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를 구한 바로(이집트 파라오)의 딸이 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사를 쓴 김희보 교수는 바로의 딸은 하세풋(Hatshpsut)이라고 밝히지만(김희보, p.80), 확실한 근거가 있지 않습니다. 파라오는 히브리인이 아들을 낳으면, 모두 나일 강에 던지라고 하였습니다(출1:22). 그건 히브리 남자아이를 모두 죽이라는 명령입니다. 파라오의 명령은 곧 신의 명령이요,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지엄한 명령입니다. 그때 파라오의 딸이 목욕하려 나일 강에 갔다가 갈대 상자에서 모세를 발견합니다. 그건 누가 봐도 히브리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를 건지자마자 히브리 여자아이인 미리암이 다가와 유모를 구해주겠다고 제안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 파라오의 명령에도, 그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합니다. 그 결심은 죽음을 각오해야 할 만큼 위험합니다. 히브리 아이 모세를 구하겠다는 그녀의 결심은 이스라엘 백성에겐 위대한 전환점이 됩니다. 결과적이지만, 그녀의 행동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하고, 약속의 땅으로 가는 출발점이 됩니다. 그녀가 인식했든 못했든, 그 순간 그녀는 하나님의 쓰임 받는 도구였습니다. 마치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한 고레스 왕과 같습니다. 명시적으로 그녀가 하나님을 믿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바로의 딸이나 고레스는 분명 하나님께 쓰임 받았습니다.
기독교 사회윤리학자인 폴 레만은 신자이든 불신자이든 그리스도의 왕적 구속 활동에 쓰임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둘 사이 차이점이 있다면 신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왕권이 드러나지만, 불신자들에게는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Lehmann, p.117). 아무튼 하나님은 신자든 불신자든 필요하시면 사용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자와 불신자, 즉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의미 있는 대화와 가치 있는 일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가능한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중세 유럽과 달리 기독교 왕국이 아닙니다. 통계에 의하면 기독교는 전 세계 인구의 31%인 21억 7천 명입니다. 그건 개신교, 가톨릭, 그리스 정교 등을 모두 포함한 수입니다. 그 중에는 교회에 이름만 올려놓은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진실하고 참된 그리스도인의 수를 알면. 아마 깜짝 놀랄 정도로 적을 것입니다. 전 세계 인구의 23%는 모슬렘이고, 힌두교는 15%이고, 불교는 7% 민속 종교는 6%이며 나머지는 대부분 무교입니다. 종교가 어떠하든, 이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물질을 숭배하는 물질문명입니다. 현재 우리는 세속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 대부분은 무신론자나 타종교인(물질 숭배자들)입니다.
기독교는 오래전부터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크게 세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첫째는 배타주의입니다. 배타주의는 기독교의 가르침이 진리이며, 다른 생각은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들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지라도 많은 사람이 기독교 외의 모든 사상, 종교, 사람들에 대해 적대적입니다. 이들이 복음을 전도할 땐 상대방의 말을 듣기보다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말에 더 집중합니다. 소위 선포라고 하지요. 듣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선포합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칩니다. 마치 중세 가톨릭이 십자군 전쟁을 하듯,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을 정복하기를 소망하며 공격합니다.
배타주의가 강경한 보수주의라면, 다원주의는 강경한 진보주의입니다. 다원주의는 하나님께서 모든 종교 전통 안에 자신을 계시하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다원주의는 타 종교와 대화를 통해서 그들에게 배울 것이 있다면, 배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다양한 종교가 주장하는 진리에 대해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고, 그들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고 존중하자고 말합니다.
배타주의와 다원주의 사이에는 다양한 포용주의가 있습니다. 포용주의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 주장이 진리라고 주장하지만, 배타주의보다는 타 종교에 대해 훨씬 긍정적입니다. 물론 칼 라너와 같은 사람은 타 종교에도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는 쪽으로 나가지만, 존 스토트같은 복음주의 학자는 비기독교 세계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만, 구원의 진리가 그들에게는 있지는 않다고 합니다(Stott & Wright, pp.146-147).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믿는 자들을 세상 속으로 보내십니다. 세상과 싸우기 위하여 이 땅에 보냄 받은 것이 아니라, 좋은 소식(Gospel)을 전하기 위하여 보냄 받았습니다. 우리는 세상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을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십니다. 사람에게 질문하고 답을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죄 많은 사람과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사1:18). 예수님도 공적 사역을 하시는 동안 사마리아 여인과 진지한 대화를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루스드라와 아테네에서 이교도 청중에게 하나님께서는 이교 세계에서도 섭리적으로 일하셨다고 설교하였습니다(행14:16-17).
신약 교회 이후 2천 년간 기독교는 다양한 종교 문화 상황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어떻게 전파할지 고민했습니다. 때때로 총과 칼을 앞세워 강압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총과 칼만 안 들었지 그들을 적대적으로 대하거나 정죄하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나아가 그들과 대화하면서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파할지 늘 고민합니다.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구약 이스라엘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씨름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와 신앙을 변화하는 문화 종교적 상황에 어떻게 접목해야 할 것인지 늘 고민했습니다(Wright, P.53). 이스라엘의 출발점이라고 하는 출애굽기에서 이방 여인 바로의 딸 이야기는 타문화권에서 타종교인과의 대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구원 역사는 바로의 딸을 통해서 시작되었습니다. 극 보수 유대주의는 오직 유대인만 하나님께 선택받았다고 주장하지만, 구원 역사에는 이방인이 주도적으로 역할하는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집트인 바로의 딸, 가나안인 라합, 모압 여인 룻, 헷 사람 우리아, 바빌론인 고레스 등 다양한 사람이 구원 역사에서 활동합니다.
반대로 유대인이 이방 나라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다니엘 같은 사람입니다. 자기 민족 중심주의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있는 세상에서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경계를 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식별하는 눈과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Hall, p.253). 하나님은 교회라는 한계에 갇히지 않고 불신 세상에서도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타종교인들을 거칠거나 적대적으로 대해서는 안 되며, 그들을 비웃거나 조롱의 대상으로 삼아도 안됩니다(Stott & Wright, pp.129). 존 스토트는 비그리스도인과의 대화는 옳을 뿐 아니라 필수 불가결하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주의자들은 케이프타운에서 서약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는 타종교인들을, 성경적인 의미에서 우리 이웃으로 여기라는 고귀한 부르심에 응답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들로,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구원을 위해 죽으셨다. 우리는 그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여길 뿐 아니라 그들에게 이웃이 됨으로써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순종하려고 노력한다.”(케이프타운 서약, IIC, 1.)
참고도서
Hall J. Douglas, What Chritianity is not : an exercise in ‘negative’ theology(그리스도교를 다시 묻다), 이민희 옮김, 비아, 2020.
Lehmann L. Paul, Ethics in a Christian Context, London SCM, 1963
Stott John & Wright J.H. Christopher, Christian Mission in the Modern World(선교란 무엇인가), 김명희 옮김, IVP. 2018.
Wright J.H. Christopher, The Mission of God(하나님의 선교), 정옥배, 한화룡 옮김, IVP, 2016
김희보, 구약 이스라엘사, 총신대학출판부, 1984.
https://youtu.be/kMme8Lo2MOQ?si=HX4vwy_nNQ3kOkx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