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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전종서 배우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 이라 쓰고 힙한 영화라 읽는,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영화가 시작되기 전 10분 간 이어진 짧은 GV에서 전종서 배우는 시종일관 이 영화가 ‘힙하다’고 표현했다. 덧붙여 이 영화가 큰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수입될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고 했다. 주연 배우가 자신의 출연작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일반적으로 자주 쓰지 않는 표현이라, 어쩐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됐다. 영화가 시작되고 5분도 지나지 않아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았다. 감각적인 음악과 눈길을 사로잡는 이미지로 영화는 온통 도배되어있었다. 거대한 담론은 아니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귀여운 이야기였다. 그 중심에서 전종서 배우의 나른한 눈동자가 밤하늘 달빛과 함께 빛나고 있었다. 왜 그녀가 기어코 몇 번씩이나 ‘이 영화는 힙합니다.’라고 말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요즘 가장 눈길이 가는 여자 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전종서 배우를 말하고 싶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으로 인상적인 신고식을 끝낸 그녀는 이충현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콜>로 색다른 변신을 시도했고, 기어코 성공했다. 작품수는 적지만, 작품마다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 거다. 나른한 표정으로 과감한 연기를 보이는데, 그런 반전 매력을 어색하지 않게 구사하는 타고난 재능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데뷔 이후 드라마가 아닌 영화를 잇따라 선택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 영화들이 전부 일반적이지 않은 역할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자신만의 색깔대로 잘 해냈다는 점은 놀라울 정도다. 때로는 위태로운 청춘의 모습을 그리기도, 때로는 섬뜩한 살인마의 모습을 표현하기도 한 전종서 배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그런 그녀가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이라는 할리우드 작품에 출연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녀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이라는 점도 화제가 되었지만, 케이트 허드슨과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끌었다. 줄거리를 보자마자 전종서라는 배우에게 왜 이 역할이 주어졌는지 알 것 같았다. 12년 동안 정신병원에 갇혀있던 연기를 보여준 적은 없었지만, 이 기상천외한 역할을 어쩐지 잘 해낼 것만 같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이라는 영화 자체가 굉장히 특이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제목도 길고, 캐릭터들에 대한 설명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때문에 이번 BIFF에 초청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 영화는 꼭 보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전종서 배우에 대한 팬심 85%에 제목에 끌린 거 14%로 결정된 마음이었다. 나머지 1%는 왠지 영화관에서 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예상이었다. 아무래도 여러 극장에 걸릴 것 같진 않았다. 나의 예상은 전종서 배우의 말에서도 적중했다. 그녀는 자신이 출연한 이 영화가 한국에 수입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고. 어쨌든 이러저러한 그녀의 설명을 들어보면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은 자신의 캐릭터인 모나리자가 케이트 허드슨을 강아지처럼 쫓아다니며, 노래가 굉장히 좋고, 그렇지만 매우 작은 규모인, 힙하고 트렌디한 영화였다.
정말 그랬는가? 정말 그랬다. 감독의 짧은 초청 소감과 인사가 끝나고,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난 전종서 배우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신병원에 수감된 모나리자는 마치 동물처럼, 야생 소녀 같은 모습으로 모든 상황을 경계한다. 곧 무슨 일이 시작될 것만 같다는 느낌이 몰려오고, 그 예감은 적중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초능력을 부려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그녀는 우연히 스트립 댄서 보니 벨과 만나고 그녀를 따라가게 된다. 이후 그녀의 아들 찰리와 만나 교감하게 되고, 자신을 쫓아온 경관 헤롤드를 피해 함께 도망가게 된다.
어떻게 보면, 스토리는 매우 단순하다. 이미 이런 비슷한 내용의 영화를 만난 적이 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살다가 보호자 격의 누군가와 우연히 만나게 되고 마침내 성장하는... <늑대소년>. 마침 이번 BIFF의 개막식 진행자가 송중기 배우였는데... 생각이 났다. 하하. 어쨌든 내용에서 새로운 느낌은 없었다. 설정은 분명 새롭지만 흘러갈 내용에 대한 예측이 가능했다.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다른 데에 있었다. 바로 노래! (전종서 배우가 주목해서 보면 좋을 거라고 추천했기 때문에 더욱 주목했던 부분이다.) 정말로, 노래가 감각적이었다. 어떤 느낌을 받았을 정도냐면, 노래를 위해 장면을 사용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노래가 끊이지 않고 사용되었고, 선택된 노래들은 장르에서나 가사에서나 비슷한 느낌을 주어서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세웠다. 왜 전종서 배우가 영화를 소개하면서 음악을 강조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영화가 성공적이었다는 소린 아니다. 내용 진행이 단순한데 음악과 이미지가 과할 정도로, 말 그대로 트렌디하다 보니, 영화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마치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 같았다.
