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다음에 또 만나용
Day 8. 관계의 잔인하고, 자연스러운 성격을 포착하는 순간. <소녀와 거미>
부산국제영화제를 즐기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야외무대인사 가서 감독, 배우를 직접 만나보기. 둘째, GV가 함께 하는 영화를 관람해보기. 그리고 하나 더, 아무런 정보도 없이 외국 영화를 하나 예매해서 보기. 마지막 방법의 일환으로, 난 겁도 없이 스위스 영화 <소녀와 거미>를 예매했다. <소녀와 거미>는 라몬 취르허, 질반 취르허 두 형제 감독의 작품으로, 영화 시작 전에 두 사람이 보낸 짧은 영상편지를 먼저 만나볼 수 있었다. 이번 BIFF에 참여하지 못한 아쉬움을 전하며 자신들의 영화는 조용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때 조금 웃겼다.) 아무래도 외국 영화 초청작의 경우엔 적어도 올해까진 감독과의 만남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아서 아쉬웠는데, 이렇게나마 영상편지에서 짧은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드는 생각은... 단도직입적으로, 영화는 어려웠다. 얼마나 어려웠냐면, 길지 않은 영화였음에도 내가 졸았을 정도. (죄송합니다 감독님들…) 솔직히 영화 보다가 잘 것 같다고 예상은 했다. 사전 정보도 없고, 딱 봐도 어려워 보이고, 심지어 언어도 낯설다. 엄청난 임팩트가 없다면, 98% 정도의 확률로 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최대한 자지 않으려고 노력이라도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앉았는데... 난 실패했다. 유ㅅ유
그럼에도 어느 정도는 이해해보려고 노력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내가 느낀 바에 따르면, 영화는 관계의 변화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리자는 마라와 함께 살던 공간을 벗어나 혼자만의 집을 구하게 된다. 마라와 가족, 친구들은 리자의 이사를 돕는데, 영화는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의 초점은 이사를 가게 되는 리자가 아닌 그런 리자를 보내는 마라에 맞춰져 있다. 마라에게 있어 리자의 이사는 관계의 변화를 알리는 발단인 것이다. 영화는 새로운 사건이 마라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되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리자의 이사가 마라에게 남긴 영향은 단순히 상실이라는 단어로 표현되기엔 더욱 복잡하다. 그녀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일종의 관계의 변화에서 비롯된 상실감도 분명 존재한다. 더불어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감정, 상황을 맞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리자의 엄마로부터 느껴지는 경계심이나 이사를 돕는 남자와의 미묘한 감정 따위가 그렇다. 그러나 그 모든 감정들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배우들의 대사와 눈빛 정도로만 암시된다.
마라의 친구로 나온 한 여성은 자신을 방에 넣어두고 새로운 사람을 그곳으로 초대해서 만난다. 밖으로 잘 나오지 않고,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기라도 하면 예민하게 반응한다. 한편, 마라에게 관심을 갖게 된 한 남성은 마라의 소개로 여성의 방에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만남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영화에서 나온 여성처럼, 변화, 새로움 따위를 극히 좁은 방법이나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방법으로 받아들이는 유형도 존재한다. 타인과의 새로운 만남은 기어코 은밀한 방법으로 달성되곤 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던 남성을 다른 여성에게 소개해준 마라의 행동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지속적으로 느껴진 불쾌감은 바로 이러한 부분에서 더욱 짙어진다.
영화가 끝나면서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우리의 관계에 대한 짧은 고찰을 담은 내용이었다. 우린 누군가와 만나고 그를 알게 되고 마음을 나누게 되지만, 헤어질 수 있고 그렇게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다 또 다른 누군가와 다시 만날 거고 그와도 같은 과정을 반복할 수 있다. 대충 이런 취지였던 것 같다.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학교에서 내내 머무르던 어린 시절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좋은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나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꼭 세계일주를 같이 가자고 약속을 하고, 어른이 되면 같은 건물에 살자고 하고, 함께 빵집을 차리자고 했던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얼굴 한 번 보기가 힘드니까. 서운할 때도 있지만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그래서인지 이 건조한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아리기도 했다.
