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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08. 2023

왕비 이세벨

미국 남침례교 모튼 목사는 말하기를 ‘이세벨은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여인’이라고 하였습니다(Morton, p.260). 반면에 여성신학자 필리스 트리블은 이세벨이야 말로 가부장적 규범과 종교적 전통에 과감히 도전한 여성으로 높이 평가합니다(Trible, pp132-142).  이세벨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갈리는 상황에서 이세벨에 대한 재평가 작업은 필요합니다. 


이세벨은 시돈의 왕이었고 바알의 대제사장인 이토바알(Ittoba’al)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거짓 신 바알을 숭배하는 가정과 사회에서 태어났다고 모두가 악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열왕기서 저자는 이세벨과 엘리야의 대결 속에 또 다른 시돈 여인 한 명을 소개합니다. 그녀는 사르밧의 과부입니다. 사람들은 엘리야와 이세벨의 대결에 초점을 맞추지만, 놀랍게도 퀴어성서주석에선 같은 시돈 여인이지만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이세벨과 사르밧 과부를 비교합니다(Guest ed.,  p.390).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를 대접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세벨은 같은 시돈 출신이지만, 스스로 악해지기로 마음 먹었고, 그 결정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Wiersbe, p.336).

그녀는 바알 신을 섬기는 가정에서 사랑의 여신 아세라를 섬기는 여사제로 자라났습니다. 이세벨의 뜻은 ‘왕자는 어디 계신가?’ 입니다. 이는 바알 신을 섬기는 의식에서 외치는 소리입니다. ‘정복자 바알은 어디 계신가?’ ‘땅(물질)의 주인이신 왕자는 어디 계신가?”입니다(Coogan, p.113). 그녀는 바알과 아세라 신을 모시는 사제였습니다. 


오므리는 아들 아합을 이토바알의 딸 이세벨과 정략 결혼을 시켰습니다. 무역 국가인 페니키아는 안정적인 농산물 공급이 필요하였고, 북이스라엘은 무역국가인 페니키아의 경제적 후원이 필요했습니다. 남쪽의 이집트와 북쪽의 앗수르 세력이 약했던 시기에 두 나라의 연합은 정치 사회 경제 면에서 매우 유익했습니다. 


남쪽 유다와 끊임없이 분쟁하던 아합은 유다의 왕 여호사밧과 정략 결혼을 계획합니다. 아합과 이세벨 사이에서 낳은 딸 아달랴를 유다의 왕자 여호람과 결혼시켜 동족 간의 분쟁을 끝내었습니다. 두 차례의 정략 결혼 덕분에 북 이스라엘은 오랜만에 평화와 번영을 맛보았습니다(Bright, pp.330-333). 이세벨은 바로 이러한 사회 배경 속에서 활약하였습니다. 


신앙을 빼고 생각하면, 이세벨은 북이스라엘의 평화와 번영에 어느 정도 공을 세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세벨은  선진 국가였던 두로와 시돈의 신 바알 종교와 문화를 북이스라엘에 퍼트렸습니다. 하나님 대신 바알을 섬기는 것이 북 이스라엘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북이스라엘에서 바알에게 머리 숙이지 않은 사람이 7,000명이라고 하였습니다(왕상19:18). 바꿔 말하면, 7,000명 빼고 북이스라엘 사람 전부가 바알 신을 섬겼다는 뜻입니다. 도대체 이세벨은 어떻게 해서 이런 놀라운 선교적 성과를 거두었을까요?


그건  여호와 종교의 무능과 타락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은 남 유다가 가지는 정통성이 없었습니다. 남 유다가 자랑하는  ‘예루살렘 성전 신학’과 같은 정통성 있는 사상이 북이스라엘에는 없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을 창건한 여로보암은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에 가지 못하도록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섬기게 하였습니다. 금송아지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가르쳤습니다(왕상12:27-33). 권력 앞에서 백성은 거짓 가르침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여호와 종교는 부패하였고, 점점 쇠퇴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섬긴다고 하였지만, 그건 말뿐이고 사실은 금송아지 바알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과 함께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옥스포드의 역사신학자 맥그라스는 ‘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단은 복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보존하려는 열망으로 시작되었다’(McGrath, p.262). 황당한 이야기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기독교에 엄청난 도전이 되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기독교의 부정과 부패, 말과 행함이 전혀 다른 위선적 신앙에 신물을 느끼며, 복음을 바로 전해야 한다는 인간적인 열망으로 이단이 시작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순수한 동기에서 시작할 수도 있지만, 중간에 크게 변질하여 기독교 진리를 왜곡하고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 이단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단의 발생 원인 중의 하나는 기독교 자신의 잘못과 문제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세벨의 바알 신앙이 급속도록 퍼진 여러 원인 중 하나는 여호와 신앙의 부패와 무기력이었습니다. 


