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 생활의 시작과 끝

by 한 로지

우간다... 아프리카 어디 즈음에 있는 곳 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나와 가까운 나라가 될 줄 몰랐다.

우간다에서 6개월은 참 다이내믹하면서도, 사무치게 외로웠고, 새로운 경험들을 하였지만, 정체되어있다고 느꼈다. 한국에서 느꼈던 일상에 감사하면서도, 이 순간 이 곳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도 경이로웠다.


(참으로... 짬뽕될 수 있는 온갖 것들이 짬뽕이 된 느낌이랄까...!)

IMG_1232[4].jpg NGO사업을 하며 만난 학교의 학생들

지금 글을 쓰는 시점으로도 이미 10년 전이니, 아마 지금의 우간다는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내 기억 속에 남아있던 장면들을 회상하며 글을 쓴다.

나는 난민 텐트 같은 흙바닥 천막 같은 곳에서 생활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정보 하나 정확히 알지 못하고 용감하게 어디든 가겠습니다! 하는 용기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숙소는 아주 말끔하게 지어진 하얀 다세대 주택이었고, 2 가구가 붙어 있는 이 집은 외부의 침입(?)으로 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경비원까지 있었다. 나를 마중 나온 팀장님은 하얀 SUV를 몰고 오셨고, 나는 서울 자취방 보다 훨씬 깔끔하고 예쁜 투 룸 집에서 한 방을 배정받아 짐을 풀었다. 정말 우연도 이런 기막힌 우연이 있을까. 아무런 연관이 없을 것 같았던 우리 둘 사이에 공통으로 아는 사람이 존재했다. 같은 성당 선배가 우간다로 봉사활동을 온 적 이 있었는데, 그때 이 팀장님과 인연이 닿아 누나, 동생 하며 잘 지냈고, 다른 한인 가정들과도 좋은 인연을 잘 쌓고 돌아갔단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나고, 내가 여기로 파견을 온 것이다.


아주 좋은 스타트를 할 줄 알았던 우간다 생활을 생각만큼 순탄치 않았다. 우선, 내가 거의 사회생활이 전무한 상태에서 파견을 왔기 때문에, 기본적인 업무에서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예를 들면 기본적인 업무 문서 작성이나 커뮤니케이션 방법도 나에게는 모두 생소했다. 현지 팀장님은 아주 황당했으리라. 본인이 혼자 타지에서 고생고생하고 계시다가 드디어 도와줄 사람이 한 명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하나부터 열 까지 가르치고 검사해 줘야 하는 아주 신입 상태였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까지, 나와 팀장님은 누구의 잘못이 아닌 상황으로 마음 아프고 힘든 날들을 보내야 했다.


또, 우간다에서 현실적인 여러 제약이 나를 더 옥죄었다. 우선, 외국인 신분으로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여느 가난한 나라에서 그러하듯, 외국인은 '돈'으로 인식되고, 또 상황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빠질 경우가 많았다. 차도 없고, 대중교통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나라에서 현지인들과 흥정하여 오토바이를 타고, 현지인들이 타는 아주 낡은 승합차를 버스 삼아 탄다는 것은 아직 이 곳에 적응하기도 벅찬 나에게 큰 장벽이었다. 친구도, 지인도 없는 이 곳에서 움직이는 자유와 개인 공간마저 (방 한 칸이 있었지만...) 허락되지 않은 생활은 큰 세상을 보고 싶다고 한국을 뛰쳐나온 나에게 너무 가혹한 현실이었다.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 단 한 번도 부모님께 힘들다는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 서울살이, 해외살이를 했던 시간 동안,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 드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우간다에서 해외전화 카드를 사서 엄마에게 펑펑 울며 전화를 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힘들다고, 외롭다고, 그리고 팀장님과의 관계가 너무 어렵다고... 지구 반대편에서 딸의 울음 섞인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시간이 지나면, 어려운 기억은 보통 잊히고, 좋았던 기억만 남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그리 힘들었는지는 많이 흐려졌지만, 지금도 우간다 생활을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콕콕하고 아픈 느낌이다. 하지만, 분명 많은 따뜻하고 좋은 기억을 주기도 한 경험.


사실, 우간다에서 반년이, 내 커리어에 큰 영향을 끼치거나, 변화를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생의 의미 있는 한 페이지를 빼곡히 (넘치도록) 채워가기 충분한 이야기와 장면들을 채워주었다.


우간다에 있었던 나, 수고했고 장하다고 토닥토닥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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