사실 영화가 좀 난해하다고 느껴질 만한 요소가 많았다. 배우들의 대사나 카메라가 담는 구도, 인물 간의 관계 등등. 숨통이 그나마 트이는 부분은 아이들을 비출 때였다. 영화에선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어지러운 장난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들의 등장과 행동은 다소 무례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현실감이 넘치는 부분이다. 다른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은 거의 연극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때론 너무나도 정적이고 때론 너무나도 생략되어있다. 그들의 표현 방법이 얼마나 함축적인지, 이야기의 진행과 상관없이 다른 요소들이 더욱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마라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한다고 이사를 돕지 않는다거나… 영화를 보면서 그게 얼마나 신경이 쓰였던지!... 이런 딴생각을 계속해서 하게 된 것 같다.
영화에서 거미는 일종의 흔적이다. 내가 누군가를 만났고 눈을 맞추었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렇게 관계를 맺었다는 흔적이다. 사람 사이에 있다는 인연이 실선으로 표현되는 것처럼, 거미가 남기는 거미줄은 그들의 관계를 상징한다. 결국 소녀가 누군가와 헤어지더라도 그 시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들이 머물렀던 공간의 벽에 거미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소녀의 관계도 그녀의 안에 남아있다. 그게 관계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Day 10. 올해의 뉴커런츠, <안녕, 내 고향>
올해 BIFF 목표 중에 하나가 '뉴커런츠 수상작 보기'였다. 두 작품 중에 하나는 꼭 봐야지!라는 마음으로 좋은 자리가 아니더라도 예매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좋은 자리는 아니었다. 앞에서 세 번째 줄이었던가 그랬으니까. (목이 빠지는 줄 알았다. 아이맥스 뺨치는 중압감.)
올해의 뉴커런츠는 왕얼저우 감독의 <안녕, 내 고향>과 김세인 감독의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가 받았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를 초청작 리스트에서 봤을 때부터 꼭 보고 싶었는데, 스케줄이 안 맞아서 이래저래 밀리다가 결국 마지막 뉴커런츠상 상영에서도 만나진 못했다. 아무래도 올해는 인연이 없었던 모양이다.
뉴커런츠상 1과 2 중에 1을 예매했는데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중국 영화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덕분에 새로운 중국 영화를 보는구나, 하고 설레는 마음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작년에 주동우라는 배우에게 꽂혀 중국 영화를 참 많이 봤던 시기가 있었다. 그녀의 작품을 계속해서 봤더니 한동안은 또 중국 영화를 안 보게 됐다. 좋은 노래도 너무 많이 들으면 질리는 것처럼, 내게도 딱 그런 느낌이었다. 어쨌든 그 시기에 만난 중국 영화들이 대부분 괜찮았던 덕분에, 나도 모르게 갖고 있던 중국 작품에 대한 선입견이 많이 사라졌다. 오히려 솔직한 표현과 감각적인 연출이 중국의 광활한 자연이나 도시 풍경과 만나 내겐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중국 영화를 한동안 보지 않았던 건, 아마 그러한 충격들로부터 잠시 벗어나고 싶었던 심정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경우엔 기본적인 줄거리라도 알고는 있었는데, <안녕, 내 고향>은 감독이 누군지도 몰랐고 무슨 내용을 다루는지도 몰랐다. 다행히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짧은 영상으로 감독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의 목소리를 통해 얻은 정보는 세 가지였다. 첫째, 세 명의 여성이 나온다는 것. 둘째, 그녀들의 독백으로 진행된다는 것. 셋째, 감독 자신이 영화에 등장한다는 것. 솔직히 세 번째 정보는 그다지 중요하진 않았다. 하지만 여성의 독백으로만 진행된다는 이야기는 다소 흥미로웠다. 러닝타임이 그렇게 길지 않아서 중간에 졸지 않고 집중해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좋은 예감이 들었다.
