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렛 미 인>: 우린 얼마나 서로에게 잔인해질 수 있는지
우리나라에서 '뱀파이어'가 익숙하지 못하다는 생각은 영화판에서만큼은 적어도 우스운 소리 같다. 뱀파이어 하이틴 로맨스라는 하나의 장르를 개척한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매 작품마다 100만 명이 훌쩍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물론 소설 원작이 워낙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던 탓도 있지만 오히려 그게 독이 되기도 하는 경우도 있으니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딜레마에 빠지는 일 없이 성공한 셈이다.
나 또한 영화를 봤다. 소설을 읽진 않았지만 내용은 얼추 알고 있었던 까닭에 별생각 없이 영화관을 찾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겐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첫 영화였다. 극장을 나서고 기억에 남았던 건 로버트 패틴슨의 반짝거리던 피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퇴폐적인 미모... 에 난리를 쳤던 친구와 나의 모습 정도?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어찌나 공을 들여 뱀파이어를 표현했던지. 햇빛을 받으면 반짝이던 피부, 달려오는 차를 막을 만큼의 민첩함과 힘, 모가지를 따야 죽일 수 있다는 잔인하지만 확실한 특징까지도. 유치한 줄 알았더니 매력적이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뱀파이어 영화와의 첫 만남이 좋았다.
이후에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영화를 도전하는 데에 있어서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긍정적인 영향을 준 건 이로써 부인하기 어렵다. 많이 본 건 아니지만 꼭 필요한 날이 있었는데, 특히 생리를 하는 날엔 영양제를 먹듯 몇 편 챙겨봤다. 생리를 시작하면 빈혈 증세가 도지는 바람에 어쩐지 피맛을 보면 좀 나아질 것만 같다는 기상천외한 생각을 한 결과였는데, 별 효과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좋은 경험이었다.
그렇게 보게 된 몇 편의 뱀파이어 영화는 나의 초기 예상과는 다른 감상을 남겼다. 별로였다는 말이 아니다. 내 고정관념을 철저히 부쉈다고 해야 할까. 인간이 갖고 싶고, 되고 싶어 하는 뱀파이어의 모습을 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영화 속 뱀파이어는 인간의 감춰진 잔인함과 욕망을 드러내는 데에 효과적인 역할로 등장하곤 했다. 마치 신화에 나오는 신이 인간처럼 충동적이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처럼, 뱀파이어 또한 인간과 비슷한 행동을 하곤 했다. 극한의 상황에 놓인 인간의 모습에 가깝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통해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해야 할까.
뱀파이어가 지닌 특징은 언제나 인간이 욕망하는 것이었다. 불멸의 삶과 아름다운 미모, 파괴적인 힘과 오랜 세월 쌓은 재력 따위의 그야말로 부러운 것들. 인간의 모든 욕구가 투영된 존재이기에 도리어 뱀파이어는 인간을 설명하기에 더없이 좋은 도구가 되었다. 영화는 인간의 욕망을 뱀파이어라는 존재를 통해 극대화 해 우리의 민낯을 드러내곤 했다. 그중 몇 편을 골라 각 영화에 대한 나의 생각을 요령 없이 정리하려 한다. 인간의 진실된 모습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뱀파이어에 대한 찬사와 무례한 스포!를 곁들여서.
뱀파이어 영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 중 하나가 아닐까. <렛 미 인>은 스웨덴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2008년에 스웨덴에서 처음 영화화되고 2년 뒤엔 2010년엔 할리우드에서 다시 영화화되었다. 어린 시절의 클로이 모레츠가 하얀 눈밭 위에서 천사처럼 누워있는 그 포스터가 맞다. 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스웨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할 거다. 형보다 나은 아우가 없다고, 개인적으론 처음 나온 영화가 더 좋았던 까닭이다.
