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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잘린송 Aug 05. 2022

입추 전야제

부욱하고 아버지는 달력을 찢으셨다. 식사 도중 아, 곧 8월인데 하시면서.

그땐 7월의 끝자락이었다. 그날 저녁은 아버지가 만든 청국장과 열무김치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고, 나는 아버지에게 바다가 있는 어디든 떠나고 싶다고 이야기하던 참이었다. 

8월엔 아버지가 시간이 나려나... 약속이 꽤 있는데 말이야... 아이고, 7월 다 가고 벌써 8월이면 달력을 넘겨야지 하고 부욱, 달력을 찢더니 8월의 일요일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시며 "이날 약속이 있고, 이날에도 약속이 있어서 같이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딸". 

나는 "아버지 나 혼자 갈 거야. 루루가 옆에 없어 슬퍼 견딜 수가 없어 혼자 머리 좀 식히고 올게" 그런데 아버지는 걱정이 되셨는지 절대 혼자 못 보낸다고. 가려거든 당일치기로 강릉이나 다녀오라고 하셨다.

그러던 와중에 어젯밤 공기에 살짝 가을의 촉감이 느껴져서 혹시 입추가 언제일까 요일들 밑에 쓰인 한자를 살펴보니 이번 주 일요일인 것이다. 루루가 살아있을 때 종종, 계절이 바뀔 때마다 뭐 대단한 거라도 할 것처럼 너랑 지내느라 내가 어딜 못 나가겠어, 너만 없으면 난 어디든 자유롭게 훨훨 날아갈 것이다... 우리 사랑은 서로에게 족쇄나 마찬가지로구나, 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정작 네가 없는 나의 일상은 자유가 찾아온 것이 아니라 되려 외딴섬처럼... 내 시간은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고 순간순간을 통째로 매장시키는 것 같구나. 너와 함께하는 시간이 나를 구속하긴 했지만 오히려 난 그 안에서 자유로웠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계속 살아가야 하기에, 그러니 올해 입추 전 날에는 홀로 살아가야 하는 시간을 받아들일 준비라도 해야겠다. 사실 바다엘 가기엔 조금 귀찮으니 큰 바람이 부는 근처의 빌딩 숲이라도 찾아가 마음속에 남아있는 너에 대한 죄책감과 미련 모두 바람에 사라져 버리라고 주문을 외워야겠다. 그러고 나서 가을이 찾아오면 너와 행복했던 순간을 닮은 따뜻한 코트하나 새로 장만하여 추운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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