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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15. 2023

우리는 미갈을 오해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장단점이 있고, 선과 악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인물 대부분도 그러합니다. 다윗의 첫 번째 부인 미갈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녀는 다윗을 사랑하였지만, 후일 다윗을 미워하였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바뀌었을까요? 


미갈은 사울의 딸이나 다윗의 아내로 불렸습니다(사울의 딸 - 삼상18:20,27,28, 삼하3:13, 다윗의 아내 - 25:44, 삼하3:14). 남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미갈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미갈은 두 남자(사울과 다윗)의 정치적 목적을 만족시키는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결국 두 가정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었습니다(Exum,2001, p.64). 그런면에서 미갈은 불행한 여자입니다. 


성경은 미갈이 다윗을 사랑했다는 말을 두 번이나 기록하였습니다(삼상18:20, 28). 성경에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말은 자주 등장하지만, 여자가 남자를 사랑한다는 말은 미갈 외에 아무도 없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을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성적 취향을 드러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일로 보여집니다. 여성이 자신의 희망대로 결혼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더욱 그러했을지 모릅니다(Aschkenasy, p.36).

전지적 시점으로 쓰여진 성경은 사람의 마음이나 하나님의 마음을 가끔 표현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매우 특별한 일이므로 주의하여 읽으라는 뜻입니다(Bar-Efrat, p.19). 미갈의 사랑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다윗을 사랑하는 미갈의 마음을 부정적으로 읽은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 속의 악녀들’이란 책을 쓴 Higgs입니다. 

"미갈은 매우 신앙적인 이름(누가 하나님과 같으리요?)을 가졌음에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자라는 증거를 보여주지 못했다. 다윗은 미갈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했지만, 미갈은 하나님보다 다윗을 더 사랑하였다. 이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Higgs, p.313). "

Higgs는 기꺼이 미갈을 성경 속의 악녀로 분류하였습니다. 


화란의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도 미갈의 사랑은 불순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명성에 대한 욕망을 이루고자 다윗과의 결혼을 감행한 주모자로 간주했습니다(Kuyper, p.109). 과연 그럴까요? 미갈과 다윗의 결혼을 주도한 사람은 미갈이 아니라 사울왕이었습니다. 사울은 미갈의 사랑을 이용하여 다윗을 죽일 음모를 꾸몄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미갈이 다윗과 결혼을 통해 명성을 얻으려는 욕망을 가졌다고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치적 야망을 드러낸 사람은 미갈보다 다윗일 가능성이 큽니다. 다윗은 6명의 아내와 여러 명의 첩을 두었습니다. 일부다처제도가 허용되던 문화임을 고려해도 다윗은 결코 한 여인에게 충실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한미라, p.100). 여러 처첩을 둔 것은 의로운 지도자라기보다 제왕적 권력자로 보입니다(김순영, p.112). 


다윗은 사울의 사위가 되는 것을 좋게 여겼습니다(삼상18:26). 이런 표현을 통해 다윗이 미갈이라는 한 여성의 남편이 되는 것보다 왕의 사위라는 권력을 얻게 되는 것에 관심이 많았음을 밝힙니다(박유미, pp.204-5). 다윗이 미갈과 결혼한 것은 사울의 집안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윗의 세력 기반이 남부에 있었기 때문에 북부의 친사울파 인구를 끌어들여 사울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미갈이 필요했습니다(Shearing, p.813). 사실상 신부 미갈을 제외한 모든 관계자들은(사울과 다윗) 이 결혼을 사랑이 아닌 정치적 계약의 문제로 간주하였음이 분명합니다(Aschkenasy, p.37). 월터 브루그만은 다윗이 아비가일과의 결혼을 통해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근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였습니다(Brueggemann, p.275). 다윗이 나중에 발디의 아내로 살던 미갈을 불러들일 때도 사울측 사람들의 지지와 합법성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Brueggemann, p.375) . 


그러면 Higgs의 주장처럼 미갈이 다윗을 사랑한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요나단은 자기 목숨보다 다윗을 더 사랑했습니다. 미갈도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그걸 부정적으로 해석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 사랑은 개인적인 애정일 뿐만 아니라 다윗을 정치 지도자로서 지지한다는 뜻을 포함합니다(Klein, p.332). 요나단은 기꺼이 자기가 차지해야 할 왕의 자리를 다윗에게 양보합니다. 미갈도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생명을 걸고 다윗을 구하였습니다.


