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셀리나 정 Feb 20. 2016

한국을 대표할 창작 오페라 '달이 물로 걸어오듯'

막장이라서 더 좋은.

'나는 화물차 운전수라네' 아리아를 다시 듣기 위해 1년을 기다렸다.

작년 초연을 보고나서 얼마나 여운이 남던지, 다음 공연 일정을 찾으려고 눈에 불을 키고 찾았으나 공연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힘들었다. 아무래도 초연이니 그랬겠지 싶지만....


 창작 오페라를 몇 편 보긴 했었는데, 개중에 제일 훌륭하다. 보고나면 마음에 남는 아리아가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건 정말로 주요 아리아들을 몇 곡이나 꼽을 수 있을정도로 좋다! 아무래도 모차르트나 후크송처럼 반복되는 구절이 많아서 인 것 같다. 거기다가 깨알같은 개그포인트도 있어서! 기억에 남는 곡들을 몇 가지 꼽자면

 1. 딸기장수의 아리아

 작년에는 2번 나왔는데 이번에는 딱 한 번 출연하신다. 작년에는 '나를 잊으면 안돼지~'하면서 처음에 나오셨다가 나중에 결정적인 순간에 또 나오시는데 이번에느느 한 번만 나오고 뒤에는 대사로만 등장하는것으로 수정되었다. 무척 아쉬운 부분.... 왜냐하면 이 아리아가 너무 좋기 때문이다!

 남자주인공이 딸기를 매일 사다가 아내한테 주는데 매일 한팩만 사니까 '많이 좀 사시지'하는데 이게 개그포인트 하하. 알고보면 이 딸기장수는 아내를 먼저 보낸 인물로, 아리아에서 자신의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전해진다. 낮은 음역대로 듣기에 너무 좋다.


2. 술집 주정뱅이의 아리아

 술집에서 '여기 술이 그렇게 무섭다며? 잘못 마시면 감옥간다던데~'하는 아리아인데 대구가 짝짝 잘 맞아서 귀에 딱딱 달라붙는다. 하하하하 그리고 어찌나 술취한 연기를 잘하시던지.

이 아리아도 작년버전보다 짧게 축약된 듯.. 아쉽아쉽


3. 단연코 백미!!! 나는 화물차 운전수라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50대 화물차 운전수인 수남에게 어떻게 어리고 예쁜 경자가 사랑하게 되었냐고, 물으니

 '나는 화물차 운전수라고, 멀고 어두운 길을 밤새 달려가지. 내 뒤에 뭐가 실려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소. 그냥 그게 나와 함께 한다는 것뿐.' 뭐 이런 건데, 작년의 어느 포스팅에서 30대 이상 중년 남성들이라면 듣고서는 다들 울컥했을거라는 후기가 기억난다. 난 30대도, 중년남성도 아니지만 듣고서 울컥함.

 참 신기한게, 오페라는 연극에 비하면 대사가 많지 않다. 그런데 음악과 함께여서 그런지, 아니면 대사가 옆에 같이 나오니 앞으로 무슨 대사가 나오는 지 알면서 감정이 고조되는 건지, 대사가 나오기 전에도 이미 감정이 울렁울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고이고~

 서양 클래식 위주로 공연을 보러 갔을 때는 100개 이상을 봐도 이런 공연을 만나기 힘든데, 역시 한국어의 위력일까???? 요새는 국악/한국 창작 공연 위주로 다니는데 공연 만족도도 높고 감동적인 순간도 많다.

 하여간 이 아리아는 음원으로 나와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나 아마 힘들겠지..


4. 경찰과 범죄입증하는 아리아

 이건 아리아라고 하기엔 좀 짧은데.. 아니 좀 짧아졌나? 수남이 하지도 않은 범죄를 입증해야하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검사가 어떻게 찔렀나? 오른쪽? 아니요, 왼쪽? 글쎄요 하는데 얼마나 코믹한지. 서로 주고받는 대사나 행동이나 진짜 유쾌하다.


