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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eze Dec 06. 2021

오히려 좋아, 한치 앞을 모르는 인생이라서

(feat.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얼마 전 회사 동료로부터 나를 제일 잘 표현하는 노래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나를 제일 잘 표현하는 노래라니… 쉬워보이지만 의외로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결국 그 자리에서 적당한 노래를 생각해내지 못한 나는,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을 더 고민했다. 좋아하는 노래는 많지만 그만큼 가사를 귀 기울여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나를 잘 표현할 수 있으려면 어떤 가사여야 하지? 막상 생각해내려고 하니 더 떠오르지 않는 것만 같은 답답함에 나는 그날로 더 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그렇게 며칠이 흐른 뒤, 음악을 듣다가 불현듯 내가 최근 즐겨듣던 노래 한 곡이 귀에 와서 꽃혔고, 가사를 들으면서 "찾았다! 내 인생곡!"을 속으로 외쳤다. 내 인생곡이 될 영광의 노래는 바로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었다. 이 노래는 1998년에 발매되어 20년도 더 지난 노래이기에 사실 강산에 버전으로는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었다. 다만 최근 '싱어게인'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너드라는 가수가 커버한 버전을 듣고 한동안 이 노래에 푹 빠져 *튜브에서 1시간 반복재생 영상을 틀어놓고 노동요 삼아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싱어게인 26호 가수 '너드'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여러 갈래길 중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 가고 있는/

돌아서 갈 수 밖에 없는 꼬부라진 길 일지라도/

딱딱해지는 발바닥 걸어 걸어 걸어 가다보면/

저 넓은 꽃밭에 누워서 난 쉴 수 있겠지.


그래도 나에겐 너무나도 많은 축복이란걸 알아 /

수없이 많은 걸어 가야할 내 앞길이 있지 않나 /

그래 다시 가다보면 걸어 걸어 걸어 가다보면 /

어느날 그 모든 일들을 감사해 하겠지.


위 구절은 노래가사 중에서도 마음에 가장 와 닿았던 구절이다. 한 치 앞의 미래도 내다보진 못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또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는 연어들의 모습이 내가 추구하는 인생관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평소에도 나는 미래 계획이나 목표를 정말 촘촘히 세우는 것을 별로 즐거워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물론 귀찮아서도 있겠지만 세워놓은 계획대로 흘러가는 내 인생이 오히려 재미없게 느껴져서이기도 하다. 또 지금 당장 미래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지 않더라도, '지금 나한테 주어진 기회와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다가오는 기회들을 하나씩 잡아나가다보면 언젠가 나는 충분히 멋진 사람이 되어 있을거야!'라는 근거없는 확신이 있기도 하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처음 인턴 면접을 보러갔을 때, 내가 지원했던 포지션은 '광고 운영'이었다. 사실, 그 당시의 나는 나름대로 내가 '광고운영'과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열정적인 마인드로 2시간 가량 면접을 보고 나왔는데, 그 다음 날 바로 인사팀에서 전화가 왔다. "00님, 축하드려요! 팀에서 00님과 함께 일하고 싶다고 하세요. 그런데 00님이 영업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셔서요. 포지션을 운영이 아닌 영업으로 제안주셨는데 괜찮으실까요?". 전화기 너머 들리는 축하한다는 말에 처음에는 일단 감사하다는 말부터 나왔지만, 생각지도 못한 '영업'이라는 단어에 순간 멈칫했다.


영업이라, 마케팅과 기획/운영 직무만 열심히 지원하던 나에게 영업은 생각해보지조차 못한 직무였다. '사람을 만나길 좋아하는 것은 맞지만 친해지는데에는 시간이 좀 걸리기도 하고, 과연 내가 영업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일단 "영업 포지션도 괜찮아요! 정확히 어떤 업무인지 알 수 있게 직무설명을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인사 담당자분에게 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나는 영업으로 첫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모로 가더라도 영업으로 일단 커리어를 시작한 덕분에,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전단지도 거절하기 어려워하던 나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고객에게 단호하게 거절하는 법을 배웠고,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아이스 브레이킹은 어떻게 하면 좋은지, 상대에게 신뢰감을 주려면 어떤 화법을 써야 하는지도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이후 회사의 영업 프로세스가 점점 고도화되면서 이제 회사에 영업보다 한단계 앞을 관리해줄 b2b 마케팅이 필요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회사에 그 일을 할 사람이 없었고, 나의 관심분야와도 일치했기 때문에 내가 b2b 마케터까지 겸하게 되었고, 현재는 아예 영업에서 b2b 마케터로 포지션이 전환되었다. 처음부터 영업이라는 직무를 원했던 건 아니었지만,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우선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며 우연히 생기는 기회들을 하나씩 잡아두다보니 원래 하고 싶었던 마케터 포지션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별거 아닌 이야기같지만 '마케터'나 '기획/운영'이라는 직무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계획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였기에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준다.'는 말이 있다. 인생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는 인생에 좌절하기 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그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다보면 원하던 목적지에 다른 방법으로 닿을 수 있다는 말이다. 대신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잘못 탄 기차라도 일단 타기로 마음먹었다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차에 앉아 창밖도 바라보고, 옆자리에 앉은 승객과도 열심히 교류하고 말이다.


지금 나에게 3년 후, 5년 후, 10년 후의 모습이 어떨지 그려보라고 하면 솔직히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노래 속의 연어들처럼, 길을 잘못 들거나 기차를 반대로 탔더라도 매순간 최선을 다하면서 하루하루 열심히 걸어가보려고 한다. 계획과 다를지라도 일단 잘못탄 기차 속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어쩌면 계획했던 목적지보다 더 멋진 종착지에 도착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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