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주변의 추천으로 읽게 된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는 1969년도에도 미국에선 법정에 흑인과 백인이 앉는 자리가 구분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인공 카야를 돌본 유일한 어른인 흑인 점핑과 메이블이 법정 앞자리에 앉자 백인들이 불만을 표한다.
또한 남자에게 폭력을 당한 카야를 점핑은 안고 위로해 줄 수도 없다. 백인 처녀와 흑인 할아버지가 포옹하는 것을 누군가 본다면 가만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BBC가 위대한 21세기 영화 중 하나로 꼽은 <파 프롬 헤븐 far from heaven>은 배경이 1950년대이니 인종차별이 더 심하다. 백인 여자는 흑인 남자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온 동네의 가십이 되고 주변의 친구는 돌을 던진다. 백인도 흑인도 돌을 던지긴 마찬가지이다. 자신들의 세계에서 벗어난 만남을 가진 사람을 단죄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현재는 흑인도 버스나 지하철에 지정좌석제가 아니며 화장실도 흑인 전용이 따로 있지 않다. 그렇게 된지 불과 몇십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 생경스럽다. 나의 어린 시절 우리 나라의 정서는 미국은 좋은 나라, 본받아야할 나라, 부러운 나라였는데.
사실은 그런 엄청난 인종차별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그리고 현재에도 흑인에 대한 여러 가지 사회적 사건과 이슈는 여전하다니. 미국제일주의를 떠드는 트럼프 같은 사람이 재력을 이용하여 다시금 대선 후보에 나오고 그를 많은 미국인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 참 마음이 안 좋다. 나는 미국에서 유색인종으로 살아본 경험이 없다. 그래도 황인종은 좀 더 나은 대우를 받는 편이다. 미국에서 흑인으로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