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한 파묵의 그림일기
'풍경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그 풍경이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전달하는 느낌이다. 푸른 산, 낯선 봉우리, 아득한 기억, 안개가 자욱한 곡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 그러나 기억한다. '
지난겨울 초입, 12월이 시작되자마자 내가 속한 세상은 뉴스로 뒤덮였다. 때 아닌 태풍이 바다를 건드려 파도가 세상을 집어삼킬 듯 밀려왔다. 하루 종일 뉴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날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 줄의 기사 제목이 내 눈에 띄었다. '부끄럽더라도 계속 쓰십시오.' "자기 자신을 믿기 바랍니다. 자신이 쓰고 있는 것을 믿으세요. 공책과 홀로 남으세요. 자신이 하고 있는 생각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말고 부끄럽더라도 계속 쓰십시오." 오르한 파묵( Orhan Ferit Pamuk, 티르기예)의 새 책 <먼산의 기억> 출간 소식이었다.
<먼 산의 기억>은 작가는 2009년부터 작은 노트 (몰스킨 다이어리)를 들고 다니면서 일기를 쓰거나 그림을 그린 기록을 엮은, 그림일기다. 14년에 걸친 일상 기록의 분량은 400여 쪽에 이르는 것을 200쪽을 선별하여 엮었다고 한다. 파묵의 여자 친구가 너무 개인적인 것은 출판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말까지 실려있다. (p.18) 편집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으나 그림일기의 연도는 뒤 섞여 있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노벨상 수상 작가가 '부끄럽다'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반에 반을 접고 다시 접은 후에 들어야 하는 말이다. 일기는 온통 집필 중인 소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오르한 파묵의 그림은 그의 노벨상 수상작을 연상시켰다. 그런 인상을 나만 받은 것이 아니었다. "아, <내 이름은 빨강>에 나온 세밀화가 같으세요!" (p.26)
나는 읽을 수 없는 티르기예 어 마저 그림의 일부로 보여 더욱 다채롭다. 오르한 파묵이 <내 이름을 빨강>의 소재는 오스만 제국 시대 세밀 화가들의 이야기인데, 우연히 선택한 소재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작가는 '스물두 살에 내 안의 화가를 죽이고 글을 썼다. (p23) '자신이 살고 싶은 화가의 삶으로 넘어가지 못했다.'(p.249) 하지만 오르한 파묵의 그림을 보면 그는 글을 쓰고 있지만 동시에 그 자신 안의 화가는 죽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듯하다. 화가로서는 부족하여 나는 글을 계속 쓴다라는 어조인데 그저 푸념(?)으로 들린다.
풍경에 관하여
<먼 산의 기억>에 자주 나오는 작가의 고향 풍경이 있다. 지한기르라는 도시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항구 같은 풍경인데, 바다에 배가 떠 있고 멀리 산이 보인다. 오르한 파묵에게 먼 산은 실제로 멀리 보이는 산이기도 하고 그 산 너머에 안 보이는 산이다. 안보일 수도 있고 실제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그 먼 산을 작가는 상상하려 한다. 저 멀리 보이는 풍경이 암시하는 다른 삶에 대한 생각에 작가는 사로잡힌다. (p.107) 구름을 그리는 화가는 사실 먼 산 뒤에 있는 구름을 보여주고 뭉게구름은 더 뒤에 있다고 말한다 (p.102) 어느 섬 앞바다를 향해하는 배에서 바라본 육지 풍경. 바위투성이 가파른 산 뒤에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있다. (p.103) 저 산 너머에 누가 살고 있을까라는 상상을 나도 어렸을 적에는 해 보았던 같다. 지금은 그런 상상을 하지 않는다. 창작자는 철이 들면 안 될 것 같다.
오르한 파묵이 노벨상 수상 이후에 더 좋은 작품을 내는 작가이기도 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삶이 매 순간 풍경인데, 오르한 파묵은 그 풍경의 느낌을 놓치지 않고 그가 구상하고 있는 소설 안에 구체화시킨다. 지금 보이는 풍경에 대해 쓰고 자신이 쓴 글에 어울리는 풍경을 찾아 나선다.
