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나 Apr 02. 2022

하나의 영혼, 아니마 문디

아니마 문디는 하나의 정신을 뜻한다.


유구한 우주의 운행 속에서 영혼은 세포분열을 하듯이 쪼개졌고 흩어진 각각의 영혼은 유리조각의 파편처럼 흩어졌다.

아무리 작은 조각일지라도 그것은 물질의 본성을 투명하게 유지한다.

각각의 반짝이는 빛, 모든 영혼에는 위대한 정신의 그림자가 모두 들어가 있다.

인간의 잠재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초자아 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일상 속에서 이러한 자아를 느끼지 못한다.

이미 사회적인 역할극 속에 고정된 정체성만을 자아라고 인식한다.

기업의 직원으로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의 고정된 역할이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페르소나를 벗어나 자신을 생각해본 적 있는가.

사회적인 가면과 실제 자신과의 차이, 그 간극이 클수록 인간은 불행해지기 마련이다.

자유로운 영혼인 자아와 강요된 정체성 사이에서 끊임없는 갈등과 분열이 일어난다.

내가 나로 존재하지 못한 채 내가 타자화된 의식의 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사회적인 강요는 영혼을 멍들게 한다. 자아를 타아의 관점으로 억압한다.

 사회적인 자아는 ego 에고 이다.

겉으로 보이는 페르소나 이다.

내면의 진실된 자아는 self 이다.

사회의 모든 가치 체계 속에서 에고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열심히 욕망을 추구하지만 언제나 실패한다.

비교와 경쟁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는 필연적으로  분열시키고 항상 대립시키고 양극성을 추구한다.

마치 정치와 언론의 속성이 그러하듯이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갈라치고 대결구도로 만든다.

나와 그들의 경계를 정한다.

내편과 타인을 한계 짓는다.

우주는 모든 것이 소통하며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세상이다.

숲을 상상하라.

나무들이 홀로 서있는 것 같지만 땅 속의 뿌리는 얽혀있으며 흙 속의 균류는 이러한 생태계의 교신을 담당하며 서로의 상생을 돕는다.

생태계는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없다면 멸망한다.

 
내면의 진실된 자아는 우주적인 영혼의 파편이다.

그 안에는 모든 신성한 능력이 이미 존재한다.

가능태로 존재하는 세상이 바로 양자역학의 확률구름이다.

원자의 공간은 99%가 비어있다.

이것이 바로 비확정성의 가능태의 세상이다.

무엇도 정해지지 않았다.

관찰자의 의식이 그것을 결정시켜 물질세계의 현실로 구현된다.

 
인간은 공기와의 호흡을 통하여 원소를 교환한다.

들숨과 날숨을 통해 세상의 원자를 끌여들여 세포를 바꾸고 죽은 세포를 방출한다.

인간의 몸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피부는 28일을 주기로  세포가 교체되고 간이나 장기 등의 조직도 몇 달이면 모든 세포가 바뀐다.

심지어 유전자도 바뀔 수 있음을 발견해 생물학자들은

그것을 후성유전자라고 이름 붙였다.

당신이 무엇을 의식하느냐에 따라 세상은 그것을 당신에게 거울처럼 비춰 보여준다.

텔레비젼의 안테나가 그 주파수에 맞는 이미지들을 화면에 재생하듯이 
내가 불러들여온 이미지의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게임과 같다.

미친 듯이 실전처럼 싸우고 있지만 사실은 게임에 불과한 것이다.

가상현실 게임 처럼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것들을 실제로 상상하며 체험한다.

꿈을 꾼 것인가 꿈에서 깨어난 것인가.

호접몽 처럼

내가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꾸는 꿈인가.

 
자연의 속성은 순환이다.

대기의 습도가 구름을 만들고 다시 비가 되어 대지에 내리듯이 모든 것이 커다란 흐름 속에 순환한다.

모든 것이 순환되는 원은 나누어지지 않는다.

양극은 어느 곳을 기준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생기는 것일 뿐이다.

이쪽을 기준으로 보면 위와 아래가 나누어 지지만 그것은 제한적인 관점일 뿐이다.

원에는 그러한 위치의 기준이  없다.


어디서 보나 원은 시작점이면서 끝나는 점이다.

나로 시작된 것은 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순환 속에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나와 남을 구분하여 생각하는 것이 모순이다.

모든 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그것이 카르마 이고 업보이다.

나와 남들은 연결되어 있기에 언젠가는 그것이 나에게 똑같이 벌어진다.

우주는 내가 내보낸 것들을 다시 돌려보내 주기 때문이다.

 초첨을 바꾸어야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원하는 것으로 부터 자유로워져라

원하지 않는 것으부터 자유로워져라

그저 세상의 흐름에 나자신을 맡기고 나 라는 존재에 초점을 맞춘다

내 존재의 온전함에 초점을 맞추고 자연이 완전한 일체를 이루듯 내 안의 잠재능력을 믿는다.

생각이 아닌 의식에 의지하라

직관은 이성이 아닌 감정이 만들어내는 신호이다.

감각을 예리하게 지켜보라

자연 속에서 생명의 기운을 느끼고 위대한 생명에 감사하고 살아있음에 축복하고 긍정적 시선으로 본다.

신성은 어디에나 깃들어 있으며


모든 것은 온전히 창조되어있다.

진화라는 관점에서도 마찬가지 이다

빅뱅의 방향이 어긋났다면 우주는 벌써 폭발하였을 것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유전자이며 진화의 역사이다.

내 자신이 잘 살아남는 방향으로 결정되어진 것이 생명의 비밀이다.

그 외의 것들은 그저 재미있게 살기 위한 요소에 불과하지 않는다.

삶을 즐겨라, 어떤 영화에도 플롯이 있다.

역경을 이겨내는 자의 스토리가 바로 시나리오 이다.

금수저로 태어나 그대로 행운을 이어나가며 순조롭게 살아가는 영화의 시나리오 따위는 없다.

생각만 해도 지루하지 않는가.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라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영화의 감독이 되어라.

사람들은 소외된 자가 영웅이 되는 스토리에 열광한다.

아무리 폭력배, 강도라 할지라도 약자의 편에 서서 응원한다.

그러한 약자가 강자가 되는 세상이 우리가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잘난척 하지 마라,

세상의 주류는 빈정 상하는 대상이 될 뿐이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우리는 미션을 향해 쩍이는 별을 찾는다.

위대한 여정, 길의 끝에서 한번씩은 그 빛을 발견한다.

the encounter

거부하기 힘든 밝음이 모든 순간을 순백으로 백지화하는 영혼의 표백 같은 순간

the moment of truth

삶의 본질은 사랑이다.

세상에 흩어지 조각에는 각각의 영혼이 머물게 되었고 그 조각을 이어붙이며 드디어 완성된 영혼의 그림이 보인다.

one soul


인간은 미생이다.

태어났으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이다.

진정한 창조는 생명 이후의 깨달음이다.

애벌레의 껍질을 벗고 나서야 화려한 나비의 날개짓을 할 수 있다.

 ALL IS UNITED

하나의 영혼, 우리는 우주적인 소통을 한다.

 억광년이나 걸리는 거리에서도  아원자의 움직임은

평행하다.

작가의 이전글 가성비에 대한 오해와 진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