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취미에 대한 기쁨과 힘듦에 대하여
마이너한 이 취미를 즐긴 지 어느 새 10년의 세월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언제 그렇게 시간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난 계속 나이를 먹어가고 있고, 우리 집에는 그게 계속 쌓여가고 있던 것들은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
그게 뭐냐고? 그건 바로 보드게임이다.
솔직히 보드게임은 너무나도 마이너한 취미 중 하나다. 진짜 마이너해서 그 마이너함이 말도 못 하는 취미. 보통 사람들은 보드게임이 뭔지도 모르는 경우가 너무 많고! 아니면 그 대표적인 4개의 게임을 얘기하곤 한다. 그렇다. 다들 짐작하셨겠지. 할리갈리, 루미큐브, 젠가 그리고 부루마불. 거기서 좀 더 나아가면 스플렌더나 카탄 정도. 것도 아니라면 아이들과 하기 위해 배우는 유아용 보드게임 얘기를 하시는 분들도 있다. 즉, 교구용 같은 거?(그래도 예전보다는 보드게임의 저변이 많이 넓혀진 셈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긍정적으로.)
그래서 가끔 의외의 장소에서, 뜻밖에 같은 취미를 가진, 정말 바닷속 깊은 곳에 계시거나 우주 저 멀리까지 나가신 분을 뵐 때면 그 반가움은 배로 커질 수밖에 없다.
보드게임은 정말 마이너 하다. 자꾸 마이너 하다고 해서 지겹다고 할 수 있는데 정말 이 단어가 많은 걸 표현해 주는 게 이 취미이다.
나는 보드게임이라는 취미를 영업하기 위해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손을 뻗곤 했다. 그러나 10명한테 영업하면 9명이 싫다고 하는 게 바로 이 취미였다. 그만큼 장벽이 많다는 소리다.
그런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 취미의 아주 큰 특수성, 바로 룰(규칙) 때문이다. 노는데 왜 룰 설명을 들어야 하느냐부터 시작해, 룰 설명이 5분 이상 넘어가면 얼굴 표정이 이상해지고 10분 정도 되면 너무 길다고 안 한다는 사람들도 여럿 보았다. 룰 설명을 다 끝냈는데 그때 게임에서 빠지겠다는 사람도 있고 게임에 들어가자 이해가 안 간다며 빠지는 사람들도 있었을 정도! 그래서 이 '룰'이라는 것 자체가 보드게임이 널리 알려지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 룰이 더 큰 걸림돌이 되는 이유는 룰을 모르면 아예 게임을 돌릴 수 없다 보니, 그 룰을 아는 사람을 기다리게 된다는 것이다! 룰마('룰 마스터'의 준말로 어떤 게임의 룰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한 명이 모임 안에서 좀 클 때까지 꽤 시간이 소요되다 보니 더욱더 이런 부분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또한 보드게임에는 웨이트라는 게 있다. 쉽게 말하자면 1~5까지 유저들이 보드게임을 해보고 매기는 보드게임의 난이도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5로 갈수록 어렵고 1로 갈수록 쉽다. 그런데 5로 갈수록 이 룰 설명은 어째 점점 더 길어지고 복잡해진다. 3점 대 이상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게임들은 룰 설명만 2~30분 정도 걸리고 4점 대 이상의 게임들에서는 룰 설명만 1시간 정도 걸리는 것들도 수두룩하다. 아마 보드게임을 안 하는 분들은 상상도 못 하시겠지만.
그런데 여기에 세팅의 압박이 덮쳐오나니!!! 할리갈리나 루미큐브 같이 쉬운 게임들은 세팅을 하는 게 어렵지 않다. 아니, 세팅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되나? 그러나 보드게임이 어려워질수록 세팅의 압박은 그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 가끔 그나마 간단한 것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에 비해서 간단한 거니까 말이다.
이 디지털이 깔린, 빠릿빠릿한 세상에서 아날로그적인 보드게임이 인기가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보드게임은 나에게 참 많은 기쁨과 행복과 즐거움을 주었고 지금도 주고 있다. 보드게임에는 정말 많은 테마와 메커니즘과 보람참이 있기 때문이리라.
우선 보드게임은 전 세계 통틀어 20만 개가 넘는다. 그런 만큼 너무나도 많은 테마들로 보드게임이 나온다. 던전 탐사나 유적 탐사는 물론 동물원을 꾸미고 화성을 테라포밍하고 카페를 운영하고 우주와 바다를 탐사하는 등 정말 많은 테마들이 있다.
특이한 테마를 꼽아보자면 대부호 삼촌이 죽으면서 정해진 돈을 제일 먼저 파산할 때까지 쓰는 한 놈에게만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테마, 옛날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자신의 아들, 딸을 다른 가문과 결혼시켜 힘을 키우는 테마, 몰락한 가문을 살리기 위해 부지를 꾸미고 손님을 초대하는 테마, 공룡들이 사는 동물원을 꾸미는 테마 등 정말 쉴 새 없이 많은 테마들이 쏟아져 나온다.
게다가 메커니즘 익히기 또한 정말 재미있는 것 중에 하나다. 보드게임에 적용되는 메커니즘들은 무려 200가지가 넘고 한 게임에는 많은 메커니즘들이 한꺼번에 같이 들어가게 된다. 옛날에는 딱 몇 개의 메커니즘만 넣어서 게임을 만들었다면 요즈음에는 그렇지 않은 게 트렌드다. 또한 기존의 메커니즘을 좀 변형해서 적용한 보드게임을 보노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된다. 감탄할 일이 많기도 하지.
그리고 새로운 보드게임을 배우면서 해피해지는 나 자신을 느낄 때면 이게 행복인가 싶기도 하다. 내가 모르는 세계를 하나 더 배우는 느낌이 정말 좋다. 너무나도 마이너 하지만 정말 작고 소듕한 내 취미, 바로 보드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