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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잘린송 Feb 24. 2022

퇴원 이틀째

루퍼트에게 있어서 집에 있는 것, 나와 함께 하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약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회복하고 있다. 어제 검사 결과에 맞춰 약을 달리 먹고 있고, 다행히도 아직까진 문제가 없다. 호흡수도 안정적인 데다 스스로 물을 마시고 음식을 먹기까지 하니, 대견하다.


이상한 것은 고기가 든 음식을 먹지 않으려 한다는 것, 끓이거나 여러 재료를 섞어 가공시킨 음식은 먹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유일하게 먹는 음식이 계란 흰자, 사과, 당근, 양배추, 무. 그것도 따로따로 나눠서 챙겨줘야 하고, 일정 양이 차면 먹지 않고 뱉어내기까지 한다. 이게 너와 나의 의사소통 방식이라면, 네가 버릇이 잘못 든 강아지가 아니라 더 이상 먹기 싫다는 말을 내게 전하는 거겠지. 나는 그래서 다음엔 무얼 먹어볼까? 양배추?라고 녀석에게 물어본다. 그러자 루퍼트는 양배추가 맞다며 콧방귀로 대답을 한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소통하며 나는 루퍼트에게 먹을 것을 주고, 물을 마시게 하고 있다.


일정 시간을 간격으로 환자식과 전해질, 그리고 약을 먹이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주는 행위 자체가 어려운 것 이라기보다는 약을 정해진 시간에 주어야 하기 때문에 내가 충분히 잠을 잘 수도 없고 제대로 먹을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육아가 힘들다고 할 때의 상황과 비슷한 것일까 생각이 문득 들더라. 간병과 육아, 결국 나보다 약한 누군가를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니.

하지만 이렇게라도 내가 사랑하는 개 루퍼트를 돌봐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너의 마음과 육체를 건강하게 해 주는 것이라면 그것 자체로 영광 아니겠니.


당분간은 얘를 집에 십분 조차도 혼자  수는 없을  같다. 나가려고 하는 낌새만 보이면 흥분을 해서 그렇다. 동네 슈퍼에도 가지 못할  같아 아예 인터넷에서 장을 잔뜩 봐놨다. 10 정도는 외출할 일이 없도록 말이다. 주로 루퍼트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샀는데, 네가  먹었으면 좋겠다.


이제 곧 3월인데, 사정이 이렇다 해도 꽃은 보러 가고 싶은데. 집 앞 공원에 곧 매화랑 개나리며 진달래가 필텐데, 네가 어서 좋아져서 함께 꽃구경이라도 해 보았으면.


어제 퇴원 후 첫 진료를 받느러 가는 길. 이제 곧 봄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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