물론 어떤 철학을 논하고 있는 영화도 아니고, 무거운 분위기를 예고한 것도 아니기에 이런저런 걸 요구하긴 어렵다. 나도 그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잊지 않고 집중했던 또 다른 부분은 배우들의 연기였다. 전종서 배우는 모나리자 역할에 딱 맞게끔 연기를 했다. 특히 특유의 멍한 눈빛이 맡은 배역과 잘 어울렸다. 찰리를 연기한 에반 휘튼의 똑 부러지는 연기도 좋았다. 케이트 허드슨의 연기는 두말할 것도 없다. 이런 판타지 영화에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한다는 건 도전에 가깝다. 그것도 심지어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해야 할 때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종서 배우의 연기엔 정말로 박수를 쳐주고 싶었달까.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상영 전에 전종서 배우는 영화의전당 옆에 있는 KNN에서 '액터스 하우스' 행사를 먼저 진행했다. 여기에도 가고 싶었는데, 가지 못해서 아쉬웠다. 아마 영화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 거다. 갔다 오신 분들 정말 부럽습니다. 엉엉.
사족으로 전종서 배우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팬심으로 덧붙이자면, 짧았던 GV에서 걸치고 나온 옷이 너무 잘 어울렸다. 당시에 전종서 배우는 폼이 넓은 갈색 트렌치코트를 입었는데, 그 모습이 참 잘 어울리고 아름다웠다. 시간이 촉박해서 질문에 대답하기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 텐데, 또박또박 전달력도 좋았고, 불편한 기색도 없었다. 나 정말... 눈에 하트 띄우고 배우님 보고 있었다. 어쨌든 이번 만남을 계기로 BIFF에서 계속해서 만났으면 좋겠고, BIFF에서 사랑받고 BIFF를 사랑하는 여러 배우 중 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Day 7. 언더커버 영화의 바이블 <무간도>, BIFF에서 다시 만나다
확실히 달랐다. 뭐가 달랐냐면, 눈에 보이는 관객들의 나이대가 그랬다. 아무래도 젊은 층의 참여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달랐다. 적어도 30대 후반에서 40대, 50대까지도 종종 보였다. 그들 모두가 어떤 기대감으로 들떠있었다. 아마도 나는 알지 못하는, 과거의 어느 순간을 다시금 떠올리려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게 아니었을까. 양조위와 유덕화라는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곤 했던 어떤 순간들을 추억하기 위한 방문이 아니었을까.
<무간도> 트릴로지는 전설이다. 나오는 배우들도 그렇지만, 시나리오도, 영상도 정말로 '갓벽'하다. '언더커버'라는 소재를 다룬 영화 중에서도 아직까지도 가장 완성도가 높은 시리즈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몰라. 내가 너무 덕후의 마음으로 보고 있는 건가. 하지만 진실인데!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다른 조직에 잠입한다는 설정 하나로도 충분히 매력적인데, <무간도>는 그런 사람이 두 명이나 나온다. 한 사람은 경찰에서 조직으로, 다른 한 사람은 조직에서 경찰로. 마치 뒤바뀐 운명인 것처럼, 두 남자는 무간도를 향해 몸을 던지게 된다.
이번 BIFF에서 2, 3편까지도 상영했다면 난 기어코 다 봤을 거다. 아쉽게도 1편만 만날 수 있었지만, 그거라도 어디인지. <무간도>와 같은 영화를 작은 휴대폰이나 TV 화면으로 본다는 건 슬픈 일이다. <무간도>의 상징적인 장면과도 같은 옥상신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된다. 그걸 영화관이 아닌 작은 화면으로 본다는 건 고래를 작은 수족관에 가둔다는 것과 같을 테니까. <무간도>가 나왔을 적엔 말이나 제대로 할까 했을 나이였던지라 내겐 스크린으로 만날 기회가 애초에 없었다. 때문에 이번 BIFF가 4K 리마스터링으로 <무간도>를 상영한다고 했을 때 이건 기회다!라는 마음으로 급히 예매를 했다.
줄거리에 대한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다만 그 시대를 상징하던 양조위와 유덕화의 <무간도>에서의 모습에 대해선 짤막하게나마 남기고 싶다. 왜, 그런 배우들이 있지 않나. 그 사람의 등장만으로도 분위기가 변하고, 그 사람의 눈빛만으로도 극의 흐름이 반전되고, 그 사람의 손짓 하나로도 마음이 일렁이게 되는 배우들. 멋이나 존재감? 이런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그 이상의 것을 가진 배우들. 양조위와 유덕화가 모두 그런 배우임에는 딱히 이견이 없을 것 같다.