<페스트의 밤> 장면들
2023년 코로나가 끝나가고 있을 무렵에 오르한 파묵의 장편 소설 <페스트의 밤>이 출간되었다. 그의 <내 이름은 빨강>은 노벨 문학상으로는 드물게 추리소설이어서 한국에서 출간되자마자 읽었는데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빠른 전개와 쉬운 문장, 소설 속의 시대를 몰라도 세밀화와 역사적 배경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정말 수작이었다. <페스트의 밤>은 분량이 770 쪽이 넘는 장편소설임에도 추리 소설의 형식이다. < 내 이름은 빨강> 이후의 다시 한번 오르한 파묵의 추리소설을 접한다는 들뜬 기분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1/3 지점에서 중단된 상태다. '민게르'라는 상상의 섬에서 일어나는 사건인데, 오스만 제국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두다 보니 어휘가 사람 이름인지 지역 이름인지 처음부터 쉽게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독자들에게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지 알 수는 없으나, 배경 묘사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사건의 전개가 빠르지 않게 느껴졌다. 일주일이라도 집중한 상태로 읽어 내야 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먼 산의 기억>에서 그가 <페스트의 밤>을 쓰던 시기의 생각을 읽어보니, 빈 틈이 없는 완전한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었는지 알게 되었다. 역사 소설이다 보니 고증이 필요하고 고증은 묘사를 통해 드러내어야 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민게르'라는 공간을 구상하여 실재와 상상을 꼼꼼하게 엮는 작업을 몇 년에 걸쳐 수행했다.
오스만 제국의 역사책은 물론 관련 자료를 끊임없이 읽었을 뿐만 아니라, 소설의 배경으로 상상했던 어떤 곳을 찾아다니면서 때로는 우연한 풍경의 발견으로 상상의 공간에서의 인물들의 동선을 구체화시켰다. 그래서 작가는 하루 8시간~10시간씩 자료를 읽는데 시간을 들리고, 다시 꼬박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글로 재현시킨다. 풍경을 찾아가서 마치 그 풍경 안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그려 낸다. 동시에 글로 써낸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 쓰는 방식이다. 이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작가 스스로 다짐한다. 앞으로는 역사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지중해가 내다보이는 발코니와 블라인드를 묘사한 그림을 연상시키는 멋진 면이 있다면서 그린 그림인데. <페스트의 밤> 첫 단락은 높은 곳에서 항구를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쓰였는데, 상상과 실재의 풍경이 서로 뒤섞이며 글은 완성되었다. 이제 <페스트의 밤>을 마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장면이 연상되지 않는다면 <먼 곳의 기억>에 담겨 있는 그림을 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소설에서 배경을 묘사한 부분이 왜 이다지도 길었는가 했는데, 그 의문은 풀렸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엮어 글로 풍경을 그려나간 작가의 집념에 경외감을 가지고 읽을 것이다.
일기를 쓰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위로
그의 일기에는 다른 작가의 일기에 대한 소감도 있다. 소로, 톨스토이, 들라크루아, 찰스 디킨스, 윌리엄 블레이크, 콘래드 등 많은 작가들의 일기를 읽고 자신의 방식과 비교해 보기도 한다. 오르한 파묵은 먼저 글을 쓴 다음 몇 달, 때로는 몇 년 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다가 빈 공간 그대로 남겨져 있다가 시간이 흘러 그곳에 글을 써 놓거나 그림을 그려 넣거나 해서 가끔 일기장을 뒤적여 빈 면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나도 평생 일기를 썼고 지난 일기에 많은 공백이 있다. 나도 간 혹 지나간 일기의 빈 페이지를 한 참이 흐른 후에 채워 넣을 때도 있다. 물론 오르한 파묵의 혼잣말은 나중에 <먼 산의 기억>처럼 의미 있는 내용으로 그림과 어우러지며 또 다른 작품이 되겠지만, 나는 그저 개인의 취미 생활수준이다. 그가 출간 인터뷰를 할 때, 우리 역사의 부끄럽다 못해 참담한 한 페이지가 만천하에 드러나 고개를 들 수 없는 시기였다. 내 일기를 공개할 일은 없으니 부끄러울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써 나가라는 오르한 파묵의 말은 나에게 깊은 위로가 되었다. 분명히.
54세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뉴욕에 집필실도 있는 그도 메트로폴리탄박물관(The Met) 방문 표시 스티커는 버리기 아까웠나 보다. (박물관 안에서 The Met스티커를 부착하고 있어야 한다.) 수첩의 귀퉁이에 붙여놓았다. 나도 그랬다. 내 수첩은 부끄러워서 공개할 수 없으나, 내가 좋아하는 작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도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