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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미 Sep 18. 2015

자넨 이름이 뭔가?

이름이 뭐예요? What's  your name?

예, 어머니~ 아가 이름은요?


임현승이요.


예? 임현성이요?


병원,  스튜디오.. 아기 이름으로 예약을 할 일들은 늘어만 가는데 전화기 너머의 상대방에게 이름을 전하기는 늘 어려운 과제다.


승리할 때 승! 이요~


결국 늘 마무리는 '승리'로 맺어진다.

전화통화가 잘 됐나 싶었는데 어느새 아기의 이름은 현순이가 되어있었다. ㅠㅠ

우리 아기의 법적 이름은 임현승.

태명은 끈끈이다.

집에서 아빠가 불러주는 이름은 끈이.

엄마가 부를 때는 승아.

4살 사촌누나는 아직 발음이 불명확해 싱아라고도 부른다.


옛 조상들이 살면서 이름을 그렇게나 다양하게 지었다던데 현재까지 우리 아기는 약 5개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사실 그 이름들이 탄생하기 까지는 더더욱 많은 이름들이 오르내렸다.


처음 임신을 했던 때 나는 태아의 이름을 '새싹'이라고 지었었다.

새싹이는 우리 부부에게 크나큰 행복을 몇 주간 안겨주곤 홀연히 떠나버렸다.

새싹이가 우리를 떠나고 있음을 직감하던 그 날, 새싹이가 갑자기 강해져 엄마 배를 움켜쥐길 바라는 마음에 이름을 '무쇠돌이'로 바꿔보기도 했지만 이미 아기는 저 하늘의 별이 되어 떠나버렸다.


첫 아기는 분명 여자아이 일거란 확신과 함께 태어나면 지어줄 이름으로 임연두, 그리고 둘째 아이인 남동생은 임초록이라 짓자던 그 약속도 새싹이가 떠나던 날 같이 보내주었다.


두 번째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 부부는 이름을 보다 신중하게 짓자고 했다.

엄마 배 속에서 절대 떨어지지 말라는 뜻의 '끈끈이'는 바로 그런 탄생 배경을 가진 다소 아픈 이름이다.


태명의 효과가 컸는지 끈끈이는 정말 끈질기게도 내게 붙어있었다. 유난스러울 만큼 심하고 길었던 입덧 중에 몇 번의 하혈을 겪으면서도 태아의 쿵쾅대는 심장소리는

엄니~ 나 끈끈이 아니겠어유~~

하는 것 마냥 강하게 울렸다.


출산예정일을 일주일이나 넘긴 것도 모자라 출산을 하던 그 순간에도 끈질기게 뱃속에서 나오지 않으려는 아기를 보며 간호사들은 한 마디씩 했다.


끈끈아 이제 그만 좀 나오자. 너 너무 끈끈하다야~


끈끈이가 세상에 나올 무렵부터 우린 아이의 법적 이름 짓기에 돌입했었다. 연두와 초록이는 아니었지만 뭔가 특별한 이름을 우리 손으로 직접 지어주고 싶었다.


양가 집안 모두 굳이 사주 철학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됨을 흔쾌히 허락하셨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나는 역사를 빛낸 인물들을 고르고 골랐다.


임담덕.

천하를 누릴 그 이름.

그러나 그는 너무 이른 나이에  운명하셨기에..


임춘추.

세계를 하나로 통합시킬 그 이름.

부모님들이 촌스럽다며 너무한 거 아니냐 평하셨다.


임유신.

말 목을 자를지언정 내 의지를 꺾지 않으리라!

나중에 친구들에게 '임신'이라 놀림 받을 거라며 남편이 'no'를 강하게 외쳤다.


그렇게 역사 속의 인물은 멀어지고 나는 다시금 예쁜 뜻의 이름들을 골똘히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드디어 내 마음에 쏙 들어온 이름.


임유담.(林由淡)
숲을 말미암아 맑은 영혼의 아기.




핏기 없는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와 신생아 집중치료실로 들어가면서 그간 나의 모든 로망들은 한 순간에 무너졌다.


