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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임 Jan 10. 2021

내일은 싫지만, 봄이 오면 좋겠습니다.

2021.01.10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일요일 오후, 엄마랑 통화를 했다. 평소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무심코 툭 던지듯 내뱉은 말. "음.. 내일이 오는 건 너무 싫지만, 그래도 봄이 얼른 왔으면 좋겠어." 요즘 나의 마음은 이렇다. 지난 11월 급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재취업에 성공했다. 이미 준비하는 과정일 때부터 이것이 내게 새로운 희망의 문을 열어주는 천국 일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또 다른 지옥문을 여는 행위임을 알고 있었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온 힘을 다해 내가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지, 능력 있는 사람인지, 열정적인 사람 인지를 보여줘야 했고 그렇게 2020년 11월 2일부터 나는 서울에서 첫 출근을 했다. 


  기대와 불안과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마음을 안고 지난 2개월이 넘는 시간을 달려왔다. 일을 하고 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이 회사가 얼마나 미래 가치가 있는지, 나에게 도움이 되는 곳인지 또는 내가 이 회사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단 한 가지도 정확하게 정리되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한동안은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의심과 자격지심으로 밤낮 괴로워하며 잠 못 이루던 날들도 있었다.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것들, 하나도 분명한 것이 없는 삶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와중에 새해가 왔다. 아직도 나는 당장 내일의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지 또는 어떤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될지 예측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한 달 뒤의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내게 "넌 어쩜 그렇게 마음의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니. 대체 작년 한 해 동안 네가 바꾼 계획과 다짐들이 몇 개인 줄 아니?"라고 비난했지만, 나는 그것이 참으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수없이 많은 생각과 계획을 바꾼 이유는 세상이 그만큼 빠른 속도로 하루가 다르게 변했기 때문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세상이란 파도에 맞는 자세를 취해야 했다.


  어제는 우연히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봤다. 많은 사람들이 추천했던 드라마 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많이 믿고 따르던 전 직장 사수의 인생 드라마였기 때문에 언젠가 한번 꼭 봐야지 생각했던 터였다. 과연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럴 만한 작품이었고 잔잔하고 묵직한 이야기들이 참 좋았다. 드라마 ost가 너무 좋아서 찾아보았더니 노래 제목이 '어른' 이던데 정말이지 찰떡같은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삶이 무엇이고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른'이란 무엇 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선균의 마지막 대사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는가?" 이 말에 눈물이 났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른 같지 않은 어른을 너무 많이 만났다. 한 인간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지만 어른의 행동이라고 하기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 무엇이 맞는지 혼란스러워하던 내게 나의 사수는 좋은 본보기가 되는 어른이었다. 그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겁고 멋있었는지 한 번도 제대로 이야기한 적은 없었지만 정말 마음을 다해 오래도록 따르고 싶은 분이었다. 나도 어른이 되고 싶다.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지안의 아저씨처럼, 나의 전 사수처럼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고 싶다. 아니, 거창하게 본보기 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나란 사람을 통해서 아직은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다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숨 통 트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서울에 오고 난 후 이곳에서는 낙엽이 흔들리다가 모든 잎들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 잎들이 모두 어딘가로 사라졌고 바람이 불고 눈이 내렸다. 앙상해진 나뭇가지에 소복이 가지마다 견딜 수 있는 정도의 눈이 쌓인 모습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시간의 힘에 대한 생각을 했다. 놀랍게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을 하든 시간은 언제나처럼 멈춤 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니까, 내일이 오는 것이 너무나 두렵지만 그래도 언젠가 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올 것임을 믿는다. 이곳에서 얼마나 버텨야 할지 또는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지 아니면 잠시 쉬어가도 괜찮을지 정말로 다음 주 중에는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봄, 봄이 올 때 즈음엔 나도 편안함에 이를 수 있기를. 새로운 생명이 움트고 생기가 도는 파릇파릇하고 싱그러운 그 봄에 나를 보내기 위해서 내일이 싫지만 내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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