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적인 개최를 축하하며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영화를 사랑하고 즐기는 모든 이들의 축제이자 명실공히 세계적 수준의 시네마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경쟁부문을 부분 도입한 비경쟁 영화제라는 점에서 평가의 잣대는 잠시 내려놓고 편히 영화를 즐길 수 있고, BIFF 전용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영화의전당이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자세히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를 볼 수 있게 돕고 있어 더욱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남포동 일대 BIFF 광장에서 왁자지껄하게 벌어지던 축제의 현장을 다시 경험할 수 없다는 아쉬움은 분명 존재하지만, 수영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야외무대에서 영화를 보고 있자면 이런 지상낙원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코로나19로 인해 개폐막작 행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여러 행사를 간소화하여 진행했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다행히 대부분의 행사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 상영작의 감독과 배우들이 레드카펫에 올랐고 GV를 진행했으며 야외무대나 실내공간을 통해 관객과 가까이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있었다. 올해는 70개국 223편 정도를 초청했다. 작년을 제외하고 최근 10년 사이 매년 300편에 가까운 작품을 상영했던 스코어엔 미치지 못하지만, 아직도 코로나19로 인해 영화계의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조차도 감사한 숫자임이 틀림없다.
원래도 BIFF는 피켓팅(피가 튀기는 티켓팅)으로 소문이 자자한데, 코로나19로 인해 감독, 배우와의 만남의 기회가 현저히 감소한 지금 그 경쟁은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BIFF의 열렬한 팬으로서 나도 이번 피켓팅에 참여를 했는데, 거짓말 안 하고 정말 손가락을 걸었다. 다량의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 경험을 바탕으로 손목을 풀었다고 해야 할까. 개폐막작 따로, 상영작 따로 예매가 풀렸는데 아무래도 개폐막작에 더 사람이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나름대로 배려를 한 것 같았다. 그리하여 피켓팅의 결과는... 개막작인 <행복의 나라로>,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고양이를 부탁해>, 그리고 <무간도>까지 성공했다! <고양이를 부탁해>와 <무간도>는 리마스터링 버전이다. 사실 GV가 없다면 자리가 항상 동이 나는 건 아니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그렇게까지 피를 튀길 정도의 티켓팅이었을까 싶긴 했지만, 개막작 티켓팅 성공이 무지 어려운 일인 건 사실이다. 그런데 개막작을 성공하다니... 라 구역의 E열이었던지라 자리도 너무 좋았다. 올해 운을 다 썼던 건 아닐까 싶었다니깐. 그럼에도 하나 아쉬웠던 건 <아네트>를 놓쳤다는 사실이었다. 마리옹 꼬띠아르와 아담 드라이버 주연의 뮤지컬 영화로 2021 칸 영화제 개막작이자 감독작 수상작이기도 하다.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를 잡고 나니 <아네트>는 이미 매진이 된 후였다. 이번에 꼭 봐야지 하고 마음먹었던 영화였는데... 그래도 만족할 만한 결과라고 생각하며 아쉬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Day 1. 개막작 <행복의 나라로>의 최민식 배우의 말, "너무 보고 싶었고, 그리웠습니다."
매년 BIFF에 대한 관심은 곧 그해 BIFF의 개폐막작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올해 BIFF와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것은 개막작일 테고, 축제를 마무리하며 내년 BIFF에 대한 기대감을 남기게끔 돕는 것은 폐막작일 테다. 덕분에 다른 초청작들보다도 관객들의 관심이 더욱 쏠린다. 특히 개막작의 경우, 레드카펫 행사와 공로상 시상 등 여러 행사와 함께 공개되고 개막작의 감독과 배우들은 대부분 레드카펫에 참석하기 때문에 티켓팅은 더욱 치열하다.
제26회 BIFF의 개막작은 <바람난 가족>, <하녀> 등의 작품으로 익숙한 임상수 감독의 <행복의 나라로>였다. 최민식, 박해일을 주연으로 이엘, 조한철, 임성재 등 여러 작품에서 인상 깊은 연기력을 보여준 배우들이 참여했다. 코로나19가 터지지 않았다면 이미 <행복의 나라로>를 영화관에서 만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래서인지 최민식, 박해일 주연 배우 모두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었다.