오빠! 최대한 빨리 아기 출생신고 좀 해. 나 너무 무섭고 불안해서 안 되겠어.


혹시 나를 두고 떠나버리기라도 할까 봐 나는 아기의 출생신고를 몹시 서둘렀다.


이 세상에 이런 사람 있어요!


라고 표시라도 해둬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출생신고를 하려면 이름이 있어야 했다.


임유담으로 할게.


남편의 당연한 듯 한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괜찮을까?

아픈 아기를 보니 무엇 하나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혹시 내가 이름이라도 잘 못  지어서..


결국 불안한 마음에 기독교, 천주교 신자로만 구성된 양가 집안 사이에 사주철학의 힘을 빌리기로 동의를 받았다.


아기 이름 잘 짓는다는 철학관을 물색하고 10만 원의 대가를 지불한 뒤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 수 있는 이름을 지어달라 했다.


남편에게 그 간 내가 고민했던 모든 이름들의 리스트를 보내주며 가장 아기의 사주에 잘 맞는 걸로 골라오라 했지만 결국 우리 아기의 이름은 생각도 못 해본 '현승'이가 되어 돌아왔다.


남편이 작명소에 들고 갔으나 죄다 퇴짜 맞고 사라져버린 이름들. .

남들과는 다른 예쁜 이름을 우리 손으로 직접 지어주자던 그 로망은 두 평 남짓 한 골방에서 소리도 잘 못 알아듣는, 가슴엔 6.25 용사 훈장 배지를 가득 달고 계신 낯선 할아버지께서 빨간 양말을 신겨주라는 주문과 함께 지어주신 걸로  마무리되었다.


이름


우리 아들 만큼이나 우리 엄마도 이름엔 참 슬픈 사연이 서려있다.

엄마의 이름은 '*분'이다.

(엄마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본명 대신 가명 꽃분으로 칭해본다.)

꽃분에서 '분'은  나눌'分'자이다.

딸만 낳던 우리 외할머니에게 아들이 생기려면 '나눌 분'을 써야 한대서 엄마는 슬픈 이름 '꽃분'이가 되었다.

정말 이름 덕분인지 엄만 남동생을 얻었다.


엄만 지금도 어딜 가면 이름을 그다지 밝히고 싶지 않아하시는 눈치다.

외할머니는 그런 엄마를 위해 집에서만 부르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셨다.

'희선'

지금껏 내가 본 최고의 미인과 같은 이름이다.

엄만 아직도 개인정보가 명확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희선'이란 이름을 쓰신다.


이름이 뭐예요?

아들이나 엄마에 비하면 나는 부모의 로망이 그대로 담겨진 예쁜 이름을 얻은 편이다.


우리 엄마는 당시 강수연이란 배우의 미모에 감탄을 하며, 그녀가 출연 중이었던 드라마상의 이름을 고스란히 가져와 내게 붙여주셨다.

요즘으로 따지자면 배우 이민호가 '상속자들'이란 드라마에서 '김 탄'이란 역할을 맡은 것을 보고 너무 멋있다며 아들 이름을 ''으로 지은 격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로망 가득 담아지어준 이름을 우리 부모님은 내게 한 번도 불러주시지 않으셨다.

나는 평생을

꼬꼬, 꼬니, 꼬꼬샤, 꼬선생, 꼬야. .

로 불렸다.

부모님의 과한 사랑에 내 인생은 애칭만이 난무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사실 이름이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하다.

주민등록상에 올라간 이름 말고도 수없이 많은 이름을 갖고 살 텐데.

우리 조상들도 '호'를 지어 스스로를 원하는 대로 불리며 살지 않았는가?


우리 아기도 빨간 양말을 신으라 일러주신 그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뿐 아니라 엄마가 지어준 이름, 아빠가 지어준 이름 또 앞으로 스스로 원하는 이름을 갖고 그 이름에 어울리는 멋진 사람으로 살아갈 텐데.


현승이의 이름 앞에 어떤 '호'를 붙이면 어울릴까  생각해본다......


'이병' 임현승?!!


뭐...  그런 날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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