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나 Nov 25. 2021

성적매력과 색즉시공

반야심경에 나온 '색즉시공'을 이런 용도로 해석하여도 될 지 심히 불경스럽지만 그냥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이러한 생각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보면, 특히 처음 만나는 남자들은

" 남자친구 많을 것 같은데요?"

하며 운을 띄우고 간을 본다.

" 없어요" 하자니 궁색해 보이고

" 있어요" 하자니 방어막 치는 것 같고 그렇다.

그래서 절충으로 나오는 말이

"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죠"

남자들은 필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것이지 뭐가 그리 애매해?'

그러나, 내가 말머리를 흐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


 있다고 생각하는데 돌아서면 없고

 없다고 생각하는데 훅 들어오기도 한다.


이것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아닌가.

나는 모태솔로 타입은 아니다.

누가보면 바람둥이 타입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내가 남자들을 갈아치우거나 '어장관리'하듯 여러 명을 키우고 있지는 않다.

요즘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편의점에서 맥주 사는 것 만큼이나 흔한 일이다 보니

잘 만나고 있던 사이 인데도 어느 날 연락이 되지 않으면 그냥 떠나간 것이고

전혀 잊고 지내던 사이 인데도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을 해오는 사람이 있다.

 

나는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모든 관계에는 시절, 즉 그 때가 정해져 있다는 것으로

그 때가 오지 않으면 아무리 애써도 인연이 되지 않고

그 때가 오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꽃이 피는 개화시기가 저마다 다르듯이

남들과 앞다투어 경쟁하지 않고 자신의 때를 알고 꽃을 피우는 것이 관계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어느 때가 오면 자신이 물러날 때를 알고 내려와야하는 것도 인연의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과 인연이 다하여 헤어지게 되니 이렇게 스스로 위안하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게 한다.

'회자정리' 는 진리인 것이다.

 

어차피 헤어질 사람을 왜 만나는가 하는 회의를 할수도 있다.

끝이 보이는 사랑을 굳이 마다하지 않고 뛰어드는 경우이다.

하지만 인생의 한 순간이라도 꽃처럼 피워낼 수 있다면 아름답지 않을까.


꽃이 시들어버리는 것을 염려하면 결코 꽃은 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이 변한는 진리 뿐임을 생각한다.

내가 꽃을 가지려고 할 때 꽃은 이내 시들게 된다.

자연의 큰 흐름에 생명을 내맡길 때 그 꽃은 자기 생을 살 수 있는 법인데

사람의 욕심이 소유하고자 꽃을 꺾어 꽃병이라는 병실에 가두게 된다.

그리고 이내 안도감을 가지며 관심을 거둔다.


 그 사람은 나를 예쁘게 여겨 곁에 두고자 하였으나 결국 자신의  공간과 무지 속에 나를 가두게 된다.

사랑은 햇빛을 주고 물을 주어야 하는 보살핌에 있으나 그 책임을 망각한 채 자신이 필요할 때만 보려고 한다.

그 사이 꽃은 목마름에 말라버리고 자신의 빛깔을 서서히 잃어간다.


사랑을 하면서도 공허해지는 것이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마음이 텅 비어버리게 되는 색즉시공.

내 존재를 비웠으니 그 만큼의 허공이 생겨버린 것이다.

결국 외롭고 싶지 않아 선택한 연애는

그 만큼의 구멍을 내고 기어이 떠난다.


만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 다음부터 불안은 시작된다.

어떻게 관계를 이어나가야 하는지 마음 속이 답답하다.

문자를 기다리는 것도 힘들고 먼저 문자를 하자니 그것도 뭐라고 해야될 지 방법을 모르겠다.

연애 또한 버티는 힘이 필요하다. 기다림도 버틸 수 있는 강한 정신력과 체력의 싸움이다.

남자들은 항상 여자가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났을때 보여줬던 감정의 연속선에서 그녀는 대기 중이고 다시 만나면 다시 그 감정선을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그 시간의 틈새 속에 얼마나 많은 감정들을 일으키고 지워내고 부정하는지 모른다. 

내가 생각한 문자의 유효시간이 지났다. 

상대에게 아무런 언질없이 연락처를 차단해버린다. 

단추 하나면 간편하게 차단할 수 있는 것이 요즘의 이성관계이다.

더이상 답이 없는 문자를 상대방도 알아차리며 그 의미를 이해한다.

누군가를 차단한다는 것은 사실 감정을 차단한다는 것을 말한다.

더이상 고민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문자를 기다리고 상대를 생각하는 그 시간을 그만두겠다는 것이다.

헤어지기로부터 마음먹은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더이상 고민할 일이 없는 것이다. 

만남과 만남의 사이, 그 경계가 가장 힘들었던 것이다.

만남과 더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이별 사이는 경계가 아닌 멈춤이다. 

오늘도 갈 곳 잃은 말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한다.

작가의 이전글 유럽 할인항공권 싸게 get 하는 방법(편도 34만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