<행복의 나라로>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수감자 '203(최민식)'과 병원에서 약을 훔치며 살아가고 있는 '남식(박해일)' 앞에 갑작스럽게 거액의 돈이 떨어지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담은 로드무비다. 2020 칸 영화제에 초청되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영화제 자체가 취소돼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임상수 감독의 네 번째 칸 영화제 초청작이라는 점, 구 이순신인 최민식(<명량>)과 곧 만날 이순신인 박해일(<한산: 용의 출현>)의 만남이라는 점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연기한다는 건,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연기로 까일 일이 없다는 말일 테니까.
<행복의 나라로>의 감독과 배우들은 가장 마지막으로 레드카펫을 걸어 들어왔다. 화려한 옷과 화장으로 꾸민 다른 배우들과 달리, 최민식과 박해일은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손을 흔들었다. 잠시 무대 위에서 감독과 배우들이 영화에 대한 소개할 시간이 있었는데, 그중 최민식 배우의 말이 꽤나 기억에 남았다. "너무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뱉은 말은 짧았으나 그것이 담고 있는 감정은 크게 느껴졌다. 아마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영화인들이 공감할 수 있었으리라. 관객과 직접 만나기 어려운, 하물며 영화 자체가 개봉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BIFF가 무사히 개최된 것만으로도 감사한 상황이니 말이다.
영화 제목인 '행복의 나라로'는 한대수의 노래 '행복의 나라로'에서 나온 게 맞다. 한대수 씨는 건강상의 이유로 영화제에 참석하진 못했지만 직접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보내 모두가 함께 볼 수 있었다. 영화에선 장기하가 부른 리메이크도 나온다. 영화를 보고 나니 '행복의 나라로'라는 제목을 노래로부터 따왔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죽음과 삶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이야기하는 이 영화를 조금은 느릿한 태도로 웃으면서 볼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드는 주역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을지도.
솔직하게 말하자면 영화를 보고 난 후의 생각은, 기대엔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였다.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로 훌륭했지만, 인물에 대한 설득력이 거진 배우의 연기로부터 도출되는 느낌이었다. 분명 매력적인 인물들도 있었지만, 불필요한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인물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주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 어떤 배우가 화면에 나오는지에 따라 널뛰는 느낌이었다. 다소 빈약할 수 있는 설정을 두 주연 배우의 연기로 어찌어찌 끌고 왔는데 얼마 못 가서 다시 돌아가고, 그리고 다시 잡았다가 다시 놓치고...
그럼에도 좋았던 건, 사실 포스터 덕분에 미리 눈치를 채기도 했지만, 색감이 참 이뻤다는 점이다.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촬영을 했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몇몇 장면은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다. 특히 포스터에서 볼 수 있는, 트럭 앞에서 두 사람이 함께 수박을 먹고 있는 장면은 색감도 좋았고 연기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주인공이 시한부라는 설정임에도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따뜻하고 안정감 있는 색채를 사용하고 그것이 잘 드러나도록 돕는 장소를 선택하려 노력했다는 점이 잘 와닿았다.
어쨌든 삶과 죽음, 행복 같은 가장 보편적이지만 가장 어렵기도 한 주제를 다룬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도전이긴 하다. 관객의 입장으로선 최민식과 박해일이 보여준 착하고 순수한 사람 연기를 관람한 것만으로도 기뻤다. 그리고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좋은 영화야 당연히 훌륭하지만, 만약 어떤 영화에서 단 한 장면이 깊은 울림이나 감정의 위로를 가져다주었다면 그 영화 전체가 볼만한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아마 <행복의 나라로>에서 두 주인공이 수박을 먹는 장면이 바로 그렇지 않을까. 두 주인공의 대화와 상황, 화면에 보이는 모든 색감, 소리... 그 모든 게 순식간에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비록 기대에 미치진 않았지만, 이 작품을 추천하는 이유다.
종종 BIFF는 개폐막작에 관련한 논란에 휩싸이곤 했다. 생각보다 별로라거나, 너무 난해하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그건 아마 BIFF에 대한 애정이 너무 큰 나머지, 개폐막작에 대한 기대가 한껏 올라간 상태로 우리가 영화와 마주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올해 개막작 <행복의 나라로>는 현재 겪고 있는 팬데믹 상황에서 행복과는 조금은 멀어진 우리에게 감독이 건네고 싶은 작은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였던 것 같다. 그리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최민식, 박해일의 엄청난 연기까지도. 이 정도면 BIFF 개막작으론 합격점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관객들은 분명 진심의 박수를 보냈으니 말이다.