게다가 이세벨은 경제적으로 번성한 페니키아 공주로서 물질적 성공과 경제적 번영을 가져오는 바알 신앙을 전파할 때 북 이스라엘 백성은 미혹되었습니다. 페니키아의 선진 문화, 예술, 음악, 문학은 세련되고 매력적이었습니다. 물질이 주는 유혹 앞에 그들은 머리를 숙였습니다. 이미 금송아지를 여호와라고 외쳤던 그들은, 진짜 번영과 성공을 주는 신은 여호와가 아니라 바알이라고 할 때,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이세벨은 여론을 조정하고, 왕국 내 사건의 향방을 결정하는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이세벨은 여호와 신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잡아 죽였습니다. 


그녀를 추종하는 사람들, 즉 바알 제사장 450명과 아세라의 여제사장 400명이 있었습니다. 바알 신을 숭배하는 음란한 성적 예배가 북이스라엘에 널리 퍼졌습니다. 그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은 당연히 아세라의 대-여제사장인 이세벨이었습니다. 성경은 아합의 식탁이 아니라 이세벨의 식탁에서 그 모든 선지자가 먹었다고 했습니다. 그건 그들의 월급을 이세벨이 다 주었다는 뜻입니다(Brenner-Idan, p.22). 이세벨의 경제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그 권위와 권세가 얼마나 큰지를 짐작케 합니다. 그녀는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왕의 인장을 마음대로 사용했습니다(왕상21:8).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바알 선지자들을 죽였을 때, 칠십인 역 셉튜아진트와 고대 라틴어 역본에서 이세벨은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만일 네가 엘리야라면, 나는 이세벨이다”(Trible, p.140). 엘리야는 이세벨의 성격과 능력을 잘 알았기에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쳤습니다. 


현대 페미니스트 신학자들이 평가하는 이세벨은 정말 대단합니다. 이세벨은 당시의 가부장적 규범에 저항하고, 이스라엘의 종교와 문화 신념에 강력하게 도전하였습니다. 여성으로서 당시 가부장적 사회와 종교 권력을 뒤엎은 저항의 상징으로 페미니스트들은 해석합니다. 그래서 현대 여성 중에 이세벨 혹은 이세벨라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종교 다원주의 입장에선 이세벨이 바알 종교를 신봉하는 선교사로 훌륭하게 볼지 모르지만,  성경의 눈으로 보면 이세벨은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여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정면으로 거부하였습니다. 그녀는 물질적 성공과 경제적 성장을 최우선 과제요 가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나봇의 포도원 문제로 고민하는 남편 아합 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왕상 21:7)

그건 그녀의 생활신조입니다. 마음 가는 대로 즐겁게 사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물질 만능을 믿는 바알 종교의 가치관이었습니다. 2,800년이 지난 현재에도 그녀의 사상은 “don't worry be happy “란 노래로 히트합니다(Higgs, p.280).  시대와 사회를 초월해서 이세벨의 영향력은 멈출줄 모릅니다. 


그녀의 영향력이 선한지 악한지를 생각하지 않고, 영향력 자체만 보고 그녀를 칭송하고 추종하는 여성 신학자들을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선한 영향력, 거룩한 영향력, 영적 영향력을 추구합니다. 이세벨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어떤 영향력을 선택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참고도서

Brenner-Idan Athalya, The Istraelite Woman Social Role and Literary Type in Biblical Narrative(Sheffield : JSOT Press), 1985 

Bright John, A History of Israel Third Edition(이스라엘의 역사),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3.

Coogan D. Michael, Stories from Ancient Canaan(Philadelphia : Westminster), 1978.

Guest Deryn ed., The Queer Bible Commentary I Hebrew Bible(퀴어성서주석 I 히브리성서), 무지개신학연구소, 2021.

Higgs Curtis Liz, Bad Girls of the Bible(성경 속의 악녀들), 김창동 옮김, 좋은 씨앗, 2002.

McGrath E. Alister, Heresy : A History of Defending the Truth(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 홍병룡 옮김, 포이에마, 2011.

Morton Byran Wharton, Famous Women of the Old Testament(Chicago:W.P. Blessing Company, 1889)

Trible Phyllis, Exegesis for Storytellers and Other Strangers(이세벨 설화에 대한 여성신학적 해석), 기독교사상 1995년 10월, 11월호

Wiersbe W. Warren, Life Sentences(워렌 위어스비의 성경인물평전), 마영례 옮김, 디모데, 2019.


https://youtu.be/EBIi794oxhM?si=uL3w5nU6XtJI32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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