영화엔 세 명의 여성이 나온다. 이 세 명의 여성은 다른 세대의 사람들이고, 따라서 세 명의 이야기로 들을 수 있는 그들의 경험은 모두 상이하다. 물론 우리가 느끼기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그러니까 중국 여성들이 듣기엔 옆집 누구누구의 이야기인 것처럼 보편적인 이야기가 영화 내내 독백으로 펼쳐졌지만 아마 중국의 문화나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까지 큰 불편함은 느끼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꼭 그들의 문화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약간의 인내심을 가지고 영화를 봤다면 못 들어줄 이야기도 아니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산골에 사는 한 노년의 여성이 주인공이다. 그녀가 들려주는 첫 번째 이야기는 소재 자체가 마음이 아파서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는데, 바로 자식의 죽음이었다. 아이가 아파 먼길을 달려 의원을 찾았지만 결국 시기가 늦어 살릴 수 없었고 그렇게 무력하게 자식의 죽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산비탈을 달리는 차에 탄 입장에서 보이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꼭 아픈 아이를 데리고 열차를 타고 가는 엄마의 시점인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산전수전은 다 겪은 할머니가 후회도 미련도 남지 않은 목소리로 느긋하게 건네는 이야기인 것처럼 들렸지만, 그 내용은 참 무거웠다. 뒤이은 이야기들도 혹독한 노동과 가난을 견뎠던 날들에 대한 회고였다.
두 번째는 20대 여성의 이야기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무용 학원 선생님으로 살아가는 여성으로, 부푼 꿈을 안고 북경으로 올라왔지만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는 현실 앞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린 시절 북경에 올라와 기숙학원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춤을 배우며 친구를 만났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저를 찾아온 친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학원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모습까지도.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가 북경의 거대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펼쳐져 더욱 고독하게 느껴진다.
마지막 여성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이의 세대로, 80년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해 살아왔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왔던 부모 세대와 달리, 그녀는 대학에 들어가 지식을 탐구하고 미래를 꿈꾸었다. 그러다 노동자 신분의 한 남자와 만나게 되고 그와 사랑하게 된다. 결국 결혼하게 되지만 이후의 생활이 크게 나아지거나 부를 쌓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열심히 삶을 살아갔고 아이를 키워 자신처럼 대학에 보냈으며 삶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왔다. 어쩌면 가장 익숙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이야기였다.
한 가지 궁금증이 들 것 같다. 감독은 어디에 어떤 역할로 나오는가. 두 번째 이야기와 세 번째 이야기를 잇는 인물을 맡았다. 두 번째 여성의 남자 친구이자 세 번째 여성의 아들로 나온다. 큰 설명은 없고, 영화감독이라는 것 정도로만 나온다. 첫 번째 이야기와 세 번째 이야기는 부모 세대와 그 자식 세대로 연결되는 느낌이라 굳이 그런 역할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영화 후기를 찾아봤는데,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라 싫어하는 관객도 있던 것 같았다.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는 감상평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왔던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특히 외국 영화를 볼 때 관객에게 필요한 건 일종의 인내심이라고 생각한다. 들어보지도 못한 이야기를 스크린을 통해 마주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의 준비와 함께. 게다가 그렇게까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아니었다. 솔직히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고 와서 풀어냈어도 나는 재밌게 들을 수 있었을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주인공이 모두 여성이라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더 나와도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딱히 그런 느낌은 없었던 것 같다. 각기 다른 세대가 겪은 경험에 대한 내용이 주가 되었던 것 같아서, 그러한 점은 아쉽게 느껴졌다.
이제 보니 색감이 참 예쁘게 표현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산의 모습, 바람에 날리는 풀의 형상 같이 초록색을 표현했을 때나 북경이라는 도시의 고독한 모습을 잘 드러낸 상아색 아파트 따위가 아직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중국의 모습은 이렇듯 참 다양한 색감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였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