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겨있는 방 (Conclave)
"저는 세상의 확실성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압니다."
사도좌 공석_교황직 공석
교황 성하의 선종 직후 로마 교황청의 수석 추기경 토마스 로렌스(랄프 파인즈)를 비롯하여 중요 보직의 추기경들이 급히 바티칸에 모인다. 교황의 선종이 최종 확인되고 교황 가까이서 보좌한 트랑블레 추기경은 반지를 빼내어 가장 윗부분을 제거한다. 하느님을 대신하는 거룩한 자리에 있었으나 죽은 교황의 몸은 일반인들처럼 흰 시신 가방에 싸여 구급대에 실린다. 구급차가 이동하는 동안 이제 자연으로 돌아갈 전 교황의 시신은 끊임없이 흔들린다. 누구나 마지막 순간에는 평등하다.
선종한 교황의 방은 잠긴다. 물건은 그대로 둔 채 문을 닫고 붉은 천을 두르고 그 위에 붉은 인장을 녹여 봉인한다. 이 방을 열기 위해 인장을 부순다면 그것은 신성모독이 될 것이다.
성녀 마르타의 집
콘클라베(conclave)는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투표이자 그 과정이다. 전 세계의 추기경들은 콘클라베에 참여해야 하며 모든 추기경들은 다음 교황이 될 수 있다. 투표 횟수의 제한은 없으며 투표에서 참석 인원의 2/3의 표를 얻는 자는 다음 교황으로 선출된다. (영화상으로 108명의 추기경이 참석하였으므로 72표를 득표한 이가 새 교황이 된다)
성녀 마르타의 집은 투표가 진행되는 시스타나 예배당에서 5분 거리에 있으며 콘클라베에 참석하는 108명 추기경들의 숙소다. 엄밀한 의미로, 투표에 참여하는 추기경들은 일체의 통신 수단을 모두 제출하고 성녀 마르타의 집에 격리되는 것. 콘클라베가 무사히 끝날 때까지 외부와의 접촉은 금지되며, 누구든 바깥의 소식을 전해서도 안된다. 역시 세계 각지에서 파견 나온 수녀들이 격리된 추기경들의 생활을 지원해 주며, 아그네스 수석 수녀가 각지에서 파견 나온 수녀들을 관리한다.
인 펙토레_의중 결정 추기경
콘클라베를 위한 격리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에 두 가지 일이 생긴다. 하나는 바티칸에서 교황을 모신 로마 대주교가 로렌스 수석 추기경에게 고해성사를 한다. '교황이 선종 직전에 트랑블레 추기경에게 사임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다음 교황으로 유력후보 중의 한 사람인 트랑블레에 대한 대주교의 고해는 로렌스를 일시적 혼란에 빠뜨리나, 당장의 증거는 없고 격리 때문에 더 이상의 조사도 불가능하다.
게다가 추기경의 명단에 없는 추기경이 등장한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추기경인 빈센트 베니테스다. 아프가니스탄의 카불. '전쟁이 일상인 나라에? 카불에? 신자가 얼마나 있다고 추기경까지 있나? 일부 추기경들은 그런 의문을 던지며 '명단에 없는 이'를 경계한다. 이런 신성한 자리에 사기꾼이? 이런 반응일까, 아니면 자신의 표가 나뉘는 것을 염려하는 걸까?
카불에서 온 빈센트 베니타스 추기경은 교황만이 존재를 알고 있는 이른바 의중 결정 (인 팩토레,In Pectore) 추기경이었다. 이 두 가지 일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는 수석 추기경을 보좌하는 몬시뇰 레이 신부가 계속 확인해 나가기로 한다. 그렇게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 투표, 108명의 콘클라베가 시작된다.
무엇보다 두려운 죄는 확신입니다.
콘클라베는 수석 추기경인 로렌스의 기조연설로 시작된다. 수석 추기경의 연설은 투표에 참여하는 추기경들의 막중한 임무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내용으로, 콘클라베의 시작을 알리는 형식적인 절차다. 로렌스는 이미 준비된 내용으로 언론에 사전 배포된 연설문을 읽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로렌스는 서두를 잠시 읽어 내려다가다가 "다들 아시는 얘기는 그만두고" 라며 준비된 연설문을 덮는다. 마음속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한다.
로렌스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확신(certainty)에 대해서다. 자신은 교회에 대한 확신, 기도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고 있으며, 추기경직을 내려놓고 싶을 정도의 고뇌를 하고 있다고. "확신은 통합의 강력한 적입니다. 확신은 포용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오로지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앙이 필요가 없겠죠. 새로 선출될 교황은 우리가 확신을 가진 모든 것에 끊임없이 의심하며 앞으로 나가는 교황이기를 희망합니다. " 여기서 강조하는 확신(certainty)은 단정적이거나 독단적인 흑백논리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수석 추기경이 준비된 연설문에 없는 내용으로, 그것도 믿음의 상징인 교회와 기도에 대한 확신이 흔들린다는 발언에 조용한 파문이 인다. 그것은 수석 추기경의 신앙을 의심하는 파문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표를 달라고 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다음 교황이 되고자 하는 야심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정치 집단의 모습이다.