Day 3. 20년 만에 다시, <고양이를 부탁해>. 그리고 정재은 감독 GV.
4K 리마스터링 재개봉. 이것만으로도 심장이 뛰는데, 무려 20년 만이란다. 참 오래 전의 영화가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스무 살 소녀들의 우정을 담은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가 그 주인공이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정재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손꼽히는 배두나와 <선덕여왕>, <광식이 동생 광태> 등 드라마와 영화를 가리지 않고 도전해 언제나 좋은 평을 받는 이요원의 출연작이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청춘의 이야기, 특히 어린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린 국내작으로서의 희소성을 가짐과 동시에 현재는 인정받는 배우로 성장한 배두나, 이요원의 신인 시절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다시금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BIFF는 20년 만에 재개봉되는 <고양이를 부탁해>를 초청하여 상영했고, 정재은 감독과의 GV 기회도 마련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디딘 스무 살 소녀들을 BIFF에서 20년 만에 다시 만났다.
태희, 혜주, 지영, 온조, 비류는 여상을 졸업하고 각자의 길을 찾아 나서게 된다. 증권가에 취직해 누구보다 바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혜주와 달리, 태희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 멀리 떠나고 싶어 하고 지영은 집이 곧 무너져 내릴 것 같다는 불안감으로 구직을 위해 돌아다니기 바쁘다. 모두가 같은 상황에서 함께하던 고등학교 때와 달리, 각자 다른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관계엔 점차 균열이 생긴다. 결국 혜주와 지영은 서로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싸우게 되고, 태희는 친구들을 한 자리에 모으기 위해 애쓰지만 이조차도 쉽지 않다.
갓 스무 살이 된 다섯 명의 친구들은 아직도 성인보단 소녀에 가깝다. 비록 졸업 이후 함께 있는 시간은 줄고, 각자에겐 해결해야 할 사건과 고민이 쌓여가지만 그들이 대처하는 방식이나 결국 서로를 찾아가는 과정에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보인다. 하지만 때로는 잔인한 현실 앞에서, 때로는 답답한 상황 속에서 그러한 순수함은 더욱 쉽게 상처 받고 깨져버린다. 다시 만난 친구들도 예전처럼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주진 못한다. 혜주와 지영은 고등학교 시절 가장 친했지만 친했던 만큼 미워하게 된다. 혜주는 지영이 다 같이 만나는 자리에서 틱틱거리는 게 꼴 보기 싫고 지영은 해주가 무심코 드러내는 무시가 짜증 난다. 혜주의 입장에선 지영이 얼른 일자리를 잡고 안정된 삶을 살았으면 좋겠는데 유학이나 공부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게 어불성설처럼 느껴진다. 반면 지영은 취직을 했다는 이유로 콧대가 높아진 혜주의 이기적인 모습과 배려 없는 행동이 기만적이라고 생각한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모든 소녀들의 이야기다. 졸업과 동시에 일자리를 잡은 혜주처럼 운이 좋은 친구들이 있는 한편, 조부모님과 함께 살며 당장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집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지영 같은 친구들도 있다. 그리고 가부장적인 분위기와 억압적인 집안으로부터 달아나 멀리 떠나고픈 태희 같은 친구들도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대학에 가거나 사회를 경험하면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과 방황은 20년 전의 그녀들처럼, 20년이 지난 오늘날의 그녀들도 겪고 있다.
흔한 사연이다. 고등학교 땐 누구보다 사랑하던 친구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곤 점차 만나기 어려워진다. 어쩌다 만나면 괜히 어색한 공기가 흐르거나 신경이 곤두서는 일들이 생긴다. 친했던 시간은 사진 같은 기록으로만 추억되고 어쩐지 괜히 만났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각자가 겪는 일이 다르니 서로를 이해하기도 어렵다. 그런 과정에서 서로를 상처 입히는 말들을 주고받게 되고 관계는 더욱 멀어진다. 아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십 대 초반의 여성들, 혹은 모든 청춘들이 겪는 보편적인 이야기다. 언제나 영원할 것처럼 굴었던 친구들과 멀어지고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을 계속해서 마주하면서 청춘들은 외로움을 자주 경험한다. 친구는 길을 찾아 빠르게 나아가는데 혼자 망부석처럼 굳어있는 것만 같아 불안하기도 하다. 결국 이 시기에 누군가와는 멀어지게 되고, 아예 인연을 저버리기도 한다. 마치 이전에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은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헤어짐’에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은 ‘같이’다. 영화 상영 이후 GV에서 정재은 감독은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같이 한다는 것, 함께 한다는 것’ 임을 말했다. 비록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새로운 사람과 함께 하더라도, 그 속에서 우리는 잠시 멀어지더라도, 다섯 명의 소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같이’ 한다. 회사에서 저부가 가치 인간이라는 소리를 듣던 혜주는 같은 처지의 여자 사원들과 친해지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찬용에게도 마음의 문을 연다. 결국 집이 무너진 지영과 제 발로 집을 걸어 나온 태희는 함께 머나먼 길을 떠난다. 이제껏 그래 왔던 것처럼 온조와 비류도 함께 삶을 살아간다.
