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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정 고운 정

나의 시어머니

by 봄날의 소풍 Mar 01. 2025

결혼하고 살면서 오래된 퇴적암처럼 깊은 쓴 뿌리가 있었다.

시부모님이었다. 살아온 환경도 배경도 다른 시부모님의 말 한마디들이 20년이 넘도록 불편하고 속상하고 분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재산이 변변치 않으셨던지라 대기업 다니는 큰아들, 교사인 큰 며느리에게 뭔가를 요구하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권위적이셨으며 조금이라도 못마땅한 일들에는 돌직구로,뭔가 바라는 일들에는 타인의 말에 빗댄 비아냥으로 대하신 일들이 많으셨다. 화가 나면 벼락같이 역정을 내시는 일들이 많았는데 그렇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나에게는 낯설고 어려웠다.아버님이 주로 그러셨지만 부부는 닮는다고 어머님도 만만치는 않으셨다.바쁜 남편을 대신해서 시부모님에게 아이들 맡기며 직장생활을 하던 터였는데, 양쪽 부모님들 챙기는 일도,아이를 키우는 일도 모두 내 몫인 가운데 쌓여가는 스트레느는 점점 가라앉아서 딱딱하게 쓴뿌리로 굳어가고 있었다.


5년 전, 아버님이 별세하시는 전후 과정은 고통과 고난의 절정이었다. 이 후 평생 살림만 해 하시며 오직 남편과 자식들이 우상이었던 어머님에겐 큰 외로움과 시련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배우자를 잃은 경험이 없기에 어머님의 허전한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들과 며느리는 노력을 했다.  매주 찾아가 말벗도 해 드리고 드라이브도 하고 식사하고 필요한 것들을 태워드려도 아버님의 빈자리는 채울 수가 없었고 툭툭 내뱉으시는 신세한탄은 아들도 며느리도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부정적인 말들,남들에 대한 불만,염세적인 이야기로 가득 채우시는 시어머님을 찾아가 뵙는 일이 내켜지지 않은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으며 뵙고 나오는 길은 소금에 절여진 배추처럼 온 몸에 힘이 다 빠졌다. 


체구가 크신 어머님이 언제부턴가 걸을 때 숨이 차셨다.혼자서 혈압약 타러,골다공증 주사 맞으러 병원을 다니시는 것도 마음에 걸렸고 이것저것 검사가 필요하실 것 같아 병원에 모시고 갔다. 순환기 내과,내분비 내과.호흡기 내과로 여기저기 모시고 다니며 각종 초음파 검사와 진료도 받고 약도 더 처방받고 끝나면 점심도 함꼐 했다.처음엔 부담스러워하시던 어머님도 호강을 한다며 고마움과 든든함의 표현을 연거푸 하셨다.


어머님과 둘이서 몇차례 병원을 다니며 진료를 기다릴때나, 점심을 함꼐 먹을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아버님 이야기,다니시는 노인정 이야기,그 동안 하지 않으셨던 친정 어머님과 형제들 이야기,어린 시절 이야기,둘째 아들 내외한테는 차마 못하는 이런저런 속풀이 이야기 등등...


어제 진료일도 함께 했는데 마침 생신이셨다.주말에 가족모임을 했지만 생신 당일이고 진료가 마치면 점심이라 평소 좋아하시던 오리고기집을 모시고 갔다. 예전엔 아버님도 아들도 없이 며느리와 둘이 음식점 가는 일을 낯설어하셨다. 이제는 의향도 여쭙지 않고 차에 어머님을 태운다. 고부관계로 25년을 넘게 지내면서 두 아들의 어미라는 공감대가 차곡차곡 쌓여가며 언제부턴가 어머님의 마음이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맛있게 식사도 하고 까페도 가서 커피도 마시고 빵도 먹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는 나를 발견했다. 마치 든든한 큰 딸에게 이야기하듯 미주알고주알 말씀을 하시는 어머님을 보며 울컥했다. 농담도 하고 서로 타박도 해 가며 봄기운 가득한 한강 풍경을 옆에 두고 참 좋은 시간은 보냈다. 카페를 가득 채운 그 어떤 노인들 모임보다 더 재미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어머님의 진심을 보았다.


시부모님들을 긍휼히 여기고 공경하게 해 달라고 항상 기도해왔다. 그런데 그 기도가 응답받은 기분이 들었다. 평생 자식만 바라보고 사셨다. 온갖 좋다는 음식이라도 있으면 얻어서,만들어서 주셨다. 큰 아이 출산 직전 목욕탕을 함께 갔는데 우리 며느리 한 동안 못 온다고 떄미는 아줌마한테 돈 주고 며느리 때밀어주신 것, 큰 아들내외 미국 간다고 온갖 천연조미료 사용법 적어서 봉지마다 싸 주신것, 첨 손주 생긴다는 말에 사과상자 그득 각종 과일 넣어서 주신 것들은 늘 마음속에 있는 어머님의 사랑이었다. 이제는 "두 아들 외국 보내고 허전할텐데.." 말씀하시며 나이들어가는 며느리 생각해주시는 모습에 어머님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래도 노인정 다녀보니 내가 젤 복 받은 노인이더라.."

"옛날에 우리 시어머니가 육남매 부부들 앉혀놓고 말씀하셨어.느그들 싸울려면 내 앞에서 싸워라.나는 며느리 편 들거다.남자들은 여자말 잘 듣고 살아야 한대이..라고 말이지."

마음이 훈훈해졌다. 그런 말을 이렇게 쉽게 하시는 분이 아닌데.. 


"아범이 태블릿 하나 선물로 드릴거에요."

"그거 노인정 들고 갈 수도 있나?" 물어보신다.

노인정 가서 뭐라도 자식들,손주들 자랑하시고 싶은건 어느 할머니나 마친가지리라.

함께 한 세월이 짧지 않다.어머님도 처음 시어머니 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들이 있었을 것이다.하나님이 어머님 마음을 헤아리라고 나에게 어머님처럼 딸없이 아들 둘 주신건가? 싶기도 하다.

이러다가도 또 "어머님 왜 그러셔~~!!"라고 말 할 때도 생기겠지만 확실한 건 어제 오후 데이트 이전과 이후는 달라진 따뜻한 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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