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사람은 삼손입니다. 그는 사자를 맨 손으로 찢어 죽일 정도의 괴력을 가진 영웅입니다. 그러나 삼손보다 더 위대한 영웅이 있습니다. 그는 삼손의 어머니입니다. 클린턴 맥켄(McCann J. Clinton) 교수는 삼손의 어머니를 ‘영웅의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영웅’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McCann, p.170). 그의 말이 조금 지나친 측면이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 인정할 측면도 있습니다.
사사기 13장 1절은 삼손의 시대적 배경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삿13:1)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억압받은 40년은 사사기에 기록된 가장 긴 기간입니다.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고통을 받았지만,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백성이라는 사실도 잊은 듯 했습니다(송병현, p.313).
김의원 교수는 분석하기를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의 압제를 당연시 여길 정도로 가나안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렌즈가 아니라 가나안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는게 몸에 배었습니다(김의원, p.494).
고대 교부이자 어거스틴의 스승이었던 암브로시우스는 ‘남자다운 기력으로 담대하게 자유를 고취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하였습니다(Franke ed. P.243). 삼손 이야기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한결같이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삼손도 엄청난 힘과 귀한 사명을 하나님께 받았지만, 그것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 역시 단 지파 출신으로 지위도 높았지만, 이름 값을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삼손의 어머니가 영적으로 훨씬 뛰어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트리니티 대학의 마이클 윌콕은 그의 사사기 강해에서 ‘삼손의 어머니가 무명이라는 것 자체가 이 이야기의 본질’이라고 하였습니다(Wilcock, p.166). 어째서 이름이 밝혀진 남자들 대신 무명의 여인이 삼손 이야기의 본질일까요? 암브로시우스가 말한대로 남자답게 여호와를 따르는 자가 없을 때, 이름도 없고 빛도 없는 여인들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여호와의 뜻을 따랐던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삼손의 어머니는 불임이었습니다. 당시 불임은 저주로 해석되지만, 그것을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성경에선 곳곳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삼손의 어머니는, 아들을 간절히 원하여 온갖 방법을 동원했던 사라나, 더 사랑받기를 갈망하여 최음제까지 사용했던 라헬이나, 아들을 원하여 실성한듯한 모습으로 기도했던 한나와는 달랐습니다. 그녀는 불임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하나님 만이 홀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일하실 뿐이며, 사회 문화적으로 수치스러운 불임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시는 분이 아님을 믿었습니다(Butler, p.765). 김지찬 교수는 불임은 삼손 어머니의 문제라기 보다는 이스라엘의 상황을 보여주는 유비(analogue)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불임이었고 희망이 없었으며, 미래를 스스로 창출한 능력도 없었습니다(김지찬, p.101)
여호와의 사자는 삼손의 어머니가 홀로 있을 때 아들을 갖게 되리라는 소식과 그에 대한 지시를 하였습니다(삿13:3-5)(Exum, p.87). WBC 주석을 쓴 버틀러 교수는 삼손의 어머니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정보를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하면서 그녀의 멍청한 남편보다 그녀가 더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하였습니다(Butler, p.766). 박 레이첼 지연은 ‘구약성서 여성들의 리더십 연구’라는 박사논문에서 ‘당시 문화적인 정황으로 보아 남편이 아닌 아내에게 야웨의 사자가 나타났던 것은 마노아의 아내는 야웨의 신앙을 갖추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습니다(박 레이첼 지연, p.198).
그녀는 자신이 받은 말씀을 남편 마노아에게 전달하였지만, 마노아는 그 사실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구하옵나니 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삿13:8)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는 ‘우리에게’가 아니라 또 다시 그 여인이 혼자있을 때 나타납니다(삿13:9). 그녀는 남편에게 급히 달려가서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음을 알렸습니다. 전성민 교수는 “마노아가 바란 것은 여인의 주도권 아래에서만 이루어질 뿐이었다’ 고 하면서 ‘그는 아내를 따라가야’ 여호와의 사자를 만날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전성민, p.213). 마노아는 궁금한 것이 많아 여호와의 사자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자녀를 키울까요? 그때 여호와의 사자는 딱 잘라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 다 삼가서”(삿13:13).
즉 아내에게 자세한 것을 말했으니 너는 그걸 듣고 잘 지켜 가르치라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왜 마노아에게 말하지 않고 그의 부인에게 말하였는지 사사기는 설명합니다.
“이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마노아가 알지 못함이었더라”(삿13:16)
삼손의 어머니는 처음부터 그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아차렸지만, 마노아는 영적으로 어리석음만 계속 드러냅니다. 그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번제드리려고 할 때, 사자는 말하기를 “번제를 드리려거든 여호와께 드릴지니라”하였지만, 그는 끝내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번제로 드립니다. 그때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가자 마노아는 그 때서야 깨닫습니다.
“아 여호와의 사자로구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삿13:22)
그러나 삼손의 어머니는 다르게 해석하였습니다.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삿13:23)
“마노아의 생각은 “전통적인 교리’로서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내의 역동적인 신앙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름까지 알려지고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고 싶어했던 마노아는 막상 모든 것이 드러났을 때 자신이 겪은 일에 매물되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데 실패한 반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마노아의 아내는 자신에게 벌어진 사건들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통찰력을 보여주었습니다.”(전성민, p.217). 하나님의 역사는 이름있고, 권세있고, 힘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미련한 자, 약한 자, 이름없는 자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고전1:27).
참고도서
Butler C. Trent, WBC volume 8 Judges(WBC 성경주석 사사기) 조호진 옮김, 솔로몬, 2011
Exum J. Cheryl, Fragmented Women(산산이 부서진 여성들), 김상래 외 옮김, 한들출판사, 2001.
Franke R. John ed. Ancient Christian Commentary on Scripture Old Testament IV Joshua, Judges, Ruth, 1-2 Samuel(교부들의 성경주해 구약성경 IV) 노성기 옮김, 분도출판사, 2017.
McCann J. Clinton, Judges Interpretation(현대성서주석 사사기), 한국장로교출판사, 2012.
Wilcock Michael, The Message of Judges, Grace abounding(사사기 강해 더욱 풍성한 은혜), 정옥배 옮김, IVP, 2009.
김의원, 대한기독교서회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사사기, 룻기, 대한기독교서회, 2007
김지찬, 엔 샬롬 교향곡 사사기 하, 기독신문사, 1999.
박 레이첼 지연, 구약성서 여성들의 리더십 연구, 목원대학교 대학원 박사논문, 2021.
송병현, 엑스포지멘타리 사사기, 국제제자훈련원, 2011.
전성민, 사사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성서유니온, 2016.
https://youtu.be/Vkt9Q_EwBFo?si=j6iOOXZjyM97S4C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