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4일
일요일엔 청소를 한다.
다른 날도 청소를 하지만 일요일엔 창문틀도 닦아내고 유리창도 한번 더 닦고 평소 잘 안 쓰는 락스도 사용해서 더 열심히 청소한다.
구석구석 뒤져서 분리수거할 것들도 꼼꼼히 가려내고 온 집안 쓰레기통도 다 비워낸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늘 비슷하다.
ㅡ왜 이렇게 버리는 게 많지?
살면서 필요한 게 이렇게 많을까?
그러다 보니 버리는 것도 참 많다. 버리는 게 많은데, 줄이기도 참 어렵다.
버리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해봐도 규모가 큰 시스템 안에 살고 있으면 처음엔 체념이 먼저 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냉장고 청소를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먹던 과일이 조금씩 나온다.
나는 그 과일들을 대강 분류해서 한 번에 같은 곳에 넣고 잼을 만들어버린다.
만들고 나면 그 양이 많지 않아 딱 좋다.
잼을 올려두고 한눈을 팔면 태우기 딱 좋다.
그럼에도 나는 약불로 올려두고 잠시 한눈을 판다.
작은 면수건을 따뜻한 물로 빨아서 꾹 짠 후 울 고양이들을 싹싹 닦아준다.
나도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면서 내 주변의 모든 것도 나와 함께 나이 들고 있다.
나이 들면 불편한 게 늘어난다. 그건 나이 들어봐야 제대로 이해되는 이상한 경험이다.
그래서 나이 드는 게 서럽다고 어른들이 그러셨구나, 이제야 나이 들면서 나도 제대로 알게 된다.
나이 드는 고양이도 그렇다.
더, 더 젊었을 때는 혼자 척척 잘하던 일도 이젠 무시한다.
나는 그걸 무시(無視)라고 표현하고 싶다. 처음엔 슬픔이었지만 점점 무시로 발달하는 그건 나이 듦의 여정에서 무시할 수 없는 동행자이다.
그래서 배우게 되는 것도 있다.
받아들임이다.
처음엔 싫다고 앙탈하던 고양이들도 내가 이제 싹싹 두어 번 더 따뜻한 물로 빨아낸 향기 나는 수건으로 몸을 골고루 다 닦아주는 걸 즐기고 있다.
나도 더욱더 나이 들면 내게 그렇게 해 줄 이가 있을까?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답이 없는 일이 나에 관한 일임을 깨달을 때, 나는 그것도 그냥 묵묵히 받아들이게 된다.
어쩌겠는가,
좀 더 나이 들기 전 나는 이런 과정들이 퍽 두려워서 한 때, 소위 신선이 되고 싶었다.
깔끔하셨던, 알고 지내던 분의 지나치게 불편했던 삶의 마무리여정이 너무나 슬폈다.
그렇게 깔끔했던 그분의 품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그럴 수가 있다.
생각해보라, 현명한 왕도 무능한 후계자를 얻으면 애지중지 고민하던 나라는 망하고 자신의 업적만 남게된다. 당연히 힘이 있을때, 세상없이 깔끔한 사람도 자신이 스스로를 자신의 마음대로 돌볼 수 없을 때 자신을 돌보는 이가 깔끔하지도 않고 무심하면 아무리 지키고 싶어도 자신이 가진 품위는 하나도 지킬 수가 없게된다.
삶은 그렇게 때때로 칼같이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이상한 규칙으로 돌아간다.
바보같지만, 난 단지 뭔가 깨닫고 나면 늙는 게 좀 더 자유롭지 않을까?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날 난 알았다.
나의 한계를 알아챈 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신선이 되면 뭘 할 건데?
신선이 되면 신선이 해야 할 일이 또 생길 것이다.
그걸 내가 좋아할까?
모를 일이다.
예전 보다 난 나의 한계를 조금 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잘 받아들인다.
소원이 생겨났다면 잘 죽고 싶달까...
그것도 복이라던데 내게도 그런 복이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누군가 잘 늙어가는 일을 도와줄 수는 있다.
그걸로 만족한다.
일기는 이상한 글쓰기이다.
쓰다 보니.... 좀 감상적인데? 내가 이런 걸 여기 적고 후회하진 않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그러기로 했으니까 일기니까 적어본다. 일기가 아니라면 누가 나의 이런 자잘은 일상과 생각을 엿보겠는가? 이건 그냥 누군가 보는 드라마 같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