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2025년 9월 13일

by MONAD

오늘은 하늘에 구름이 많고 반쯤 흐리다.

감귤빛 노을을 보고 싶은 토요일인데 노을을 보긴 어렵겠다.

그렇다고 비가 올 날씨도 아니다.

그저 햇님이 흩어진 구름 속에서 나왔다 들어갔다 바쁜, 조금 서늘한 날이다.


일기를 다시 써 보기로 했는데 일기를 쓰는 곳이 여기 브런치가 될 줄은 나도 몰랐다.


다만 너무 감정적이지 않고, 또 지나치게 감상적이지 않은 글을 남기고 싶었는데 공개적인 장소라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뿐이었다.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일기라니, 쓰기도 읽기도 편하진 않을 듯싶다.


일기의 장점은 솔직함인데 내가 이 공개적 장소에 얼마니 솔직하게 글을 적을 수 있을까?

궁금하도다...


그러나 사실은 솔직하게 적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날씨나ㅡ

일어난 일이나ㅡ

일상이나ㅡ

날짜 같은 것은 사실이 되겠지 싶다.

사실 이 글들은 일기라서 나를 위한 글들이니,

누가 읽든지 말든지 특별히 더 마음 쓰지 않기로 --- 단단히 마음먹어본다.

... 마음 쓴다면 너무 소소한 걸 적어내는 내가 싫어지거나 그러다보면 아마 일기라고 적은 걸 바꿔야 할지 모른다.


점심을 감자를 잔뜩넣은 된장국 끓여 먹고 집 안 가득한 음식냄새를 내보내려고 이곳저곳에 양초를 켜고도 모자라서 뒷 뜰에 연결된 문을 활짝 열자마자,

왼쪽 앞발의 발가락이 두 개 밖에 없는 용감이가 어디선가 숨어있다 뛰어오며 그 모습을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눈이 마주치자마자 활짝 웃고 말았다.


너무 오랜만이라 나는 그간 혹여 로드킬을 당한 건 아닌지 속으로 은근히 걱정했었다.

저번 볼 때보다 빼빼 마른 몸통에 얼룩덜룩 마른버짐 같은 게 여기저기 보인다.

ㅡ에구, 저런.. 그간 고생이 많았네...


딱 보면 알겠다.


용감이는 나랑 올 초부터 안면을 튼 검은색 다람쥐다.

왼쪽 앞 발의 발가락에 발가락이 두 개밖에 안 남았는데 좀 더 어린 다람쥐일 때부터 어느 날, 어디선가 그렇게 다쳐서 아픈 발로 뛰어다녔다. 우린 그러니까 아주 추운 겨울에 만났다.


다람쥐들도 약한 다람쥐는 어딜 가나 약자가 된다. 먹을 걸 얻을 때도 다른 다람쥐에게 쫓기고 쫓긴다.

믿지 못한다 해도, 내가 본 바에 의하면 다람쥐세계에게도 다람쥐들끼리 서로에게 다정함과 냉정함은 극과 극이다. 다정한 친구는 다정하고, 냉정한 서로는 서로서로 힘센 이가 약한 이를 무섭게 쫓아낸다.


어린 용감이는 겨우 땅콩하나 얻으려고 내게 가까이 올 때부터 슬쩍 봐도 몸에 상처가 여기저기 있었다.


그래도 포기를 모르고 먹고살려고 열심히 사는 용감이를 보면 마치 그 모습이 울 아이들 같기도 해서 마음이 괜스레 뭉클하다.


몸이 그래서 무리에 끼지도 못하고 눈치 보다가 혹은 숨어있다 나설 수밖에 없어도 그런데도 늘 포기하지 않고 용감하고 부지런해서 내가 용감이라고 이름 지어줬다.


다른 다람쥐들은 회색다람쥐에 모습이 비슷비슷해서 구별이 어려워 이름 짓기를 포기해서 사실 용감이는 내게 이름을 얻은 유일한 다람쥐이다.


무료한 울집 고양이를 위해 뒷뜰의 새들이나 구경하라고 뿌려 둔 아몬드 여나믄 개가 새 보다 먼저 다람쥐를 불러 모았다.


아몬드 한 줌에 먹을 게 그렇게 없나 싶을 정도로 많은 다람쥐가 오갈 때면 울 고양이들도 신나서 바라보고 나도 바라보기 신이 난다.


아무튼 용감이는 아몬드 여섯 개를 주면 네 개를 어딘가에 부지런히 묻고 와서 두 개를 내 앞에서 아삭거리며 먹는다. 그리고 더 달라고 나를 바라본다.


바보인지 아님 똘똘이인지, 난 구분을 못하고 아몬드를 서너 개 더 주곤 한다.


다람쥐들도 힘세고 영리해 보이는 다람쥐들은 먼저 부지런히 최대한 입에 두어개 물고가서 야무지게 먹는다.

그리고 충분히 먹고 난 후에 나머지를 어딘가 주변에 부지런히 묻고 온다.


아마 용감이는 먹을게 늘 아쉬우니 저축을 먼저 하는 바보일 거야.

ㅡ아니 저축을 먼저 하니 똘똘이지.

ㅡ그런데 배 골리며 저축하니 역시나 바보지.

ㅡ 오늘 이 시간이 제일 중요한데 지금 제일 행복하게 한 후에 그다음 몇 초 뒤래도 미래를 생각해야 맞지...


나는 그렇게 혼자 생각하며 역시 오늘도 부지런히 몇 개 안 되는 아몬드를 날라 숨기는 용감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도 그런 바보가 아닌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용감이를 바라보다가 커피를 내려 마시며 이 글을 끌낼 무렵, 작은 양초가 다 탔다.


그래도 내 몸에선 된장국 냄새가 여전하다.


문득 드는 생각은, 저녁은 뭘 먹지?


저녁을 위해 새로 마트에 가서 장을 봐야 하나 고민을 해본다.


만두 달랑 한팩 남은 냉장고에 달걀만 그득하다.


살아있는 동안 먹고사는 일은 끝이 없구나싶으니 갑자기 사는 일이 대단해보인다.


그 대단한 일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다람쥐나 생명은 다 같이 대단하구나싶다.


토요일 저녁, 주말이지만 별거없다.


별거있던 주말이 언제였던가? 아득할 뿐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