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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잘린송 Feb 23. 2022

2022년 2월 22일

참으로 이상한 숫자다.

아마 1011년 11월 11일, 이런 날짜개념으로 따져봤을 때 정말 천년에 한번 오는 그런 날인 것 같다.

얼마 전엔 임인년 임인월 임인일 임인시도 돌아오지 않았던가. 그런 기묘한 시간의 에너지와 파장이 맞았던 건지, 루퍼트는 기적적으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도 루퍼트는 며칠 버티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아마 병원 사람들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그 독한 약을 맞고 버틴 것은 아마 집에 너무 가고싶어서 였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의사는 갑작스러운 퇴원 제안을 건네면서 집에서 보살펴 줄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아직은 콧줄을 끼고 있어서 그것을 통해 마실것과 먹을 것을 공급하는 방법, 그리고 약주는 방법을 말이다. 처음엔 조금 무섭고 낯설었지만 한번 하다보니 이제는 손에 익었다.


의사는 내게 말 했다. "루퍼트가 집에 가서 좋아질지 나빠질지 정말 그건 예측불가합니다. 나빠지면 이제는 더이상의 방법이 없어요...하지만 마음이라도 편하게 몇시간, 며칠 만이라도 보호자님과 함께 하는게 루퍼트에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심장병은 결국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 했고, 내가 한번 잘 케어해보겠다며 데리고 온 것이다.


집에 오자마자 루퍼트는 오줌을 쌌고, 물을 마셨다. 너무나 기특하고 예뻤다. 나만 계속 쳐다보고, 방 안 을 돌아다녔다.

루퍼트에게 밥을 먹이는 시간, 약을 먹이는 시간 스케줄은 사실 내가 잠을 거의 잘 수 없을 정도로 바쁘다. 두시간 간격으로 무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려울 것은 없다. 피곤해지긴 하겠지만 말이다. 어차피 나는 잠을 잘 못자므로 생활이 크게 불편해 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위안해 본다.


그리고 오늘 아침 밥과 약을 먹이고, 노래를 불러줬고, 내 옆에서 루퍼트는 곤히 잠들었다.


아침 8시, 내가 식사 할 차례다. 양배추와 당근을 우적우적 먹고 있는데, 루퍼트가 양배추를 먹고싶다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어차피 안먹을거면서... 하며 양배추를 조금 뜯어주니 너무 맛있게 잘 먹는 것이었다.

생채소를 많이 주면 신장에 무리가 갈까봐 조금씩 주었다. 잘 먹는 루퍼트가 예뻐서, 혹시 평소 좋아하던 간맛 쿠키도 먹을까 싶어 쿠키를 잘게 빻아 주었다. 이것도 아주 잘 먹더라. 그러다가 화장실 가고싶다고 나한테 제스처를 보이길래 화장실로 데려가니, 루퍼트는 한바퀴 뱅글 돌고 대변을 보기 시작했다. 이정도면 아픈 아이 치고 꽤 건강한 상태 아닌가.

기쁨을 이루 말 할 수 없다...


루퍼트는 천년에   내려지는 축복을 받은, 행운아가 아닐까? 나의 간절함과 기도가 통했다 한들, 스스로의 의지 없이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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