두 사람은 배우로서 다른 매력을 갖고 있고, 특히 <무간도>에선 대척점에 서있는 인물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상반된 매력이 더욱 잘 드러난다. 양조위가 연기한 '진영인'이란 인물은 본래 신분은 경찰이지만 조직에 잠입해 정보를 빼내 와야 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매 순간 어려움의 연속이다. 자신이 경찰임에도 경찰을 피해 도망가야 하고 조직에서도 자리를 잡아 유용한 정보를 넘겨야 한다. 반면 유덕화가 연기한 '유건명'은 조직에서 경찰로 키운 인물로, 진영인과 비교하면 좀 살 만하다. 조직을 위해 정보를 전달하곤 있지만 여차하면 조직과의 인연을 끊고 새 출발을 해버려도 되는 삶이다. 이 두 인물을 연기한 배우가 양조위와 유덕화라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 정도로 완벽한 캐스팅이라고 생각된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설정을 가진 두 인물은 양조위와 유덕화라는 두 배우에 의해 완벽히 표현된다.
<중경삼림>에서 663이 처음 등장했을 때 영화를 보던 관객들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지른 후로 양조위는 소위 말하는 그런 배우로 등극해버렸다. 등장하면 탄성을 지르게 만드는 배우로 말이다. 잘생긴 외모에서 나오는 매력도 분명 크지만, 보면 입이 떡 벌어지는 이유로 고작 그 하나만을 꼽을 순 없다. 양조위가 스크린에 등장하면 극이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의 존재는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극을 이끌어가는 인물이 첫 등장에서부터 이질감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분명 초면인데 구면인 느낌이다. 선한 역할에서부터 악역까지, 양조위는 맡은 역에 대한 끊임없는 이해를 바탕으로 인물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때문에 그의 연기엔 특유의 느낌이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나 어딘가에 갇혀있다는 말이 아니다. 이건 인물을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다. 양조위가 연기한 인물들은 언제나 영화라는 비현실적 상황에 놓여있음에도 매번 관객을 설득시키는 데에 성공한다. 덕분에 관객들은 <무간도>에서 크로스오버 되는 언더커버라는 설정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자, 우리 이제 이런 이야기 할 거야. 알겠지?- 하고 들어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유덕화를 표현하는 단어는 주인공이다. 영화에서 그를 만나면 단번에 느낌이 온다. 그만큼 영화에서 그의 존재감이 크다는 의미다. 유덕화는 아주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이 인물을 표현한다. <무간도>에서 양조위의 진영인으로 인해 다소 복잡하고 어려운 마음이 생긴다면, 유덕화의 유건명은 영화의 속도감을 올리고 긴장감을 조성한다. 두 인물은 신분을 속여야 한다는 점에서 같은 상황에 놓여있지만, 유건명의 경우엔 진실이 들통나면 신변의 위협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신분까지도 추락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진영인은 얼른 신분이 밝혀지길, 유건명은 끝까지 신분이 숨겨지길 바라게 된다. 굳이 악인을 골라야 한다면 유건명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건명의 신분이 계속해서 숨겨지길 바라게 되는 이유는 이 인물의 매력이나 상황, 그가 한 선택 따위가 그러한 마음을 기어코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유건명은 언더커버로 살아가며 다른 삶을 꿈꾸게 되고, 결국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영화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기도 하고, 줏대 없는 인물이라 할 수도 있는데, 자칫 미움받기 쉬운 설정을 유덕화는 능청스럽게 연기한다. 양조위가 진영인의 존재에 설득력을 부여했다면, 유덕화는 유건명의 선택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무간도>는 친구와 함께 봤는데, 양조위가 스크린에 등장하고 우린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다 안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유덕화가 나왔을 땐 조용히 읊조렸다. 진짜 잘생겼다... 하고. 너무 진심이라 창피하지도 않다.
<무간도>를 보고 난 후 내내 떠오른 생각은 전혀 촌스럽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촌스럽긴 개뿔. 요즘 누아르 물도 저렇게 깔끔하게 찍기 어렵다. 중복되는 장면 없이 설명이 충분하고, 주인공은 입체적인 한편 설득력을 가진다. 물론 상황의 마무리나 몇몇 장면은 굳이 필요하지 않았거나 필요에 의한 덧붙임이라는 느낌도 든다. 그렇지만 이야기의 설정이나 진행되는 과정, 인물을 그리는 방법까지 그 모든 게 과함도 없고 덜함도 없었다.
한 편으로 마무리되는 영화도 있지만, 속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영화는 분명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세계관에 대한 더 큰 관심을 갖게 만드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무간도> 시리즈가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의 80% 이상은 1편의 높은 완성도가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완성도에는 양조위와 유덕화가 그려낸 진영인과 유건명의 매력이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음은 당연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