호러 장르 속 성장 서사를 담고 있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오스칼과 이엘리다. 그들은 각각 일반적이지 않은 상태에 놓여있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서로가 가진 특이한 상태를 서로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사다리로 삼아 친구가 된다. 압축적인 줄거리로만 보면 흔한 성장소설의 주인공들 같지만, 영화는 그들이 그 과정 속에서 겪어야만 했던 잔인한 고통을 묘사한다. 유혈이 낭자한 장면을 통해 그들의 아픔을 드러내고, 어떻게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오스칼은 친구들 사이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어머니는 바쁘고 아버지는 집을 나간 상태라 도움을 청할 어른도 마땅히 없는 상태다. 오스칼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오늘 하루도 괴롭힘을 버티고 집에 돌아가 단도를 손에 꼭 쥐고 허공에 휘두르는 것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오스칼이 사는 아파트로 한 남자와 한 소녀가 이사를 온다. 평소처럼 놀이터에 나간 오스칼 앞에 나타난 옆집 소녀, 이엘리가 말을 건다. 오스칼은 어딘가 모르게 신비로운 이엘리와 점차 가까워지게 된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의 원조-격이다. 오스칼의 옆집으로 이사 온 뱀파이어 소녀 이엘리를 소개하자면 그렇다. 비록 뱀파이어라는 이유로 살인을 밥 먹듯 하고 해가 떠있는 동안엔 만나지도 못하지만, 분명 오스칼에게 있어 이엘리는 첫 친구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타인의 폭력과 무관심으로 지쳐가던 그에게 이엘리는 오싹하고도 다정한 마음을 건넨다. 오스칼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단 사실을 알게 된 이엘리는 "너도 받아쳐. 참지 말고 강하게 나가."라는 말을 한다. 걔들은 셋이나 된다는 오스칼의 말에도 이엘리는 "그럼 더 세게!"라고 답한다. 그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던, 일종의 조언인 셈이다.
<렛 미 인>을 관통하는 주제는 '관계'다. 한편, 관계에서 파생된 '폭력'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스칼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물이다. 정신적, 육체적인 폭력을 당하고 있지만 도움을 구하지 않고, 폭력에 제대로 저항하지도 못한다. 영화는 오스칼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편, 이엘리와의 만남 이후 그가 변화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물론 관계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없다. 영화 또한 훈계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다지 교훈적인 내용도 아니다. 오스칼과 이엘리가 찾은 방법이 옳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영화는 일종의 방법을 제시한다. 화를 내라, 받아쳐라, 같은 감정적이고도 본능적인 방안이다. 그래서인지 관객은 이것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과연 이 아이들의 선택이 옳을까? 다른 방법은 없나? 그럼에도 영화는 그들이 겪은 핏빛 성장통을 보여주고 그들이 선택한 방법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관객이 묵묵히 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끔 말이다.
그리고 이엘리가 등장한다. 이엘리는 오스칼의 놀이터에 들어온 최초의 타인이다. 언제나 홀로 존재하던 오스칼의 곁에 이엘리가 등장함으로써 하나의 관계가 탄생한다. 사실 오스칼에게 이엘리는 친구로서든 첫사랑으로서든 썩 괜찮은 상대는 아니다. 낮에는 전혀 만날 수 없고 피를 구해야 하니 밤에도 자유롭지 못하다.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어렵다. 오히려 영화에서 뱀파이어의 특징은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장애로 작용한다.
다른 영화에서도 뱀파이어가 가진 몇몇 불편한 점은 드러나지만 <렛 미 인>에서는 거의 단점 투성이인 것처럼 묘사되는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살기 위해 타인을 죽여야 하고 낮엔 돌아다니지도 못한다. 특히 <트와일라잇> 시리즈와 비교하면 눈에 띄게 다른 부분인데, <렛 미 인>에서 뱀파이어는 진실로 저주에 가깝다. 햇빛을 받으면 정체가 드러난다는 특징은 같지만 피부가 반짝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불에 타버려 결국 죽게 된다는 설정을 가지는 <렛 미 인>에서 더욱 잔인하게 그려진다. 이러한 특징을 드러냄으로써 영화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우리 영화는 뱀파이어란 존재를 매력적으로 그리지 않을 거예요-라는 것이다. 덕분에 영화를 보면 볼수록 이엘리와 오스칼의 관계는 역전의 역전을 반복한다. 뱀파이어인 이엘리는 인간인 오스칼에게 있어 절대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존재에 가깝다.
사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제목에서부터 드러난다. 영화 제목인 '렛 미 인'은 말 그대로 나를 들여보내 달라는, 일종의 허락을 구하는 문장이다. 이엘리에게 있어서는 생존의 문제인데, 허락 없이 남의 집으로 들어가면 온몸의 구멍으로 피를 쏟아내기 때문이다. 이 참혹한 사태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오스칼은 곧장 이엘리의 입장을 허락한다. 곧 이엘리로부터 나오는 피가 멎는다. 이런 섬뜩하고도 마법 같은 장면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엘리가 피를 쏟는 것은 그녀가 뱀파이어라는 특성, 즉 관계를 맺는 것에 있어서의 장애와 관련이 있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에서 뱀파이어라는 특징은 아름답게 포장되지 않는다. 오스칼과의 관계를 진전하는 데에 있어서도 분명히 장애로 작동한다. 타인의 목숨을 빼앗아야 살 수 있고 햇빛에 노출되면 타올라 죽게 되고 인간들이 먹는 음식은 역겹기만 하다.