5. 검사가 판사에게 하는 최종변론

 "선처를 베풀어풀어주십시오' 등등 말장난 치는 구절이 많아서 재밌음.


 뭐랄까, 한국 음악 특유의 말장난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한국적 느낌 팍팍 들고, 오페라 보는내내 재밌었다. 웃기기로 치자면 '잔니스키키' 뺨치는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볼거리, 들을거리 많아서 좋다. 아, 여기서 메인 테마는 다 빠졌는데... 나는 좀 거스려서. 왜냐면 말 뒤를 심각하게 올리는 게 메인 테마인것 같은데 거슬림.. 물론 공연 보고 나면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내마음을 알아?////' '내마음을 봤어?///'라면서 흥얼거리게 되지만 무척 거슬려서 귀아픔. 그래도 공연 보고 나서 다들 그걸 흥얼거리니, 어느정도 성공한 것 같기는 하다.


 스토리는 참신하게 '스릴러 로맨스'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화물차 운전수 남자와 예쁜 술집여자의 로맨스인데, 남자는 여자한테 완전빠졌고, 사람들은 왜 경자가 수남을 사랑하는지 모르겠다고하고. 사람들이 왜냐고 물어보면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건 달이 물로 걸어오듯이' 아무도 모르게 만나게 되는 거라고, 대답한다. 혹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거나.

 극 내내 정말로 경자가 수남을 사랑했는지는 확실하게 안 나온다. 나중에 수남이 경자에게 '정말로 날 사랑한거야??? 제발 한 마디만 해줘! 어려운 일 아니잖아!'라고 외치는데 끝까지 대답 안하고 돌아선다. 경자에게 '가슴이 왜그래? 다 젖었잖아' '젖이 멈추지 않아' '지금까지 눈물대신 가슴으로 운 거야?' 이러는데 젖 드립은 블랙 유머인가 싶지만..

 이런저런 장치가 많아서 나는 경자가 수남을 진짜 사랑했는지가 '맥거핀'으로 사용된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니 '당연히 좋아한거지! 남자들은 못알아챌듯 ㅉㅉ'이러길래 '아..'했다. 그렇긴 그렇네.. 난 남자인가봄... 작년에는 나도 경자가 수남을 좋아했겠네, 라고 생각했는데 올해 두번째로 보는 거라 그런지 나도 '생각'이 많아진 모양이다.

 극 전체에서 수남에게 '생각해봐, 생각'하라고 요청해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뭔가 대본이 미묘하게 바뀐 것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작년에도 프로그램을 사서 대본이 있으니 비교해보면 알겠지만, 비교적 극 진행이 빨라졌고, 작년에는 미묘했던 부분들이 더 극명하게 드러나도록 바뀐 것 같다.


 여기서 또 볼거리는 연출인데, 정말 감탄스럽다! 무대 장치를 단 한번도 바꾸지 않는데, 조명만을 이용해서 한 무대에서 다양한 장소를 연출해낸다. 정말 대단해! 그리고 작년에 마지막에 '달이 떠오르는' 연출이 부각이 안되어서 아쉬웠는데 올해는 아주 확실하게 바꿔줬다. 갈수록 좋아지는 듯!


 창작 오페라라면 역시, 매년 나아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기존 창작오페라들은 영웅스토리나 고전(심청가등)에 기반했다면 이건 정말 '창작'. 그러면서도 한국적인 요소들이 꽉꽉 들어가 있어서 즐겁다. 스토리 자체가 한국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아리아가. 곡도 너무 잘썼다.


한 번더 보고 싶은데 요새 고료도 잘 못받는데 휴... 빨리 출판해서 예술인 패스를 받아가지고 할인받으면서 다녀야지... 작년까지는 만24세 미만 할인 받아서 신나게 보러다녔는데 요새 너무 힘들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