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카잘스 대 로스트로포비치

by 스텔라언니

카잘스는 스페인, 로스트로 포비치는 러시아 출신으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첼리스트입니다. 그들은 출신 국가가 달랐지만 비슷한 행보를 걷습니다. 독재정권에 항거하고 자유와 평화를 추구한 것입니다.

파블로 카잘스(1876~1973)는 10세에 처음 첼로 소리를 듣고 인간적이며 부드러운 첼로 음색에 홀딱 빠지고 맙니다. 그는 그 때부터 첼로를 배웠으며 매우 빠르게 습득했습니다.

13살에는 아버지와 고서점에 갔다가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악보를 발견합니다. 이 곡은 당시까지 일부분만 전해져오고 있었어요. 바흐의 부인이 필사한 전곡 악보를 카잘스가 발견한 것이죠.

그는 매우 흥분하며 이 곡을 연습하기 시작했고 무려 12년간 매일밤 연습했습니다. 25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이 작품을 연주했습니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통해 카잘스는 “마에스트로(장인)”가 되었고, 이 곡은 “첼로의 성서”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첼리스트들에게 가장 중요한 레퍼토리가 되었죠.

그럼 카잘스가 연주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중 프렐류드를 들어볼게요. 여러분도 잘 아시는 곡입니다.

https://youtu.be/OhvOZewh3BY?si=-hr7NIbfEx6zghyF

그가 55살 때 스페인 부르봉 왕조가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섭니다. 그러나 1936년 프랑코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스페인 내전이 시작됩니다. 프랑코 장군은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지원을 받는 파시스트였지요.

카잘스는 독재정권에 항거해서 연주회와 라디오 방송을 통해 파시스트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프랑코 장군의 보좌관은 “카잘스, 당신 잡히기만 해봐. 양팔을 잘라버릴 테니까”라며 협박했어요.

그는 결국 프랑스 시골 프라드에 은둔하게 되었어요. 당시 영국, 프랑스, 미국은 정치적인 이유로 프랑코 정권을 지지했어요. 따라서 카잘스는 서방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연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요.

10년 가까이 연주를 하지 않았어요. 보다 못해 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 슈나이더가 카잘스가 운둔하고 있는 프라드에서 음악제를 열자고 제안했어요. 그리고 수익금으로 난민병원을 돕자고 했지요. 프랑스의 시골 마을 프라드에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모여들었어요. 음악제는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말했죠.

나는 먼저 인간이고, 두번째로 음악가다. 한 인간으로써 내 첫번째 임무는 인류의 평화와 행복에 관한 것이다”


두번째로 소개할 첼리스트는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1927~2007)입니다. 소련의 클래식 스타였던 그는 스탈린 독재정권을 싫어했어요. 1968년 반정부주의였던 소설가 솔제니친을 숨겨준 혐의로 해외 연주를 금지당하기도 했지요. 결국 그는 1974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그는 파리에 있었어요. 그 때까지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던 그는 냉전 시대가 드디어 끝나는 것 같아 감격스러웠지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베를린 장벽 아래에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했습니다. 평상복을 입은 초로의 신사가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담아 연주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https://youtu.be/FqIEdv3Q3-M?si=nXvx9fTSPLJG2uty

그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첼리스트이자 지휘자인 장한나의 스승이기도 하지요. 성격이 따뜻하고 권위의식이 없는 겸손한 사람이었어요.

로스트로포비치와 장한나

그는 성악가인 갈리나 비슈네프스카야와 결혼해서 평생 잉꼬부부로 살았습니다. 1955년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갈리나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먹고 있던 토스트가 목에 걸려 켁켁거렸대요 ㅋㅋ 개인적으로는 두 딸과 6명의 손자를 둔 행복한 할아버지였지요.

그가 평생 가장 기뻤던 순간은 1991년 러시아에서 연주를 다시 하게 된 때라고 합니다. 냉전이 종식되고 러시아가 다시 로스트로포비치의 입국을 허락한 것이지요. 러시아가 자유와 평화의 길로 들어선 것 같아 너무나 행복했다고 해요.

그럼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하는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들어볼게요. 아르페지오네는 19세기 현악기의 일종으로 첼로와 기타를 혼합한 악기였대요. 요즘은 주로 첼로나 비올라로 연주합니다. 가을이나 겨울에 들으면 참 좋은 곡입니다.

https://youtu.be/8CW6S4gRahY?si=GYXJ4-KRZZjK9hK4


우리는 예술가는 사회와 동떨어져 예술만 추구할 거라는 잘못된 편견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예술가들이 정치와 사회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예술로 표현하려고 합니다. 오늘 살펴본 두 첼리스트 역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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