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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로지 Feb 20. 2022

자연분만? 응급수술?

역시 계획대로 되지 않은 긴 출산 후기 글

(이어서) 

가족분만실로 들어가기 전,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커튼 밖에서 당직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 분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오늘 응급수술 준비해야 될 수도 있겠는데?'

'에이, 안돼요 선생님. 오늘 저희 인원이 별로 없어요;;'

'없긴 머가 없어~ 이 정도면 충분하지.'


내... 얘기겠지...? ㅠㅠ... 무언가 두려움이 엄습하면서 정말 내가 수술이라는 것을 하게 될 수 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수술이나 깁스 등, 크게 아픈 경험이 없어서 더 무섭게 느껴졌을 수 있겠다. 


드디어 가족분만실로 들어갔다. 분만실은 1인 병실 느낌의 공간이었다. 분만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는 상황이 있을 수 있어서 보호자의 휴식을 위한 공간도 충분히 있었고, 진짜 분만이 시작되면 의료진들이 들어와서 분만을 진행할 수 있었다. 


'오, 드디어 출산 후기 영상에서 많이 보던 곳에 들어왔다...!' 


분만이 진행되면서 보니, 이 정신에 (예비 아빠 엄마 모두 포함, 특히 초산) 영상을 찍고 멘트를 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프로 정신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아까 밖에서 나보다는 조금 더 기록정신이 투철한 남편은 내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브이를 해 보라는 강력한 요구와 함께... 


진통의 강도는 점점 올라가는데, 아이가 있는 곳이 계속 위 쪽이었다. 위 쪽 위쪽에서 느껴졌다 - 갈빗대 사이. 진통이 진행되면서 이제 몇 시간 안쪽이면 내려와서 세상 구경을 해야 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어서 인지 진통이 올 때마다 더 위로 도망(?) 가는 느낌이었다. 


우선 자연분만에 대비하기 위해, 잠시나마 천국을 선사해 준다는 무통주사를 맞기 위한 관 삽입을 허리에 먼저 했다. 아, 이제 본격적으로 몸에 주사를 꼽고, 시술들을 진행하는구나...! 분명히 마음먹고 분만실에 들어왔다고, 그리고 임신 후기에는 언제 이 날, 이 순간이 올까 고대했던 것 같은데 실제로 분만이 진행되며 여러 가지가 이루어지니 정신이 없고 무서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다행히 병원은 마취 선생님이 24시간 상주하는 곳이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여자 선생님이 부드러운 말투로 무통주사 삽입관 준비를 해 주시고, 진통이 오는 중간에는 기다려 주시면서 척추에 관을 삽입하는 - 많이 떨리는 과정을 안전하게 도와주셨다. 


그때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던 것 같다. 벌써 병원에 온 지 몇 시간이 지났고 진통이 시작되어 침대에 누워있었던 시점부터는 5시간 정도가 지나있었다. 중간에 당직 선생님이 오셔서 확인해 보시고는, 또다시 이야기하셨다 - 현재 진행이 나쁘지는 않지만 여전히 아이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커서 무리하게 자연분만 진행을 하는 게 좀 어렵지 않겠냐...


나는 강력하게 자연분만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그럼 수술 진행할게요!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수술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아직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출산하는 누구나 둘 중의 하나는 해야 하는, 자연분만 혹은 제왕절개 수술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일상적으로 들렸다. 그런데 지금 당장 나에게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결정들을 해야 하니 단어를 입을 뱉는 것조차도 두려운 일이 된 것이다. 


사실, 당직 선생님이 딱 합시다! 하고 말씀해 주시길 바랬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위중한 상황은 아니었고, 산모와 아이의 더 안전한 분만의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온전히 당사자와 보호자의 몫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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