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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03. 2023

지혜를 찾은 스바 여왕

고대 역사에 깊이 뿌리내린 전설적인 인물 스바 여왕은 성경, 코란, 에티오피아 종교 문학에 등장합니다. 에티오피아 전통에서는 마케다로, 이슬람 전통에서는 빌키스로 알려진 스바 여왕은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에티오피아에선 솔로몬과 스바 여왕 사이에서 메넬리크 1세를 낳았다고 하지만, 근거는 없습니다. 전설일 뿐입니다. 그러한 전설을 바탕으로 킹 비더 감독은 1959년 솔로몬과 스바 여왕을 제작하였습니다. 스바 여왕을 맡은 지나 롤로브리지다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어 그녀를 성적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스바 여왕의 나이나, 외모나 개인 신상에 대해서 전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과 스바 여왕의 로맨스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스바 왕국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필립 얀시는 지금의 예멘을 중심으로 한 왕국이라 하였고(Yancey, p.246), 남성덕 목사는 에티오피아를 지지합니다. (남성덕, p.222) 스바 여왕이 가져온 예물을 보면, 스바 왕국이 얼마나 부강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왕상10:2). 


성경에서 스바 여왕의 방문을 왜 기록했을까요? 솔로몬의 위세와 지혜를 자랑하기 위해 기록했을까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마12:42)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구하기 위해 멀리서 찾아왔습니다. 솔로몬보다 더 큰 이, 곧 지혜의 원천이요 지혜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곁에 두고도 지혜를 구하지 않는 현대인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스바 여왕을 기록한 목적은 한 가지입니다. 지혜를 추구하였던 지혜로운 여왕 이야기입니다. 

스바 여왕은 먼 나라에 있으면서 솔로몬이 지혜롭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소문을 들었고, 믿었고, 행동하였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그녀는 얼리 어답터였습니다. 그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닙니다. 그녀는 여왕이기에 왕좌를 오랫동안 비워둘 수 없습니다. 그녀가 없는 동안 쿠데타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왕이 지혜를 구하기 위해 다른 나라 왕을 찾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녀가 얼마나 지혜를 사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혜와 지식을 구하기 위해선 제일 먼저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자기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머리를 숙여야 배움이 가능합니다. 젊으면 시간의 여유와 능력 때문에 고개를 숙이지 않으려 하고, 나이가 들면 자존심밖에 없기에 더욱 고개를 숙이지 않으려 합니다. 언제든 기꺼이 새로운 통찰과 관점을 얻기 위해 배우려는 자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스바 여왕은 지혜로웠기에 지혜와 지식의 가치를 알았습니다. 


그녀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위험이나 비용을 얼마든지 지급할 용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맛있는 음식을 사 먹고, 커피를 마시고 영화 보는데 아낌없이 돈을 쓰면서, 책을 사거나 지혜를 얻는 비용을 들이는 것을 아까워하는 현대인을 정죄합니다. 옥스퍼드의 유명한 교수 강연을 들으려면 수천만 원으로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서점에서 그의 강의 중 정수만 뽑아 놓은 책을 단돈 몇만 원이면 구매할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가성비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책은 여전히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스바 여왕은 지혜를 얻기 위해선 비용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솔로몬에게 어려운 문제를 물었습니다. 어려운 문제는 무엇일까요? 그건 단순한 지식 정보를 묻는 말은 아닙니다. 국가를 경영하는 문제는 참모들이 얼마든지 풀 수 있습니다. 지금도 정치, 경제, 시사 문제에 훈수를 두는 사람은 차고 넘칩니다. 어려운 문제는 그런 질문이 아닙니다. 정말 어려운 질문은 아무나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그건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묻는 본질적인 질문입니다. 좋은 대답을 얻으려면 질문이 좋아야 합니다. 요즘 CHAT GPT가 나오면서 질문의 중요성이 부각되었습니다. 질문하면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생각납니다. 그는 질문으로 철학을 했습니다.  


성경은 스바 여왕이 어떤 질문을 했는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단서는 있습니다. 

“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였습니다. (왕상10:1)

그녀는 솔로몬의 지혜가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녀가 묻고 싶었던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상태와 위치가 아니었을까요?


동방의 의인 욥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서 의로우랴?”질문하였습니다. (욥9:2) 불경건하고, 부족한 인생이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지혜의 본질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것입니다. 이런 난해한 질문은 솔로몬보다 크신 예수님에게 물어야 마땅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담당하시고 구속하시는 예수님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고난 주간에 우리는 이런 깊은 질문을 예수님께 던지고 그 답을 얻어야 합니다. 다윗은 이런 시를 지었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말 하나하나에 정신을 집중하여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하며 예물을 드립니다.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고서야 그녀가 가져왔던 모든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녀는 정말 듣고 싶은 답을 얻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녀는 마음을 열고 대화했습니다.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왕상10:2)


세상에서 지혜롭다고 하는 사람은 마음속 이야기를 다 하지 않습니다. 순진하고 어리석은 사람만이 마음 속 이야기를 다 했다가 오히려 공격을 받거나 무시당하기 일쑤입니다. 마음에 상처가 많은 현대인은 가슴에 몇 미터 철갑방패를 달고 삽니다. 믿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곁에는 우리를 위하여 생명까지 바치며 사랑하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에게 마음 문을 열지 않는다면, 그건 비극입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아시면서도 단 한 마디도 누설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를 구원하고 위로하고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을 통해 구속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마음속을 열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지혜를 찾았습니다. 우리도 지혜를 찾기를 소망합니다. 좋은 분, 예수님을 만나 정말 하고 싶었던 마음속 질문을 다 드리고 지혜를 찾기를 소망합니다.


참고도서 

Yancey D. Philip, Meet the Bible(필립 얀시의 성경을 만나다), 신순호 옮김, 포이에마, 2010 

남성덕, 볼품없는 인생에 깃든 하나님의 은혜, 브니엘, 2020 


https://youtu.be/08QVsYpb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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