시스티나 대성당에서의 비밀 투표
시스티나 대성당의 문이 잠긴다. 미켈란젤로의 천정화의 인물들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108명의 추기경들은 빛마저 차단된 완전히 잠겨진 방에서 투표지에 자신의 원하는 교황의 이름을 직접 써넣는다. 개표자이자 참관인 세 사람은 일일이 이름을 호명하며, 확인한 표는 붉은 실에 꿰어놓는다. 투표가 끝나면 한꺼번에 연통이 달린 난로에 넣어 태운다. 투표용지를 태우면서 신호 연기탄을 터뜨리면 연통을 따라 대성당의 외부로 연기가 배출한다. 검은 연기는 그날의 투표가 실패한 것을, 흰색 연기는 새로운 교황의 탄생을 알리게 된다.
첫 번째 투표에서 72표 이상을 획득한 이가 없어 검은 연기가 연통을 따라 시스티나 성당 바깥으로 배출되었다. 아프리카계 추기경 아데예미 등이 약간 앞서는 가운데, 로마 교황청에 보직을 가지고 교황을 보좌하던 트랑블레가 그 뒤를 따랐으며, 진보와 보수의 뚜렷한 성향을 가진 알도와 테데스코 두 유력 후보의 표는 비등비등하다. 흑인 교황이 탄생할 시대도 되었다는 긍정적인 추기경들의 생각을 읽으면서도 로렌스는 알도로 대변되는 진보성향의 후보를 교황으로 선출하는데 힘들 보태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투표부터 아데예미에게 표가 더 몰리기 시작하나 2/3의 득표에는 이르지 못하여 검은 연기가 시스티나 밖으로 배출되었다.
아데예미로 표가 모이기 시작한 그 밤에 로렌스는 숙소 복도에서 약간의 언쟁을 듣게 된다. 로렌스의 옆 방은 아데예미의 방이다. 다음날 아침 식당에서 흑인 수녀 한 명이 아데예미 추기경 근처에서 쟁반을 떨어뜨리고 아데예미가 언성을 높여 뭐라고 얘기하며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난다. 흔하지 않은 일에 로렌스는 수석 수녀를 통해 쟁반을 떨군 수녀를 찾아가 결국 그녀의 고해성사를 듣게 된다. 아데예미가 사제 시절에 19살의 수녀와의 성추문이 있었음이 드러난다.
최초의 흑인 교황의 탄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초반 유력후보로 40표 이상을 득표하고 있던 아데예미의 탈락 다음으로 표는 2순위였던 트랑블레에게 모이는 형세다. 정작 진보주의나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알도와 테데스코의 표는 크게 차이를 벌리지 못하며 여전히 비등비등하다. 이쯤에서 로렌스는 트랑블레와 관련한 로마 대주교의 말을 확인하기로 한다. 선종한 교황이 트랑블레에게 사임을 요구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로렌스는 새로 선출된 교황의 자격에 일말의 의심을 남기면 안 된다고 판단한다. 고민 끝에 결국 선종한 교황의 잠겨진 방에 봉인인장을 깨고 들어간다. 그 방에서 트랑블레가 성직을 매매한 보고서가 발견된다. 결국 보고서는 폭로되고 두 번째 유력우보도 교황의 자격을 상실하면서 아웃된다.
이것은 전쟁이야 당신도 편을 결정해!
로렌스가 원하는 진보주의적 알도 추기경에 대한 지지는 미지근하여 투표가 거듭될수록 오히려 10표 이하로 떨어진다. 의외로 교황의 인 펙토레 카불 추기경에게 표가 조금씩 늘어간다. 이제 진보주의 측의 대안은 수석 추기경인 로렌스 밖에 없다. 알도는 로렌스에게 표를 모으는 일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로렌스를 설득한다. 진보주의적 성향 추기경들은 보수주의자인 이탈리아계 교황 테데스코가 교황이 되면 교회의 역사가 60년은 후퇴할 것이라고 염려한다. 알도 추기경은 보수주의자가 반대하는 모든 것을 지지한다며 지금 이 투표에서 중간은 없으며 용서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격한 발언을 쏟아낸다. 숭고한 이미지의 콘클라베는 (영화상에서 알도 추기경의 대사로도 나오지만) 마치 미국 대통령 선거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하느님의 교회는 확신에 대한 의심을 가지고 추기경 직을 사임하려던 로렌스가 교황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까. 그에게 표가 모일 것 같은 투표, 로렌스 본인이 자신의 이름을 적은 투표지를 투표함에 넣은 순간, 굉음과 함께 시스티나 성당벽의 창문 두 개가 파괴되며 투표는 중단된다. 외부에서 발생한 테러의 영향을 받은 일이었지만, 로렌스가 투표용지에 자신의 이름을 쓴 것은 아마도 불경을 범한 일이었나 보다.