이러한 점에서 이엘리 또한 타인과의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어려움을 갖고 있다. 오스칼을 구하러 온 구원자인 줄 알았던 이엘리조차도 말이다. 이엘리가 피를 쏟아내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거부와 무관심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잔인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괴롭힘을 당하던 오스칼이 놀이터를 홀로 부유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고독과 슬픔을 느끼게 한 것처럼, 이엘리가 피를 쏟아내는 모습은 조금 더 직접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고통을 표현한다.
오스칼의 허락으로 이엘리는 피를 멈춘다. 그의 허락, 즉 존재에 대한 직시와 인정을 통해 이엘리를 있는 그대로 포용한다. 비록 그녀의 모습은 잔혹하고 두려우나 오스칼은 피를 쏟아내는 이엘리를 받아들인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정말로 피가 멈춘다. 그야말로 마법 같은 순간이다.
<렛 미 인>은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이용해 정작 인간 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허공에 칼을 휘두르는 오스칼의 행동을 본 이엘리가 "하지만 죽이고 싶어 하잖아. 마음속으론 몇 번이고 죽이지."라고 말한 장면이 인상적이다. 다소 섬뜩한 표현이지만 사실 다정하다. 너의 상황을 이해하고 감정에 공감한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오스칼 또한 눈앞에서 이엘리의 살인을 목격하고도 그녀를 떠나지 않는다. 마치 그녀의 흡혈을 정말로 이해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집단으로부터 낙오한 사람으로서,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뱀파이어로서, 오스칼과 이엘리는 서로가 같은 고독을 느끼고 있음을 알아본 것이다.
오스칼이 겪은 괴롭힘과 이엘리가 당한 거부는 작게는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따돌림, 크게는 주류로부터의 차별로까지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잔인함은 어느 집단에서나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실제적인 해결은 어렵다. 그래서인지 이엘리가 오스칼을 괴롭힌 아이들을 살인하는 장면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잔인하지만 분명한 해결이다. 영화는 뱀파이어라는 장치를 통해 현실에선 불가능한 새로운 해결 방법을 보여준다. 그러나 결국 그러한 방법밖엔 없었는가, 이엘리가 없는 오스칼은 끊임없이 폭력에 노출되어야만 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남긴다.
만약 영화의 장르가 호러가 아니었다면 다른 결말이 펼쳐졌을까? 온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아무 죄 없는 사람을 살해하고 직접 자신의 얼굴에 염산을 뿌리는 직접적인 잔인함보다도 기억에 오래 남은 건 두 아이가 함께 떠나는 기차 안에서의 장면이었다. 저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 누군가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천진난만한 행동을 보며 알게 모르게 걱정이 피어올랐다. 이 때문인지 마지막 복수 장면도 그것이 가져다주는 카타르시스와는 별개로 자꾸만 곱씹어 보게 된다. 다른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판에 박힌 생각과 함께.
오스칼이 뱀파이어로 변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이엘리를 떠나게 될 거다. 영화는 호칸이라는 남자를 통해 오스칼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호칸처럼 쓸모를 잃고 죽어버리진 않더라도, 오스칼이 뱀파이어로 변하지 않는다면 결국 둘에게 남은 결말은 헤어짐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엘리는 오스칼의 자리를 채울 타인을 만나 다시 한번 허락을 구하게 될까? 이엘리는 만남과 이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피를 흘리며 허락을 구해야 하는 것일까? 영화에서 한 걸음 멀어지고 난 후에야 두 아이의 결말이 과연 어떻게 날 것인지, 그래서 결국 행복해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더 많은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이엘리와 그런 그녀와 함께 하는 것을 택한 오스칼은 그렇게 평생을 도망치며,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살아야 한다는 예정된 미래가 어쩜 이 영화에서 가장 섬뜩한 부분인 건 아닌지.
결국 오스칼과 이엘리는 둘만의 관계를, 세계를 창조해나가기로 선택한다. 그게 얼마나 큰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는지 알고 있음에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마치 둘만의 기나긴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작은 여행가방 속에 들어있는 이엘리에게 서로만이 아는 신호를 보내는 오스칼의 표정은 무척 행복해 보인다.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받아도 타인에 의해 치유받는 모습은 역설적이지만 한편으론 수긍하게 된다. 인간은 마치 그것이 본능인 것처럼 타인을 차별하고 그 속에서 기어코 낙오자를 만들어내지만 결국 낙오자를 다시 끌어올리는 것 또한 인간의 몫이다. 이엘리와 오스칼이 함께 한다는 사실 이외에 다른 위로는 발견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렛 미 인>을 성장 서사라고 보는 이유는 오스칼과 이엘리가 함께 그들만의 길을 나아가기 때문이다. 결국 가해도, 치유도 모두 우리의 몫이라는 점에서, 우린 서로에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또 얼마나 다정해질 수 있는지를 <렛 미 인>은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