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게티 미술관 뉴스를 듣자니

by 모든 한국학

Get it from your father-in-law. He has all the money in the world.

당신 시아버지에게 달라고 해. 세상의 모든 돈을 가졌는데!


세상의 모든 돈, 영화 ㅣ올 더 머니ㅣ


근사한 아트 갤러리 같은 사무실에 정장을 차려입은 키 큰 노인이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있다. 쏟아져 들어오는 주식 뉴스에 집중하고 있는 폴 게티에게 비서가 다급히 달려온다. 지금 로마에 사는 손자가 납치되었다고! 폴 게티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비서에게 나가라고 한다. "지금 주식장이 열렸어!", "문 닫고 나가!"라고 소리친다. 마치 이런 느낌이다. '수선 떨지 말고 나가'

1948년 사우디 아라비아 허허벌판 어딘가에 기차선로가 하나 놓였다... 이 모래뿐인 광대한 사막에서 석유를 채굴할 방법을 찾은 사람. 그가 바로 실존 인물 진 폴 게티(Jean Paul Getty, 1892~1976). 사망할 당시의 재산이 60억 달러_현재 가치로 31조 원(위키백과), 1966년 기네스북 세계최고 부자로 등재된 인물이다.


손자의 납치는 그저 돈 드는 일?


1973년 7월 10일. 분수대가 보이는 로마의 밤, 으슥한 길가에서 폴 게티 3세(존 John)가 괴한에 납치된다. 납치조직은 3세의 몸값으로 1700만 달러를 요구한다. 당시 게티 3세의 나이는 16살이었다. 실제 사건에도 관여한 인물인지 허구의 인물인지 확인할 수는 없으나 납치의 세계에도 중개인이 있었다. 자신이 예전에 무슨 황제의 일가였다는 납치 중개인 파올로는 수수료를 제대로 챙기기 위해 게티 3세를 곱게 보관하려(?) 끝까지 애쓴다. 폴 게티 아들이자 존의 아버지인 게티 2세는 석유왕의 아들이었으나 일반유와 고급유의 차이밖에 모르는 감각으로 아버지 덕에 어찌어찌 살아가다 결국 약에 빠져 인생이 망가진다. 백만장자의 며느리였으나, 이혼의 조건으로 아들만을 원했던 명민한 게티 2세 부인 게일이 이 사건에서 납치 조직과 협상의 중심에 선다. 엄마니까 누구보다도 절박할 수밖에 없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전직 CIA 요원이 협상 조력자로 등장한다.

세상의 돈을 다 가진 자의 손자가 납치되었다는 소식으로, 게티 3세는 전 세계 사기꾼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유선 전화와 우체국 전보밖에 없던 시절에도 어떻게 이런 뉴스들은 빠르게 널리 퍼질 수 있는지 참으로 신기하다. 예나 지금이나 과학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들이 입보다 빠를 수 없을 것 같다. 자신들이야말로 게티 3세의 진짜 유괴범이라며 돈 냄새를 맡은 별별 놈놈놈들이 떼거지로 달려든다. 게티 3세를 데리고 있다는 정체불상들의 편지가 게일 부인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다. 하지만 석유왕 억만장자 폴 게티는 여전히 손자의 납치에 응할 돈이 없다는 입장이다.

시간이 지나도 몸값을 벌기는커녕, '납치가 가정된 상황'이라는 요즘 시대에 빗대자면 가짜뉴스까지 나오는 지경에 이르자, 납치범들은 자신들이 진짜 존 게티 3세를 데리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존의 귀를 잘라 편지와 함께 신문사에 보낸다. 몸값은 700만 달러로 떨어져 있다. 잘린 귀를 받은 신문사는 게일 부인에게 5만 달러를 주고 뉴스를 사고자 하였으나, 엄마 게일은 돈 대신 신문 1,000부를 원한다. 폴 게티가 모으고 있는 예술품 한 점 값도 안 되는 돈이지만, 손자를 위해 돈을 쓸 생각이 아예 없는 시아버지의 만행을 알리고자 한 것이다. 자신이 마주한 피를 토할 듯한 고통의 상황에서도 엄마 게일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손자의 잘린 귀가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려 세상에 뿌려지자, 명예 실추(loss of honor)는 물론 말년에 패륜 위기를 맞은 석유왕 폴 게티는 손자의 몸값 700만 달러에서 다시 깎아서 400만 달러를 주겠다하다가 끝내 100만 달러만 지불한다. 그것도 아들에게 빌려주는 형식을 빌린다. 당시 세액 공제되는 범위가 100만 달러였기 때문이다. 대단한 양반. 그래서 남은 것이 무엇인가. 실제 게티 3세는 풀려날 때까지 5개월이 소요되었고, 이 시간은 16살 존 게티의 인생을 바닥부터 무너뜨렸다.


납치범들에게 '세상의 모든 돈을 가진 당신 시아버지에게 달라고 해'라는 말을 들은 게티 부인은 눈하나 깜박이지 않는 시아버지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보관해 둔 작은 조각상이 생각났다. 아들이 대여섯 살 무렵에 시아버지 폴 게티가 게티 3세에게 선물한 작은 목각인형이다. 전 세계 예술품을 모으던 폴 게티가 크레타 섬의 암시장에서 구한 것으로 못해도 120만 달러 정도는 될 것이라고 했다. 게일 부인은 고대 그리스인 얼굴이 조각된 목각 인형을 들고 로마 소더비 경매회사에 달려간다. 애원해도 소용없는 시아버지에게 더 이상 매달리지 않아도 마침내 괴한들로부터 아들을 구해낼 방법을 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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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120만 달러 예술품의 가치는


목각 인형의 현재 가치를 묻는 게일 부인에게 소더비 경매사는 "부인, 이것은 잡화입니다.", "관광객들에게 파는 기념품이요."... 경매사의 대답을 믿지 못하겠다는 (시아버지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일부인에게, 다른 의미로 난처한 경매사는 '카피톨리니 박물관에 가보라' 한다. 기원전 460년 전 예술품이어야 하는 목각 인형은 박물관 아트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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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더 머니 인 더 월드(all the money in the world). 세상의 모든 돈을 가졌으며, 세상의 모든 예술품을 긁어모으려 한 폴 게티가 120만 달러의 가치를 가졌다며 손자에게 준 조각상은 15달러에 불과했다. 그것마저도 폴 게티가 자기 돈으로 샀을까 싶은 대량 생산된 상품. 시아버지라는 인간을 다시 확인한 순간 게일 부인의 심정을 대변할 말을 나는 지금까지도 찾지 못하였다. 그저 그날이 그나마 맑은 날이서 다행이랄까.




며칠 전에, LA 게티 미술관 뉴스를 들었다. 게티 미술관은 폴 게티가 평생 모은 예술품과 유산을 기초로 LA 언덕 위에 조성되었다. 최근 LA를 덮친 엄청난 화마에서 게티 미술관이 어떻게 멀쩡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냐는 내용이었다. 특별한 생각, 특별한 설계와 건축에는 당연히 큰 비용이 든다. 세상에. 맙소사. 16세. 기초 공사부터 잘못된 게티 3세의 삶은 그 어떤 것도 쌓아 올릴 수 없었는데. 갑자기 나는 할 말을 잃고 박물관 아트샵에 멍하니 서 있던 게일 부인이 떠오른다. 이 뉴스를 듣고 있자니...'도대체 왜?'라는 해소될 길이 없는 질문이 다시 든다.




존 폴 게티 3세(John Paul Getty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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