다윗을 구한 미갈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요인은 또 있습니다. 미갈은 마치 다윗이 잠자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우상(드라빔)을 이용하여 사울의 군사들을 속였습니다. 메튜 헨리는 미갈의 거짓말과 속임수는 조금도 정당화 될 수 없다고 하면서 미갈을 비난하였습니다(Henry p.1058). 그러나 성경 인물 중에는 거짓말한 사람이 많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거짓말했습니다. 여리고의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숨겨주고 거짓말하였습니다. 다윗은 놉 지방의 제사장 아히멜렉을 속여서 결과적으로 놉의 제사장 모두를 죽게만들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에 망명하면서 거짓으로 미친척 하며 침을 흘려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거짓말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고대 이스라엘에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진실을 숨기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위라기보다 임기응변이며 영리한 행위로 여겼습니다(Robinson, p.108). 그러므로 메튜 헨리의 비난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미갈이 우상을 이용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그녀가 집에 우상을 모셨다는 사실에서 그녀가 우상 숭배를 계속했다고 비난했습니다(Kuyper, p.111). 그러나 성경은 미갈이 우상을 숭배했다는 사실을 문제 삼지 않고, 오히려 다윗을 구했다는 사실에 집중합니다. 만일 우상이 그 방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미갈이 비난받아야 한다면, 다윗 역시 그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 방은 다윗과 미갈의 신혼 방이었기 때문입니다. 미갈이 다윗 몰래 우상을 숨겼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우상은 다윗만큼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방에 있는 드라빔을 다윗이 모를 리 없습니다(홍경원 p.85). 그런데 오직 미갈만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담담하게 미갈이 다윗을 구했다는 사실을 기록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과 미갈 남매의 사랑으로 인해 사울의 손에서 무사히 벗어나 목숨을 구하였습니다. 만일 미갈이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더라면, 다윗의 역사와 이스라엘의 역사는 매우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Laffey, p.170). 


미갈을 비난하는 보수 기독교 신학자들과 달리 구약을 연구하는 랍비들은 미갈을 오히려 칭찬하고, 그녀의 두 번째 남편 발디에 대해서도 동정합니다(Eskenazi, p.158). 그건 현대 히브리 문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계몽주의 시인 중 한명인 Y.L.Gordon(1831-1895)은 미갈을 불멸하는 사랑의 진정한 표상으로 격상시켜 시를 썼습니다(Eskenazi, p.159-160). 


안타깝게도 미갈이 다윗을 사랑했다는 말은 있어도 다윗이 미갈을 사랑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사울의 궁정을 떠난 후, 다윗은 요나단과 두 번의 비밀 만남을 가졌지만, 한 번도 미갈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압에서 부모의 안전을 위해 준비하고, 광야와 블레셋 땅에 가면서 다른 아내들을 데리고 다녔지만, 미갈을 위한 배려는 전혀 없었습니다(Exum, 2000, p.126). 물론 다윗이 요나단을 사랑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Exum,2001, p.75). 그건 아버지 사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울은 딸을 사랑하기는 커녕 오히려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양 한번은 다윗에게, 또 한번은 발디에게 주었습니다. 다윗 역시도 미갈을 자기의 소유물로 여겨 발디에게서 돌려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미갈은 불행한 여자였습니다. 다윗을 사랑했기에 짊어져야 할 짐이 너무나 컸습니다.

다윗을 향한 사랑이 후일 다윗을 향한 미움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참고도서

Aschkenasy Nehama, Woman at the Window: Biblical Tales of Oppression and Escape,Wayne State University Press, 1998

Bar-Efrat Shimon. Narrative Art in the Bible, Sheffield Academic Press, 1989

Brueggemann Walter, First and Second Samuel Interpretation (현대성서주석 사무엘상하), 한국장로교출판사, 2000.

Eskenazi C. Tamara, “Michal in Hebrew Sources,” in D.J.A. Clines and T.C. Eskenazi (eds.), Telling Queen Michal's Story: An Experiment in Comparative Interpretation (JSOTSup, 119; Sheffield: JSOT Press, 1991), 157-174.

Exum J. Cheryl, "Michal," in Carol Meyers, Women in Scripture: A Dictionary of Named and Unnamed Women in the Hebrew Bible, the Apocryphal / Deuterocanonical Books, and the New Testament, Eerdmans, 2000

Exum J. Cheryl, Fragmented Women(산산이 부서진 여성들), 김상래 외 옮김, 한들출판사, 2001. 

Henry Matthew, Matthew Henry’s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Volume 1 Genesis-Esther, Guardian Press, 1976

Higgs Liz Curtis, Bad Girls of the Bible(성경 속의 악녀들), 김창동 옮김, 좋은 씨앗, 2002

Klein W. Ralph, WBC v10, 1 Samuel, (WBC 성경주석 사무엘상), 김경열 옮김, 솔로몬출판사, 2004.

Kuyper Abraham, Women of the Old Testament, trans. Henry Zylstra; Grand Rapdis, 1933

Laffey L. Alice, An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여성신학을 위한 구약 개론), 장춘식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3.

Robinson Gnana . Let Us Be Like the Nations: A Commentary on the Books of 1 and 2 Samuel, Eerdmans, 1993

Shearing S.Linda “ Michal ” in The Anchor Bible Dictionary, (New York: Doubleday, 1992), IV

김순영, 어찌하여 그 여자와 이야기하십니까? 꽃자리, 2017

박유미, 오늘 다시 만나는 구약 여성, 헵시바총신여성동문, 2022. 

한미라, 여자가 성서를 읽을 때, 대한기독교서회, 2002

홍경원, 본문의 미갈과 해석된 미갈, 신학연구 51, 2007.12, 75-99(25pages)


https://youtu.be/yULBguyQYYM?si=5EkCVOqxg7vZxW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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