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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미 Jun 09. 2016

식당에서의 모유수유

노키즈존 이유의 3위

  아이가 6개월  무렵 나는 브런치를 통해 육아 감정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름 고급 지게도 육아 스트레스를 글로 해소하겠다는 나만의 의지이자 취미였는데, 어느 던 아이는 1818 한다는 18개월이 되었고 난 글쓰기는커녕 하루하루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기도 버거운 날들을 보내는 중이다. 물론 그래서 힘들어 죽겠지는 않다. 아들이 매일 보여주는 새로운 모습들이 예뻐서 숨 넘어갈 지경이라 다른 취미가 필요 없어졌을 뿐이니깐.


그런 내게 오늘 광속으로 글자판을 두드리게 한 사건이 있었으니...


식당에서의 모유수유,
노키즈존의 이유입니다.


  새벽부터 아침식사를 요구하던 아들이 아침이 되자 낮잠에 들어가는 요상한 패턴을 보인 덕분에 간만에 지역 '맘스'커뮤니티에 접속을 했다. 줄줄이 나열된 제목들을 무심히 스크롤하다 눈길을 멈추게 한 어느 글의 제목.

'노키즈존의 이유가 모유수유라네요.'

오잉? 이게 무슨 말인가..

글의 내용은 간단했다.

요즘 논란의 중심에 있는 '노키즈존'의 이유에서 3위를 당당하게 차지한 이유가 바로 '모유수유'라는 것이다.


순간 나는 그간 나의 공공장소 수유 현장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그때 나를 힐끗힐끗 보던 이들이 속으로 나를 벌레(맘충)라 칭했겠구나.

이미 도촬 당해서 어디선가 난도질당하고 있진 않겠지?


등등의 생각들이 서늘하게도 스쳐 지나쳐갔다.

물론 내가 공공장소 아무데서나 당당하게 젖가슴을 내고 "옛다! 내 아들 맘껏 먹어라"며 으름장을 피운건 당연히 아니다.

조심조심 눈치 살피며 최대한 아무것도 안 하는 척 자연스럽게 보이려 애쓰며 눈물겹게 수유를 했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해서는 안 되는,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물론 수유시설이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런 시설은 그야말로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나 존재할 뿐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먹을 수 있는 거라곤 내 젖에서 나오는 뽀얀 모유뿐인 아들이 배고프다 우는데 그냥 둘 수도 없지 않겠는가?


이 시점에서 많은 '공공장소에서 모유수유 반대자'들의 반론은 주로 이러하다.


"아줌마, 젖먹이 아이 데리고 굳이 왜 나와요. 집에 계시지. 꼭 이런 분들이 아기 데리고 밖에 나오더라."

"아기 젖먹일 시간 계산해서 그 시간 피해서 나와요. 왜 꼭 젖먹일 시간에 나와서 자랑스럽게 가슴을 열어요!"


허허.. 참. 그렇게들 나온다면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나.

사람이 살다 보면 나갈 일이 생기고, 아기가 로봇처럼 정해진, 배고픈 시간에만 젖을 찾는 게 아닌 것을.


당신들은 정해진 시간에만 배가 고프오?

우리 아들은 그 무렵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팠고, 배 안 고파도 심심하거나 잠이 오면 젖을 찾았소.

내가 식당에서 젖 찾는 아들 젖 안 물려서 아기가 계속 빽빽 울었다면 당신들은 더 짜증 났을 텐데..


라고 나도 항변해 보고 싶지만

어쨌든 어쨌든 그들에게 난 엄마 벌레, 맘충이 일뿐일 테다.

풍속화 중에는 저렇게 공개 된 장소에서 모유수유를 하는 어미의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조선시대 풍속화를 보면 젖먹이 아기를 등에 업고 새참을 머리에 지고 온 아낙이 식사 중인 남정네들 옆에서 무심하게 젖을 먹이는 장면들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길에서 젖을 먹이며 걸어가는 모습들이 담긴 옛 그림들도 찾아보면 꽤 많다.

조선시대 어미들도 자식을 배 불리는 일에는 부끄러움이 없었고, 주변인들도 그 모습에 손가락질 하진 않았던 것 같다.(내가 역사를 잘 아는 건 아니기에 당시의 상황에 대해 확신하지는 못 하지만..ㅋ)


  옆 테이블 총각이 눈 둘 곳을 못 찾아 불편해 함에 미안한 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미안하기에 최대한 가렸었고, 또 최대한 빨리 상황을 종료하고자 노력했었다.


  지금이야 아들이 '찌찌 빠빠이'를 외치고 식당에 앉아서 저도 돈가스 먹겠다며 촵촵대는 시기인지라 더 이상 나는 공공장소에서 젖을 꺼내는 일은 없다만...


  모유수유를 이유로 노키즈존을 설치한다니..

괜히 내가 비도덕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아져 기분이 썩 좋지가 않다.


그래도

언젠가 내 옆에 앉은 아기 엄마가 조심히 수유를 시도한다면 미소로 말해주고 싶다.


편히 하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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