영화는 어쩌면 껄끄러울 수 있는 헤어짐에 대해 현실적으로 풀어내는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와 함께 새로운 출발을 해내는 소녀들을 향해 위로와 격려를 아낌없이 보낸다. “누군가 널 떠난다고 해서, 널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야.” 영화에서 태희는 나를 좋아하냐고 묻는 뇌성마비 시인에게 그렇게 답한다. 널 떠난다는 게, 널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라고. 난 지금 널 떠나지만 너에 대한 마음은 언제나 영원히 남아있을 거라고. 그리고 태희는 혼자가 된 지영에게 이렇게도 말한다. “혼자 다니는 것보다는 너랑 함께 다니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인생에서 용기를 내어 선택한 걸음을 너와 함께 하고 싶다고. 우리 같이 해보자고.
영화가 끝나고 이어진 GV에서 신기했던 건 질문자들이 전부 이십 대 초반의 여성들이라는 점이었다. 정재은 감독은 20년 만에 재개봉한 영화라 20년 전에 봤던 관객들이 다시 보러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영화를 처음 보는, 특히 이십 대 관객들이 많다며 신기하기도 하고 새롭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영화를 보러 간 나와 내 친구조차도 이십 대 초반의 여학생이었으니 정재은 감독의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뜨끔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나이를 살고 있는 관객들이 <고양이를 부탁해>를 통해 같은 고민을 나누고 위로를 받기 위해 찾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정재은 감독은 과거 배두나 배우와 영화를 찍으면서 20년이 지난 후에 시간이 지난 후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속편을 제작하면 재밌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은 있지만, 이번 4K 리마스터링 재개봉이 20년 만에 이루어지면서 마치 <고양이를 부탁해 2>가 나온 느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과거엔 잘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선명하게 나타나면서 새로운 느낌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필름이 가지고 있는 장점도 있지만 분명 선명한 화면으로 드러나는 깊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태희, 혜주, 지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다 보니 비류와 온조, 찬용 등 주위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된 바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다른 인물들에 관한 질문이 몇 번 나오기도 했다. 감독은 원래는 1차 편집 후에 3시간이 넘는 길이였을 정도로 태희, 혜주, 지영에 대한 설정이 좀 더 자세했고 주위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더 많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길어 2시간에 가까운 분량을 잘라냈고 분명 그러한 점에 대해선 아쉬움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나도 영화를 본 후 혜주와 지영의 과거 이야기나 혜주와 찬용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이 많이 남았다. 이런 이야기를 다 담은 <고양이를 부탁해 2>가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양이를 부탁해>가 20년이 지나고도 회자되고 있는 건, 주인공인 태희, 혜주, 지영, 그리고 비류와 온조까지, 그들 모두가 겪은 방황과 아픔을 오늘날의 스무 살 언저리의 여성, 청춘들도 고스란히 겪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다는 것, 그것은 과거와의 헤어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고, 새로운 출발을 향해 함께 길을 떠난다는 것이기도 하다. 조금은 아프기도 하고, 또 조금은 슬프기도 한 우리들의 청춘의 시작이 비록 외롭게 느껴져도 결국 우린 함께 하기에 잘 해낼 수 있을 테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잠시 멀어져도 언제나 남아있는 그 시절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이자 떨리는 첫걸음을 내딛는 새끼 고양이들의 도전에 대한 이야기였다. 열아홉도, 스무 살도 모두 겪었거나 겪을, 혹은 겪고 있을 우리 모두를 향한 위로와 격려를 듬뿍 담아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