도 그 생명은 존중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털북숭이 아이들이 누군가의 애완동물로 사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 할 지도 모른다. 먹여주고 재워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동물이 인간의 사랑과 관심을 받은 것은 영광인 것이다- 인간이 우위에 있다는 오만함이 불러온 오류.

따라서 루퍼트가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의중에도 없을뿐더러, '개가 말을 못 하는데 더 살고 싶어 하는지 아닌 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라며 오히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든다.


만일 루퍼트가 내가 낳은 자식이었다면, 그 애가 불치병에 걸려 치료의 방법이 없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고 한다면-사람들은 과연 나에게 그 애가 더 고통스러워하기 전에 그냥 안락사시키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느냔 말이냐.


그런 사람들이 내가 루퍼트의 치료비로 수백만 원을 쓰는 것을 '대단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그럴 필요도 가치도 없는데 그렇게 까지 하다니'라고 해석할 수가 있다. 사람도 아니고 개한테, 아무리 13년 넘게 키워도 본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돈이면 더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고, 더 좋은 옷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치료비에 대한 문제는 소비 방식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의 차이로 갈라지게 된다. 만일 루퍼트가 사람이었다면 의견이 나눠질 필요도 없는 것이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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