전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레이 몬시뇰 신부가 이날보다 먼저 외부에서 작은 테러 사건이 발생하였음을 로렌스에게 전달했었다. 로렌스는 추기경들에게 바깥 상황을 알리지 않았지만, 문들 닫아걸고 오로지 교황 선출에만 집중하는 콘클라베도 이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판단의 영향을 주지는 않았지만 결국 테러발생으로 투표가 중단되었으니까.
테러의 파편을 성스러운 붉은 수단에 묻힌 추기경들은 투표를 중단시킨 외부의 테러 상황에 교회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논의한다. 콘클라베도 사흘이 넘어갈수록 교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것을 염려해야 하기도 한다. 보수주의자로 로마 교회의 전통성을 주장하는 이탈리아계 테데스코는, "저 밖의 짐승 같은 존재들을 그냥 내버려 둬서 이렇게 되었다"라고 격분한다. 테데스코가 말하는 짐승 같은 존재들이란 이슬람 종교를 빗대는 말이며, 진보 측에서 상대주의를 존중한 결과라는 주장이다. 지금의 테러를 종교 전쟁이라고 규정하고 교회는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보 측과 보수 측의 견해 차이는 논의를 할수록 확실히 드러났으며, 마음속으로는 서로를 적군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자신과 견해가 다른 상대를 밟고 권력을 쟁취하려는 추기경의 탈을 쓴 위선자들 사이에서 누군가 조용히 묻는다. 당신들이 전쟁에 대해서 무엇을 아느냐? 고.
오래전에 코피 아난 UN 사무총장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흑인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다른 나라의 아이들보다 백 년쯤 후진된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그 말이 문득 기억이 났다. 전쟁과 테러가 일상인 나라가 바로 아프가니스탄이다. 선종한 교황이 직접 임명하고 전쟁터에서 이중의 희생을 감내하고 있는 여성들을 보호하며 사목을 수행해 온 베니테스 추기경은 말한다. 교회는 미래여야 한다고. 콘클라베는 이제 답을 찾은 듯하다. 끊임없이 의심을 가지고 미래로 나갈 수 있는 교황.
인노켄티우스(innocentius)
콩고와 바그다드와 카불에서 관념이 아닌 실제 전쟁터에서 약자에게 봉사하던 빈센트 베니테스는 다음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자신의 책무를 다해 마음의 안식을 찾은 듯한 편안한 얼굴로 로렌스는 묻는다. 교황직을 수락하시겠습니까. 한 번에 답하지 못한 베니테스에게 수석 추기경이 재차 다시 묻자 그제야 조용히 수락하였다. 베니테스가 원하는 교황으로서의 이름은 인노켄티우스 (Innocentius)다. 영어가 라틴어에서 왔으니 이노센스는 순수, 있는 그대로라는 의미겠다. 그 많은 이름 중에 왜 베니테스는 '있는 그대로'를 선택하였을까. 바티칸은 이제 흰 연기를 내보려고 준비한다.
세상의 확실성 사이에 존재
정말 많은 영화의 반전을 보았지만 이렇게 조용히 깊은 울림을 주는 반전은 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로렌스는 새 교황의 탄생을 알리기 직전에 레이 몬시뇰 신부에게 인 펙토레 베니테스 추기경의 신상파일을 받는다. 그가 건강상의 이유로 제네바에서 진료소를 방문하려 했다는 내용이다. 이제 막 선출된 새 교황에게 건강상의 문제가 있다면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교황의 흰색 수단을 입으려는 베니테스에게 달려간 로렌스는 '건강에 무슨 이상이 있는지' 묻는다. 베니테스의 대답은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말이다. 제네바의 진료소에서 베니테스는 자신의 몸에 있는 여성 기관을 절제하는 수술을 진행하려 하였다.
빈센트 베니테스는 남자의 몸이고 남자로 성장하여 정신과 육체가 남자다. 사목을 행하는 중에 맹장 수술을 받다 자신의 몸에 여성기관도 있음을 알게 된다. 선종한 교황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사임하려 했으나, 교황은 베니테스에게 여성기관을 제거하고 계속 교회에 봉사하기를 명했다. 베니테스는 사제 서품을 받을 때도 추기경으로 임명될 때도 지금과 같은 몸이었다며 수술을 거부했다. 빈세트는 신이 주신 그 자체로 존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가 인노켄티우스로 불리길 희망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저는 세상의 확실성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I Know what it is to exist between the world's Certainties)
흔히 무지개가 일곱 가지 색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나라마다 문화마다 무지개색은 다르다. 미국에서는 여섯 가지며 아프리카에서는 부족마다 두 가지에서 네 가지 색으로 표현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전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말로 색을 표현하는 한국도 조선시대까지 무지개는 다섯 가지 색이라고 했다. (흑백청홍황) 일곱 가지 색이라고 해도 색과 색의 경계에는 어떤 색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무수한 색들이 존재한다. 경계에만 존재하는 색들이 있다. 그 경계에 있는 것들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우리의 존재는 태생적으로 모순 투성이며 그 어떤 것도 확실히 무엇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이를 받아들이느냐 않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